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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어른시절 후기

뉴징검다리 2010. 2. 10. 08:32

제 129 편

예수의 어른 시절 후기

예수나사렛 가족의 집안 일을 관리하고 식구들을 직접 지도하는 것으로부터 완전히, 마침내 손을 떼었다. 세례 받은 사건이 일어나기 바로 전까지, 가족의 재정에 줄곧 돈을 부었고, 동생들 하나하나의 영적 복지(福祉)에 몸소 깊은 관심을 가졌다. 과부가 된 어머니의 편안과 행복을 위하여, 인간으로서 가능한 모든 것을 할 준비가 언제나 되어 있었다.

사람의 아들은 이제 나사렛 집에서부터 영구하게 떨어져 나가려고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이것은 그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예수는 자연히 민족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했으며, 자연스러운 이 애정(愛情)은 그들에게 쏟은 특별한 헌신 때문에 엄청나게 커졌다. 동료에게 충분히 우리가 헌신하면 할수록,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예수는 가족에게 아주 충분히 헌신했기 때문에, 크고 뜨거운 애정으로 가족을 사랑했다.

예수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온 집안이 천천히 깨달았다. 기대하던 이별의 슬픔은, 오로지 예수가 의도한 출발의 발표를 위하여 그들을 이렇게 차츰 준비시켰기 때문에 겨우 줄어들었다. 그들은 그가 궁극에 이렇게 이별(離別)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4년이 넘도록 알아차렸다.

1. 스물 일곱 되던 해 (서기 21년)

이 해, 서기 21년 1월, 어느 비오는 일요일 아침에, 예수는 아무런 예식 없이 가족을 떠났고, 단지 티베리아스에 가서, 다음에 갈릴리 바다 근처의 다른 도시들을 방문하러 간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떠났고, 결코 다시는 그 집의 정규 식구가 되지 않았다.

티베리아스에서 한 주를 보냈는데, 여기는 갈릴리의 서울인 세포리스를 곧 이어받을 새 도시였다. 흥미를 끄는 것을 별로 발견하지 못하자, 잇달아 막달라벳세다를 거쳐서 가버나움으로 갔고, 거기서 멈춰서 아버지의 친구 세베대를 찾아보았다. 세베대의 아들들은 어부였고, 그 자신은 배 만드는 사람이었다. 나사렛 예수는 설계와 건축에 전문가였고, 나무를 가지고 하는 일에 대가(大家)였다. 세베대나사렛 장인(匠人)의 솜씨를 오랫동안 듣고 있던 터였다. 오랫동안 세베대는 개량된 배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예수 앞에 계획을 내밀고, 찾아온 목수에게 사업을 함께 하자고 제의했고, 예수는 대뜸 찬성하였다.

예수는 겨우 1년 남짓하게 세베대와 함께 일했지만, 그 동안에 새로운 스타일의 배를 창조했고, 전혀 새로운 배 건조법을 창안(創案)하였다. 우수한 기술과 판자를 수증기로 쪼이는 크게 개량된 방법으로, 예수세베대는 아주 우수한 종류의 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 배는 옛날 종류보다 호수(湖水)에서 돛을 달고 가기에 훨씬 더 안전했다. 몇 년 동안 세베대는 작은 작업장이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일이 더 많았고, 이 새로운 스타일의 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5년 안에, 호수에 있는 거의 모든 배가 가버나움에 있는 세베대의 작업장에서 건조되었다. 예수는 이 새로운 배의 설계자로서 갈릴리의 어부들에게 잘 알려지게 되었다.

세베대는 보통으로 살림이 넉넉한 사람이었고, 조선(造船) 작업장은 가버나움 남쪽, 호수에 있었으며, 집은 벳세다의 고기잡이 본부 가까이, 호숫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예수는 그 해 동안 세베대의 집에서 살았고, 가버나움에서 더 오래 머물렀다. 세상에서 오랫동안 혼자, 다시 말해서 아버지 없이 일했고, 아버지의 동업자와 일하는 이 기간을 매우 즐겁게 보냈다.

세베대의 부인 살로메안나스의 친척(親戚)이었고, 안나스는 한때 예루살렘에서 대사제였는데, 아직도 사두개 집단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었고 8년 전에야 자리에서 해임되었다. 살로메예수를 크게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다. 자기의 아들들, 야고보요한다윗처럼 그를 사랑했고, 한편 딸 넷은 예수를 오빠로 대접했다. 예수는 가끔 야고보·요한·다윗과 함께 고기를 잡으러 나갔고, 예수가 숙달된 조선공(造船工)일 뿐 아니라, 숙련된 어부인 것을 발견했다.

이 해에 계속, 예수는 달마다 야고보에게 돈을 보냈다. 10월에 마르다의 결혼에 참석하려고 나사렛으로 돌아왔고, 시몬유다의 쌍 결혼식을 올리기 바로 전에 돌아오기까지, 2년이 넘도록 다시 나사렛에 있지 않았다.

이 해 내내 예수는 배를 만들었고, 사람들이 어떻게 땅에서 사는가 줄곧 지켜보았다. 자주 카라반 정거장에 방문하러 가곤 하였고, 가버나움다마스커스로부터 남쪽으로 가는 직통 여행 길에 있었다. 가버나움로마의 견고한 군사 기지였고, 수비대의 지휘관은 야웨를 믿는 이방인(異邦人), “경건한 자”였는데, 유대인들은 개종한 사람들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 습관이었다. 이 장교는 부유한 로마인 가족에 속했는데, 가버나움에 아름다운 회당(會堂) 짓는 일을 자진하여 떠맡았다. 예수세베대와 함께 살려고 오기 얼마 전에, 이 회당은 유대인들에게 기증되었다. 예수는 이 해의 절반이 넘도록 이 새 회당에서 예배를 인도했고, 어쩌다가 예배에 참석한 카라반 사람들 가운데 더러는 그가 나사렛에서 온 목수임을 기억했다.

세금을 물 경우에, 예수는 자신이 “가버나움의 숙련 기술자”라고 등록하였다. 이 날부터 계속 땅에서 일생이 끝날 때까지, 가버나움의 거주자로 알려졌다. 결코 어떤 다른 법적 주거를 주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사람들이 그의 거주지를 다마스커스, 베다니, 나사렛,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라고까지 처리하도록 버려 두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그는 도서관 서고(書庫)에서 많은 새 책을 발견했고, 한 주에 다섯 번 저녁을 열심히 공부하는 데 보냈다. 하루 저녁은 나이 든 사람들과 교제하는 데 쓰고, 하루 저녁은 젊은이들과 보냈다. 예수의 성격에는 품위 있고 영감을 주는 무엇이 있었고, 변함없이 젊은 사람들을 끌었다. 언제나 사람들이 그 앞에서 편안하게 느끼도록 해 주었다. 좋은 대인(對人) 관계를 유지하는 데 아마도 큰 비결(秘訣)은 그가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 언제나 관심을 가졌고, 묻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충고하는 일이 드물었다는 이 두 가지 사실에 있었다.

세베대 가족은 예수를 거의 숭배하다시피 했고, 그가 회당에 공부하러 떠나기 전, 저녁을 먹고 나서 저녁마다 진행한 질문과 답변이 있는 회의에 거르지 않고 참

석했다. 젊은 이웃 사람들도 이 저녁 식사 후 회의(會議)에 참석하려고 자주 들어왔다. 이 작은 모임에서 예수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다채로운 상급 과정을 가르쳤다. 이들과 함께 아주 거리낌없이 이야기했고, 정치·사회학·과학·철학에 대해서 생각과 이상을 표현했다. 그러나 종교―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하여 토론할 때를 제외하고, 감히 최종의 권한을 가지고 말하지 않았다.

한 주에 한 번 예수는 집, 작업장, 호숫가의 조수(助手)들 전체와 회의를 가졌는데, 세베대가 일꾼들을 많이 거느렸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일꾼들 사이에서 예수를 처음으로 “주”라고 일컬었다. 그들은 모두 그를 사랑했다. 그는 가버나움에서 세베대와 함께 즐겁게 일했지만, 나사렛 목수 작업장 옆에서 놀던 아이들을 그리워했다.

세베대의 아들들 가운데, 야고보는 선생이자 철학가인 예수에게 가장 흥미를 가졌다. 요한은 종교적 가르침과 의견에 가장 관심이 있었다. 다윗은 그를 기술공으로서 존경했지만, 종교적 견해와 철학적 가르침은 거의 믿지 않았다.

유다는 안식일에 예수가 회당에서 말씀하는 것을 들으려고 자주 건너왔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남곤 했다. 맏형을 보면 볼수록, 유다예수가 참으로 위대한 사람이라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이 해에 예수는 인간 지성을 더욱 통달하는 데 크게 발전했고, 깃드는 생각 조절자와 의식하여 접촉하는 데, 새로운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이 해는 안정된 생활을 하던 마지막 해였다. 두 번 다시, 그는 한 곳이나 한 가지 일에 한 해를 모두 보내지 않았다. 땅에서 순례하는 날이 빨리 다가오고 있었다. 맹렬하게 활동하는 기간이 장래에 멀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날에 단순했지만 맹렬하게 활동하던 생애와 더욱 격렬하고 벅찬 대중(大衆) 봉사 사이에, 널리 여행하고 어지간히 다양한 개인 활동이 있는 몇 해가 이제 사이에 끼려고 한다. 유란시아 수여에서, 인간 이후의 신다운 단계에서, 완전하게 된 하나님이자 인간으로서 가르치고 전도(傳道)하는 생애에 들어갈 수 있기 전에, 이 땅의 사람으로서 훈련이 끝나야 했다.

2. 스물여덟 되던 해 (서기 22년)

서기 22년 3월, 예수세베대가버나움을 떠났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경비를 치르려고 돈을 조금 요구했다. 세베대와 일하면서 돈을 조금만 인출(引出)해서, 달마다 나사렛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곤 했다. 한 달은 요셉이 돈을 받으려고 가버나움으로 왔고, 다음 달에는 유다가버나움으로 와서, 예수로부터 돈을 받아서 나사렛으로 가지고 가곤 했다. 유다의 고기잡이 본부는 가버나움 남쪽에서 몇 킬로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세베대의 가족을 떠났을 때, 예수는 유월절 때까지 예루살렘에 남기로 찬성했고, 모두가 그 행사(行事)에 참석하기로 약속했다. 유월절 저녁 식사를 같이 축하하도록 주선까지 하였다. 예수가 떠났을 때 모두가, 특히 세베대의 딸들이 슬퍼했다.

가버나움을 떠나기 전에, 예수는 새로 찾아낸 친구이자 가까운 동료, 요한 세베대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때가 올 때”까지 널리 여행할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요한에게 일러 주고, 받을 돈이 없어질 때까지 달마다 나사렛에 있는 가족에

게 얼마큼 돈 보내는 일을 대신 해 달라고 부탁했다. 요한은 약속했다. “내 선생이여, 일을 돌보시고, 세상에서 당신의 일을 하소서. 이 일이나 어느 다른 일에도 당신을 위하여 행동하리이다. 내가 내 어머니를 보살피고, 형제 자매를 돌보는 것 같이 당신의 가족을 보살피리이다. 아버지가 쥐고 있는 당신의 기금(基金)을 지시한 대로, 필요한 대로, 보내겠나이다. 당신의 돈이 떨어지고 나서, 당신한테서 돈을 더 받지 않으면, 그리고 당신의 어머니가 형편이 어렵다면, 내가 번 돈을 당신 어머니와 나누리이다. 평안히 갈 길을 가소서. 이 모든 일에 나는 당신 대신에 행동하리이다.”

따라서, 예수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난 뒤에, 요한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예수가 받을 돈에 대하여 의논했고, 그것이 그렇게 큰 돈이어서 놀랐다. 예수가 이 문제를 송두리째 그들의 손에 맡겼기 때문에, 이 기금을 부동산에 투자해서, 그 소득을 나사렛 가족을 돕는 데 쓰는 것이 상책(上策)일 것이라 의견을 모았다. 저당 잡혀 있고 팔려고 내놓은, 가버나움에 있는 한 작은 집을 세베대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베대예수의 돈으로 이 집을 사서, 친구를 위하여 집의 권리를 맡아서 가지고 있으라고 요한에게 지시했다. 요한은 아버지가 조언한 대로 했다. 2년 동안 이 집세는 저당금을 무는데 쓰였고, 이것은 예수가 가족이 필요한 대로 쓰라고 요한에게 당장 보낸 어떤 큰 금액과 합쳐서, 이 부채 금액과 거의 맞먹었다. 세베대는 그 차액을 냈고, 그래서 요한은 저당금 잔액(殘額)을 물 때가 되었을 때 물었고, 이렇게 해서 이 두 칸 방 집에 대하여 완전한 권리를 확보하였다. 이 방법으로 예수가버나움에서 한 집의 소유자가 되었지만, 이에 대하여 통지를 받지 않았다.

나사렛 가족이 예수가버나움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요한과 이 재정에 관하여 주선한 것을 몰랐으니까, 이제 더 예수의 도움이 없이 지내야 할 때가 왔다고 믿었다. 야고보예수와 한 계약을 기억했고, 동생들의 도움을 얻어서, 당장에 가족을 돌보는 총 책임을 맡았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를 구경하자. 그는 거의 두 달 동안 시간의 절반이 넘게 성전의 토론(討論)을 듣고, 랍비들이 있는 여러 학교를 가끔 찾아보는 데 썼다. 안식일 낮의 대부분을 베다니에서 보냈다.

예수세베대의 부인 살로메의 편지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갔는데, 이것은 전직(前職) 대사제 안나스에게 “내 아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그를 소개했다. 안나스는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고, 예루살렘의 종교 선생들이 있는 여러 학원을 방문하려고 친히 그를 데리고 갔다. 예수는 이 학교들을 샅샅이 들여다보고 그들이 가르치는 방법을 조심스럽게 관찰했지만, 대중 앞에서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안나스예수를 위대한 사람으로 여겼어도, 어떻게 조언(助言)해야 하는가 어리둥절했다. 학생으로서 예루살렘의 어느 학교에라도 들어가라 제안하는 것이 어리석음을 깨달았지만, 예수가 이 학교들에서 훈련받은 적이 없었으니까, 예수에게 결코 정규 선생의 지위가 주어지지 않을 것을 잘 알았다.

곧 유월절이 가까이 다가왔고, 온 사방에서 군중과 함께, 가버나움으로부터 세베대와 가족이 모두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들은 모두 안나스의 너른 집에 멈추었고, 거기서 하나의 행복한 가족으로서 유월절을 지냈다.

이 유월절 주가 끝나기 전에, 겉보기에는 우연히, 예수는 부유한 어느 여행자와 그 아들, 열 일곱쯤 된 젊은이를 만났다. 이 여행자들은 인도에서 왔는데, 로마와 지중해의 여러 다른 도시(都市)에 들리는 길이었기 때문에, 유월절 동안에 예루살

에 도착하도록 주선하고, 그들 둘에게 통역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들에게 가정 교사(敎師)로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를 희망했다. 그 아버지는 예수가 함께 여행하는 데 찬성하기를 고집하였다. 예수는 가족에 대해서, 또 거의 2년 동안 떠나 있는 것이 도저히 공평하지 않고, 그 동안에 가족이 빈궁하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자 동양에서 온 이 여행자는, 예수에게 1년 동안의 임금(賃金)을 선불하겠다고, 그러면 가족이 빈궁하지 않게 보호하기 위하여 예수가 그러한 기금을 친구들에게 맡길 수 있다고 제안해 왔다. 예수는 그 여행을 하기로 찬성했다.

예수는 이 큰 돈을 세베대의 아들 요한에게 넘겼다. 너희는 요한가버나움 재산에 대한 저당금을 청산하는 데 이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이야기를 들었다. 이 지중해(地中海) 여행에 관하여 예수세베대에게 완전히 속을 털어놓았지만, 아무에게도, 자신의 피와 살을 나눈 가족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요한에게 타일렀고, 세베대는 거의 2년의 긴 세월 동안에 예수가 어디 있는지 안다고 결코 밝히지 않았다. 이 여행에서 예수가 돌아오기 전에, 나사렛 가족은 그가 죽은 것으로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였다. 여러 기회에 아들 요한나사렛까지 간 세베대가 안심시킨 말이 겨우, 마리아의 가슴 속에서 계속 희망이 살아 있게 하였다.

이 기간에 나사렛 가족은 무척 잘 어울렸다. 유다는 자기의 몫을 상당히 늘였고, 결혼할 때까지 이 여분(餘分)의 몫을 계속 냈다. 거의 도움이 필요 없는데도, 예수가 지시한대로, 달마다 마리아에게 선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 요한 세베대의 관습이었다.

3. 스물 아홉 되던 해 (서기 23년)

예수가 스물 아홉 되던 해 전체가 지중해 세계의 여행을 마치는 데 쓰였다. 이 체험담을 밝히도록 우리가 허락을 받은 한, 주요한 사건들은 이 글을 바로 뒤잇는 이야기들의 주제가 된다.

로마 세계를 보는 이번 여행 동안 내내, 여러 가지 이유로, 예수다마스커스 서기관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여행 길에 고린도와 다른 여러 정박지에서 유대인 가정 교사로 알려졌다.

이 때는 예수의 일생에서 파란 많은 기간이었다. 이 여행을 하면서 동포 인간들과 많이 접촉했지만, 이 체험은 가족 누구에게도, 사도들 중 아무에게도 결코 밝히지 않은, 일생의 한 단계였다. 이렇게 널리 여행했다는 것을 아무도 (벳세다세베대를 제외하고) 알지 못한 채, 예수는 육체를 입고 일생을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다. 친구들 가운데 더러는 그가 다마스커스로 돌아갔다고 생각했고, 더러는 그가 인도로 갔다고 생각했다. 가족은 그가 알렉산드리아에 있었다고 믿고 싶어했는데, 그가 조(助)하잔이 될 목적으로 거기에 가도록 한 번 초대받은 적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을 때, 예수는 그가 예루살렘에서 알렉산드리아로 갔다고 믿는 가족의 의견을 조금도 바꾸려 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에서 자리를 비운 동안 내내, 그 학문과 문화의 도시에서 보냈다고 가족이 계속 믿도록 버려 두었다. 오로지 벳세다의 조선공(造船工) 세베대만 이 문제에 관하여 사실을 알았지만, 세베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유란시아에서 예수가 사신 일생의 뜻을 해독(解讀)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이면서, 너희는 미가엘이 자신을 수여한 동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상하게 보이는 여러 행적(行蹟)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너희 세계에서 머무른 그 목적을 헤아려야

한다. 그는 지나치게 흥미를 자아내고 사람들의 눈을 끄는 개인 생애를 살지 않도록 한결같이 조심했다. 동포 인간들에게 특별하거나 압도하는 호소를 조금도 바라지 않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동료 필사자들에게 드러내는 일에 몸을 바쳤고, 동시에 바로 그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뜻에 계속 지배되면서, 땅에서 필사 생애를 사는 숭고한 일에 헌신하였다.

이 신성한 수여를 연구하는 모든 필사 학자가, 유란시아에서 육신화한 이 일생을 살기는 했어도 예수가 자기 우주 전체(全體)를 위하여 살았음을 기억한다면 땅에서 사신 일생을 이해하는 데 또한 반드시 유익할 것이다. 온 네바돈 우주에 두루, 사람이 사는 모든 개별 세계를 위하여, 필사 성품을 가진 육체를 입고서 사신 일생과 관련되어 특별하고 영감(靈感)을 주는 무엇이 있었다. 유란시아에서 머물렀던 파란 많았던 시절 이후로, 사람이 살 수 있게 된 모든 세계에 관하여, 이것이 또한 참말이다. 마찬가지로, 이 지역 우주의 모든 미래 역사에서 의지(意志) 생물이 살게 될지 모르는 모든 세계에 대해서도 똑같이 참말이다.

사람의 아들로마 세계를 이번에 여행한 동안에, 그 체험을 통해서, 그 시대와 세대에 세상에서 살았던 다채로운 민족들과 접촉하는, 교육적인 훈련을 실지로 마쳤다. 나사렛으로 돌아올 때가 되어서, 이 여행하는 훈련의 매체를 통해서, 유란시아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고 생계를 이어가는가 거의 배웠다.

지중해 분지(盆地) 주위에서 여행한 참 목적은 사람을 알려는 것이었다. 이 여행에서 인류의 수백 명과 무척 가까워졌다. 부자(富者)와 가난한 자, 지위가 높은 자와 낮은 자, 흑인과 백인, 교육받은 자와 받지 못한 자, 교양 있는 자와 없는 자, 동물 같은 자와 영적인 자, 종교적인 자와 비종교적인 자, 도덕적인 자와 부도덕한 자, 이렇게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했다.

이 지중해 여행에서, 예수는 물질적 필사 지성을 통달하는 인간 과제에서 크게 진전을 보았고, 깃드는 조절자는 바로 이 인간 지능의 상승과 영적 정복에서 크게 발전했다. 이 여행이 끝날 때가 되어서―인간적으로 아주 확실히―예수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 우주의 아버지아들 창조자인 것을 실질적으로 알았다. 조절자는 그가 이 네바돈 지역 우주를 조직하고 관리하러 오기 전에, 신성한 아버지와 관련하여 파라다이스에서 가졌던 체험의 그림자 같은 기억(記憶)을 점점 더 사람의 아들의 머리 속에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 조절자는 거의 영원한 과거의 여러 시기에, 예전에 신다운 존재였던 그 필요한 기억을 조금씩, 예수의 인간 의식(意識)으로 가져왔다. 조절자가 가져와야 할, 사람이 되기 전의 체험에서 마지막 에피소드는, 유란시아 육신화를 개시하려고, 의식하는 성격을 내어주기 바로 전에 작별하면서 구원자별의 이마누엘과 가졌던 회의였다. 사람이 되기 전 존재에 대한 이 마지막 기억의 그림은,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서 세례 받던 바로 그 날, 예수의 의식 속에서 뚜렷해졌다.

4. 사람인 예수

구경하는 지역 우주의 하늘 지성 존재들에게는, 이 지중해 여행이 예수가 땅에서 겪은 온갖 체험에서, 적어도 전 생애에서, 십자가에 처형되고 사람으로 죽음을 겪은 사건 바로 전까지, 가장 황홀한 것이었다. 이 때는 곧 뒤따르는 대중 봉사 시대와 대조해서, 개인으로 봉사하는 매혹적인 기간이었다. 이 독특한 에피소드는 더군다나 마음을 빼앗는 것이었는데, 이 때 아직도 나사렛의 목수요, 가버나움의 조선 기술자요, 다마스커스의 서기관(書記官)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도 사람의 아들이었다. 아직까지 인간 지성을 완전히 통달하지 못했다. 그 조절자는 필사의

신분을 통달하고, 상당하는 부본(副本)을 만들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사람들 가운데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의 아들의 순전히 인간다운 종교적 체험―개인의 영적 성장―은 스물 아홉 되던 이 해에, 도달할 정점(頂點)에 거의 이르렀다. 영적으로 발전하는 이 체험은 생각 조절자가 도착한 순간부터, 사람의 물질 지성과 영(靈)의 지성 재산 사이에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인간 관계가 완성되고 확인되는 날까지, 한결같이 차츰 일어난 성장이었다―이 두 지성을 하나로 만드는 현상은, 이 땅에서 육신화한 사람으로서, 요단 강에서 세례 받은 날, 사람의 아들이 완벽하게, 최종으로 이룩한 체험이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공식으로 교통하는 많은 시간을 가진 듯 보이지 않았지만, 이 시절 내내, 그는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깃드는 영 계심과 몸소 친교하는 점점 더 효과 있는 방법을 통달하였다. 그는 육체를 입고서 진정한 인생, 충만한 인생, 참으로 정상이고 자연스럽고 평범(平凡)한 인생을 살았다. 시간과 공간의 물질 세계들에서 인간의 삶을 사는 총 합계와 알맹이의 사실성에 해당하는 것을 피부로 겪어서 안다.

사람의 아들은 숭고한 기쁨으로부터 깊은 슬픔까지, 넓은 범위의 인간 감정을 맛보았다. 그는 기쁨이 넘치는 아이였고, 보기 드물게 좋은 유머를 가진 존재였다. 마찬가지로 “슬픈 사람이요 비애에 낯설지 않았다.” 영적 의미에서, 밑바닥에서부터 꼭대기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자의 생명을 견디었다. 물질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존재에서 사회의 두 극단(極端)을 거치며 사는 체험을 피한 듯 보일지 모르지만, 인류의 온전한 체험 전부에 지적으로 온통 익숙하게 되었다.

예수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여러 영역에서 진화하고 승천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 욕구와 충동을 알고 있다. 신체적·지적·영적 자아의 시초로부터 유아기, 아동기, 소년기, 성년기까지―인간의 죽음을 체험하기까지―인생을 살았다. 지적·영적으로 진보하는 기간, 사람의 보통이며 낯익은 기간들을 거쳤을 뿐 아니라, 유란시아 필사자들 가운데 거의 아무도 도달하지 못하는 국면, 인간과 조절자의 화해(和解)가 이루어지는 더 높고 진보된 국면도 또한 충분히 겪었다. 이렇게 해서, 너희 세계에서 사는 그대로일 뿐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있는 모든 다른 진화 세계에서, 아니 빛과 생명에서 안주(安住)하는 모든 세계 중에 가장 높고 진보한 세계들에서 사는, 그러한 필사 인간의 온전한 생활을 체험했다.

필사 육체의 모습을 입고 살았던 이 완전(完全)한 인생을 동료 필사자들, 즉 땅에서 어쩌다가 같은 시대에 살게 된 자들이 조건 없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육체를 입고 유란시아에서 나사렛 예수가 산 일생은, 그래도 동시에, 동일한 성격 생명 안에서, 필사 인간에게 영원한 하나님을 충분히 계시하고, 무한한 창조자가 만족하기까지 완전해진 인격을 제시한 것으로서, 우주의 아버지로부터 완벽하고 조건 없는 승인을 받았다.

이것이 참된 최고의 목표(目標)였다. 그가 살던 시대나 다른 시대에, 어느 아이나 어른, 어느 남자나 여자를 위하여 완전하고 자세한 모범으로서 유란시아에 살려고 내려오지 않았다. 정말로, 충만하고 풍부하고 아름답고 고귀한 일생에서 더할 나위 없는 모범이 되고 신성하게 영감을 주는 많은 것을 우리 모두가 발견할까 싶은 것이 참말이지만, 이것은 그가 참되고 진정하게 인간다운 삶을 살았기 때문이

다. 예수는 모든 다른 인간이 모방하라고 본보기를 보여 주기 위해서 땅에서 일생을 살지 않았다. 너희 모두가 땅에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그는 똑같은 자비를 베풂으로 육체를 입고 이 인생을 살았다. 그 시절에, 그의 신분대로 필사 생애를 산 것 같이, 그는 이로서 이 시대에 또 우리 신분대로 일생을 살도록 우리 모두를 위하여 모범이 되었다. 너희는 그의 일생을 살려는 꿈을 가져서는 안 되지만, 그가 일생을 산 것 같이, 똑같은 수단으로, 너희는 일생을 살려고 결심할 수 있다. 예수는 이 지역 우주의 모든 세상에서 온 세월에 걸쳐서, 모든 필사자에게 엄밀하고 자세한 본보기가 아닐지 모르지만, 초기의 승천 세계들로부터, 온 우주를 거쳐서, 하보나를 통하고 계속 파라다이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파라다이스 순례자에게 언제까지나 영감(靈感)을 주고 안내하는 분이다. 예수는 사람으로부터 하나님까지, 부분적인 것으로부터 완전한 것으로, 땅에 있는 것으로부터 하늘에 있는 것으로, 시간으로부터 영원에 이르는 새로운, 생명의 길이다.

스물 아홉 살 되던 해가 저물 때까지, 나사렛 예수는 육체를 입은 체류자로서 필사자들에게 요구되는 인생을 살기를 거의 마쳤다. 그는 사람에게 명백히 나타날 충만한 하나님으로서 땅에 오셨다. 이제 하나님에게 명백하게 나타날 기회를 기다리는 거의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이 모두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