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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기 시절

뉴징검다리 2010. 2. 10. 08:40

제 127 편

청년기 시절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예수는 자신이 큰 가족의 가장(家長)이자 유일한 기둥임을 발견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몇 년 안에, 재산이 모두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자, 그는 갈수록 선재(先在)했음을 의식하게 되었다. 동시에,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사람의 아이들에게 드러내는 명백한 목적을 위하여 땅에서 육체를 입고 있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깨닫기 시작했다.

이 세상이나 어느 다른 세계에서 살았거나 앞으로 언젠가 살 젊은이, 청년기에 있는 어떤 젊은이도, 더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거나 까다로운 문제를 풀어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유란시아의 어떤 젊은이도, 열 다섯에서 스무 살까지 그 벅찬 기간에 예수 자신이 견딘 것보다 더 시험하는 갈등이나 쓰라린 형편을 거치라고 요구되지 않을 것이다.

악에 시달리고 죄로 인하여 어지러워진 세상에서 이 청년기 시절을 사는 실제 체험을 이렇게 맛보았으니까, 사람의 아들네바돈의 모든 영역에서 젊은이의 생활 체험에 대하여 넉넉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지역 우주에서 두루, 어느 시대(時代)나 어느 세계에서도, 슬픔에 빠지고 어리둥절한 청년들에게 영원히 공감하는 친구가 되었다.

느려도 확실하게, 실제로 체험을 겪어서, 이 신다운 아들은 그의 우주의 군주가 될 권리를 벌고 있다. 그 군주는 지역 우주에서 모든 세계의 창조된 지성 존재에게 도전받지 않는 최고 통치자요, 어느 시대에도, 어떤 정도의 성격 자질과 체험을 가진 존재들에게도 공감하는 벗이다.

1. 열여섯 살 되던 해 (서기 10년)

육신화된 아들은 아기 시절을 지났고, 파란이 없는 어린 시절을 겪었다. 다음에 어린 시절과 청년기 사이에, 시험을 거치는 벅찬 과도기로부터 솟아 나왔다―청년 예수가 되었다.

이 해에는 몸이 완전히 성장했다. 그는 남자답고 잘 생긴 소년이었다. 점점 더 차분하고 심각해졌어도 친절하고 동정심이 있었다. 눈은 친절하지만 꿰뚫어보는 눈이었고, 빙그레 웃는 웃음은 언제나 사람을 끌어들이고 안심시켰다. 목소리는 아름다웠어도 위엄이 있었고, 인사는 따듯해도 때묻지 않았다. 언제나, 가장 평범한 접촉에서도 사람답고 신답게, 이 2중 성질을 가진 손길의 증거가 있는 듯했다. 그는 동정하는 친구이자 권위 있는 선생, 이 둘의 조합을 언제나 나타냈다. 이런 성격 특징은 일찍부터 이 청년기 시절에도,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신체적으로 힘세고 튼튼한 이 소년은 또한 인간의 지능이 완전히 성장하였다. 인간으로서 생각하는 충분한 체험이 아니라, 그렇게 지적으로 성장할 충분한 능력을 획득했다. 건강하고 잘 균형된 몸, 날카롭고 분석적인 머리, 친절하고 동정심

있는 기질, 얼마큼 변동이 있어도 적극적인 성질을 소유했고, 이 모두가 강하고 놀랍고 매력 있는 성격으로 구성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어머니와 동생(同生)들은 그를 이해하기가 점점 더 어렵게 되었다. 그의 말에 갈피를 잡지 못했고 행동을 오해했다. 모두가 맏형의 생애를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그가 유대 민족의 구원자가 될 운명을 가진 것을 이해하도록 어머니가 일러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넌지시 일러 준 것을 가족의 비밀로서 마리아에게서 들은 뒤에, 예수가 모든 그러한 생각과 의도를 솔직하게 부인하려 했을 때 그들이 겪은 혼동을 상상해 보아라.

이 해에 시몬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또 집 한 채를 팔 수밖에 없었다. 야고보는 이제 세 여동생을 가르치는 책임을 맡았고, 둘은 심각한 공부를 시작할 나이가 넉넉히 되었다. 좀 자라자마자, 미리암마르다의 손에 맡겨졌다. 유대인 가정의 여자아이들은 보통 거의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예수는 여자가 남자와 똑같이 학교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고 (어머니도 찬성했다), 회당 학교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그들을 위해서 가정 학교를 운영할 수밖에 없었다.

이 해 내내, 예수는 작업 벤치 가까이 묶여 있었다. 다행히, 할 일이 풍부했고, 솜씨는 아주 우수한 등급이어서, 그 지역에 일거리가 아무리 뜸해도 그는 놀고 지내지 않았다. 이따금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야고보가 돕곤 했다.

이 해가 저물 때가 되어서, 그는 가족을 양육하고 식구들이 결혼하는 것을 본 뒤에,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하늘 아버지를 세상에 드러내는 자로서, 일을 공식으로 시작하겠다고 거의 마음먹었다. 자기가 유대인이 기대하는 메시아가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고, 이 문제를 어머니와 의논해 보아야 거의 쓸데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머니가 무슨 관념을 택하든지 그대로 지니도록 버려 두기로 작정했는데, 과거에 그가 무엇을 일러 주어도 어머니에게 거의 또는 도무지 효과가 없었고, 또한 아버지도 결코 어머니의 마음을 바꾸게 할 것을 일러 줄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이 해부터 계속, 어머니나 또는 다른 사람에게, 이 문제들에 관하여 말하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 그의 사명은 땅에서 사는 누구도 어떻게 실행하는가 충고해 줄 수 없는 그렇게 특이한 사명이었다.

젊기는 했어도 그는 가족에게 진정한 아버지 노릇을 하였다. 어린것들과 함께 있는 대로 시간을 보냈고, 그들은 참으로 그를 사랑했다. 어머니는 그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 슬픔에 잠겼다. 아주 좋아하며 계획했던 대로 예루살렘에서 랍비들과 함께 공부하는 대신에, 가족을 위해서 생활비를 벌면서, 목수의 벤치에서 그날그날 수고하고 있는 것을 보자니 어머니는 서러웠다. 아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이 있었어도 마리아는 아들을 사랑했고, 가정의 책임을 기꺼이 어깨에 진 그 태도를 대단히 고마워하였다.

2. 열 일곱 살 되던 해 (서기 11년)

이 무렵에, 특히 예루살렘유대 땅에서, 로마에 세금 내는 데 반대하는 반란에 찬성하는 어지간히 큰 소동이 있었다. 머지 않아 열심당이라고 부르게 될, 강력한 민족주의 당파가 생기고 있었다. 열심당원들은 바리새인과 달리,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꺼이 기다리지 않았다. 정치적 항거를 통해서 끝장을 보자고 제안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한 집단의 조직자들이 갈릴리에 도착했고, 나사렛에 이르기까지 크게 진전을 보았다. 예수를 보려고 왔을 때, 그는 그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 많이 물었지만, 그 당에 들어가기를 거절했다. 참가하지 않는 까닭을 완전히 밝히려 하지 않았고, 이 거절은 나사렛에서 젊은 동료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빠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마리아는 아들이 입당(入黨)하도록 유인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그를 꿈쩍하게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자기의 요청에 따라서 민족주의자 운동을 지지하기를 물리치는 것은 불복종이요, 예루살렘에서 돌아와서 부모에게 복종하겠다는 서약(誓約)을 어기는 것이라고 비추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렇게 빗대어 하는 말에 답하여 그는 어머니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고,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어머니, 어찌 그럴 수 있나이까?” 마리아는 제 말을 취소하였다.

예수의 삼촌들 중에 하나가 (마리아의 동생 시몬) 이 무리에 이미 가담했고, 나중에 갈릴리 분과의 장교가 되었다. 몇 년 동안 예수와 그 삼촌 사이에는 무언가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나사렛에서 소동이 끓기 시작했다. 이 문제에서 예수의 태도는 그 도시의 유대인 젊은이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켰다. 반쯤은 민족주의자 조직에 가담했고, 나머지 반은 좀더 온건한 애국자들로 이루어진 반대 집단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예수가 지도자가 되기를 기대했다. 가족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구실로 탄원하면서, 그에게 내민 명예를 물리쳤을 때, 모두가 그 책임을 인정(認定)했어도 그들은 놀랐다. 그러나 상황은 아직도 더욱 까다로워졌는데, 당장에, 이방인들에게 돈 빌려 주는 사람, 이삭이라는 어느 부자 유대인이 나서서, 예수가 연장을 내려놓고, 이 나사렛 애국자들의 지도를 맡는다면, 예수의 가족을 부양하겠다고 나섰다.

그 때 겨우 열 일곱이었던 예수는 일생의 초기에 가장 아슬아슬하고 어려운 상황의 하나에 부닥쳤다. 애국(愛國) 문제는, 특히 세금을 걷는 외국 억압자들 때문에 까다롭게 되었을 때, 언제나 영적 지도자들이 처신하기 어렵고, 이 경우에는 유대 종교가 로마에 항거하여 이 모든 선동(煽動)에 말려들었기 때문에, 두 배나 어려웠다.

예수의 처지는 더욱 어렵게 되었는데, 어머니와 삼촌, 또 동생 야고보조차, 모두 민족주의자 운동에 합세하라고 밀었기 때문이다. 나사렛의 똑똑한 유대인들은 모두 가담했고, 아직 그 운동에 끼지 않은 청년들은 예수가 생각을 바꾸는 순간에 가담하려고 했다. 온 나사렛에서 현명한 상담자가 겨우 한 사람 있었는데, 늙은 선생 하잔이었다. 그는 나사렛의 시민 위원회가 이미 행해진 대중 호소에 대하여 대답을 요구하러 올 때, 그들에게 어떻게 답변하는가 그에게 조언을 주었다. 예수의 젊은 나이를 통해서, 이번이 바로 처음으로 의식해서 대중 전략(戰略)에 의존했던 때이다. 따라서, 상황을 뚜렷하게 하려고 언제나 진실을 솔직하게 말하는 데 의존했지만, 지금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선언할 수 없었다. 자기가 사람보다 더 높다고 속을 털어놓을 수 없었고, 더 성숙한 나이에 이르기까지 그를 기다리는 사명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밝힐 수 없었다. 이런 제한이 있었는데도, 종교적 충성과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직접 도전을 받고 있었다. 가족은 소동에 말려들었고, 젊은 친구들은 갈라졌으며, 마을의 유대인 무리 전부가 떠들썩했다. 이 모두가 그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다니! 이 종류의 소동은커녕, 어떤 종류의 문제라도 일으킬 의사가 전혀 없었다.

무엇인가 해야 했다. 자기의 처지를 설명해야 했고, 용감하게, 외교적으로, 모든 사람은 아니라도 많은 사람의 마음에 흡족하게 이것을 했다. 그는 처음에 탄원한 조건을 고수했다. 첫째 의무(義務)는 가족에 대한 것이요, 과부가 된 어머니와 여덟 동생은 겨우 돈이 살 수 있는 것―물리적 생활 필수품―보다 더한 것이 필요하다, 가장의 보살핌과 지도를 받을 권리가 있다, 맑은 양심(良心)에 비추어서, 모진 사고가 밀어붙인 의무로부터 자신을 풀어 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어머니와 맨

위 동생에게 그를 기꺼이 해방시키려 하는 데 찬사를 보냈지만, 물질적으로 부양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돈이 앞으로 들어오든지 상관 없이, “돈은 사랑할 수 없다”고 결코 잊어서 안 될 말을 하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충성심이 가족을 떠나는 것을 막는다고 되풀이했다. 이 연설을 하는 과정에서, 예수는 “일생의 사명”에 대하여 몇 번 흐릿하게 언급했지만, 그것이 군사적 관념과 일치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 없이, 가족에 대한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생애의 모든 다른 것과 함께, 그것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나사렛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가족에게 좋은 가장이었음을 잘 알았다. 이것은 모든 고귀한 유대인의 마음에 아주 가까이 와 닿는 문제였기 때문에, 예수의 탄원은 말씀을 듣던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이해하는 반응을 일으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얼마는 야고보가 한 연설에 마음이 풀어졌고, 계획에 들어 있지 않았지만, 이 때 그는 한바탕 연설하였다. 바로 그 날, 하잔은 야고보에게 연설을 미리 연습시켰지만, 그것은 그들의 비밀이었다.

야고보는 그가 (야고보) 가족을 위하여 책임을 질 만큼 나이 들었다면, 예수가 민족을 해방하는 일에 도우리라 확신한다, 그들이 예수가 “우리와 함께, 우리의 가장과 선생으로 남아 있게 허락하신다면, 여러분은 요셉의 가족한테서 지도자를 하나만 얻는 것이 아니라, 금방 충성스러운 민족주의자 다섯을 얻으리이다, 왜냐하면, 우리 가장인 형님의 지도를 받고, 자라서 우리 나라에 봉사하려고 나설 소년이 다섯이나 있지 않나이까?”하고 말했다. 그 소년은 이렇게, 아주 팽팽하고 아슬아슬한 형편을 무척 즐거운 종말로 이끌었다.

위기는 얼마 동안 그쳤지만, 결코 이 사건은 나사렛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선동이 계속되었고, 예수는 다시 널리 우대받지 않았으며, 감정의 대립은 결코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 이것이, 다른 그 뒤의 사건들로 말미암아 확대되어, 어째서 예수가 후일에 가버나움으로 이사했는가 하는 주요한 이유의 하나였다. 이 때부터 나사렛사람의 아들에 대해서 감정의 대립을 유지했다.

야고보는 이 해에 졸업했고 집에 있는 목수 작업장에서 전 시간 일을 시작했다. 연장을 쓰는 데 영리한 노동자가 되었고 이제 멍에와 호미를 만드는 일을 도맡았고, 한편 예수는 집 마무리 손질과 전문적인 가구(家具) 일을 더 하기 시작했다.

이 해에 예수는 머리 속을 정리하는 데 크게 나아졌다. 차츰차츰 신다운 성품과 인간 성품을 한데 모았고, 머리를 정리하는 이 일 모두를 자신의 결심하는 힘으로, 그에게 깃드는 감시자의 도움만 얻어서 이룩했고, 바로 그러한 감시자를 수여 아들 이후에 모든 세상에서, 모든 정상 필사자가 지성 속에 가지고 있다. 이제까지, 한 사자(使者)가 방문한 것을 빼고, 아무런 초자연적인 일이 이 청년의 생애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형 이마누엘이 그 사자를 파송했는데, 그는 예루살렘에서 밤에 한 번 예수에게 나타났다.

3. 열 여덟 살 되던 해 (서기 12년)

이 해가 지나는 동안, 집과 뜰을 제쳐 놓고, 모든 가족 재산이 처분되었다. 이미 저당(抵當) 잡힌 가버나움 재산의 마지막 조각이 (다른 한 재산에 있는 지분을 빼고) 팔렸다. 수익금은 세금을 위해서, 야고보에게 새 연장을 얼마큼 사 주기 위해서, 카라반 휴식처 가까이, 오래 된 가족 소모품 및 수선 작업장에 대한 지불금을 내는 데 쓰였고, 야고보가 집의 작업장에서 일하고 집 근처에서 마리아를 도울 만큼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예수는 이 작업장을 다시 사자고 제안했다. 얼마 동안

재정의 압박이 이렇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예수야고보를 유월절에 데리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예루살렘에 하루 일찍 갔는데, 그들만 사마리아의 길로 갔다. 그들은 걷고, 아버지가 5년 전에 비슷한 여행에서 가르쳤던 것처럼, 가는 길에 예수야고보에게 역사적인 장소들에 대하여 일러 주었다.

마리아를 지나가면서, 많은 낯선 광경을 보았다. 이 여행 길에 개인과 가족과 국가의 여러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야고보는 대단히 종교적인 부류의 소년이었고, 예수가 일생에 할 일에 관한 계획을 별로 알지 못하는데 그것에 관하여 어머니와 완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예수가 자기의 사명을 시작할 수 있도록, 그가 가족을 위해서 책임을 맡을 수 있을 때가 오기를 기대하였다. 예수가 그를 유월절에 데리고 가는 것을 무척 고맙게 여겼다. 그리고 그들은 여느 때보다 더 자세히 앞날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마리아를 통해서 여행하면서, 특히 베델에서, 또 야곱의 우물에서 물을 마실 때, 예수는 많이 생각했다. 동생과 아브라함·이삭·야곱의 전통에 관하여 이야기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동생이 바야흐로 구경하려 하는 것을 위해서 야고보를 준비시키려고 많이 애썼고, 그래서 자신이 성전을 처음 방문했을 때 겪었던 그러한 충격을 줄이려고 하였다. 하지만 야고보는 이 여러 광경 가운데 어떤 것에 그다지 예민하지 않았다. 어떤 사제들이 임무를 건성으로 마음에 없이 행하는 태도에 대하여 논평했지만, 대체로 예루살렘에서 체류한 것을 크게 즐거워했다.

예수는 유월절 저녁을 먹으려고 야고보베다니로 데리고 갔다. 시몬은 선조들과 함께 묻혔다. 예수는, 희생 양을 성전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유월절 가족의 가장으로서 이 가정을 주관하였다.

유월절 저녁 식사 뒤에, 마리아야고보와 이야기하려고 앉았고, 한편 마르다나사로예수는 밤 늦게까지 함께 이야기했다. 다음 날 성전 예배에 참석했고, 야고보이스라엘 연방에 가입되었다. 그 날 아침, 성전을 보려고 올리브 산 벼랑 가에서 멈추었을 때, 야고보가 놀라서 감탄하는 동안, 예수는 잠자코 예루살렘을 바라보았다. 야고보는 형의 행동을 알 수 없었다. 그 날 밤, 다시 베다니로 돌아갔고, 다음 날, 집을 향해 떠났을 터이지만, 야고보는 선생들의 강론(講論)을 듣고 싶다고 설명하면서, 성전을 찾아보려고 돌아가기를 고집하였다. 이것은 참말이었지만, 가슴 속에 몰래, 어머니의 말씀을 들은 대로, 그는 예수가 토론에 참여하는 것을 듣고 싶어했다. 따라서, 그들은 성전에 가서 토론을 들었다. 하지만 예수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인간이자 하나님의 깨어나는 이 지성에게 모두가 시시하고 하찮게 보였다―그들을 불쌍하게 여길 수 있을 뿐이었다. 야고보예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실망했다. 그가 묻자, 예수는 다만 대답했다,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느니라.”

이튿날, 그들은 예리고요단 강 유역을 거쳐 집을 향해 길을 떠났고, 그가 열세 살이었을 때 이 길로 전에 했던 여행을 포함해서, 길가에서 여러 가지 일을 이야기했다.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예수는 가족의 낡은 수선 작업장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날마다 나라의 모든 구석과 둘러싼 여러 지방에서 온 허다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크게 즐거워했다. 예수는 참으로 사람―그냥 보통 사람―들을 사랑했다. 매달 그 작업장에 대하여 지불금을 냈고, 야고보의 도움을 얻어서, 줄곧 가족을 부양했다.

1년에 몇 번, 방문객들이 이렇게 성서를 읽으려고 자리에 있지 않을 때, 예수는 계속 회당에서 안식일 성서를 읽었고, 여러 번 교과(敎科)에 대하여 논평했지만, 논평이 필요 없는 구절을 보통 골랐다. 그는 솜씨가 있었고, 한 구절이 다른 구절

에 빛을 던지도록, 여러 구절의 읽는 순서를 짜 맞추었다. 날씨가 허락하는 한, 안식일 오후에 자연 속을 걸으려고 남동생·여동생들을 데리고 나가기를 거른 적이 없었다.

이 무렵에, 하잔은 철학 토론(討論)을 위하여 젊은 남자들의 모임을 시작했다. 이것은 다른 회원들의 집에서, 또 가끔 자기 집에서 만났는데, 예수는 이 무리의 특출한 회원이 되었다. 이 수단으로, 최근의 민족주의자 논쟁이 있을 때 지역에서 잃었던 위신의 얼마큼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 생활은 제한되었어도 완전히 소홀히 되지는 않았다. 그는 나사렛의 젊은 남녀 사이에서 따듯이 대하는 친구와 굳건한 숭배자가 여럿 있었다.

9월에, 엘리자벳요한나사렛 가정을 찾아보려고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요한은 목수 일이나 어떤 다른 직업의 일에 착수하려고 나사렛에 남아 있으라고 예수가 조언하지 않으면, 농업과 양을 기르는 일에 들어가려고 유대의 고지로 돌아갈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나사렛 가정이 실지로 한 푼도 없음을 몰랐다. 마리아엘리자벳이 자기네 아들들에 관하여 이야기하면 할수록, 두 젊은이가 같이 일하고 서로를 더 보는 것이 좋겠다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예수요한은 함께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대단히 사사롭고 개인적인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그들이 해야 할 일로 “하늘 아버지가 부르신” 뒤에, 대중에게 봉사하면서 만날 때까지 서로 다시 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사렛에서 본 것 때문에 요한은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서 노동해야 한다고 엄청나게 감명을 받았다. 자기가 예수 일생의 사명의 일부가 되리라고 확신하게 되었지만, 예수가 집안을 돌보는 일에 여러 해 동안 바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서 자기네 작은 농장을 돌보고 어머니의 필요를 보살피는 일을 훨씬 더 만족스럽게 여겼다. 사람의 아들요단 강 가에서 세례를 받으려고 나선 그 날까지 요한예수는 다시 서로 보지 못했다.

이 해의 12월 3일, 토요일 오후에, 두 번째로 죽음이 이 나사렛 가족에게 덥쳤다. 아기 남동생, 꼬마 아모스가 한 주 동안 고열(高熱)로 앓다가 죽었다. 이 슬픈 때를 유일한 기둥인 맏아들과 보내고 나서, 마리아는 마침내 예수를 가족의 참 가장으로 완전히 인정했다. 그는 참으로 자격 있는 가장이었다.

4년 동안, 생활 수준은 꾸준히 떨어졌다. 해마다 깊어지는 가난의 아픔을 느꼈다. 이 해가 저물 때가 되어서, 모든 벅찬 싸움에서 가장 어려운 체험의 하나에 부닥쳤다. 야고보는 아직도 많은 돈을 벌기 시작하지 않았고, 모든 다른 것 위에 장례비는 집안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예수는 초조하고 슬퍼하는 어머니에게 단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머니, 슬퍼하는 것이 우리를 돕지 아니하리이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고, 어머니의 웃음이, 어쩌면,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할까 하나이다. 우리는 하루하루, 더 좋은 날이 앞에 있다는 희망 때문에 이 일을 하도록 힘을 얻나이다.” 든든하고 실용적인 낙관주의(樂觀主義)는 참으로 쉽게 번졌다. 아이들은 모두 더 좋은 때와 좋은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에서 살았다. 가난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는데도, 희망에 찬 이 용기는 튼튼하고 고귀한 인격을 개발하는 데 힘차게 기여하였다.

예수는 바로 눈앞에 닥친 과제에, 머리와 혼과 몸의 온갖 힘을 효과 있게 동원하는 능력을 소유했다. 풀고 싶어하는 한 가지 문제에, 깊이 생각하는 머리를 집중할 수 있었고, 이것은 지칠 줄 모르는 인내와 더불어, 어렵게 필사자로 존재하며

겪는 시련을 차분히 견딜 수 있게―마치 “보이지 않는 을 보고” 있는 것처럼 살수 있게―만들었다.

4. 열 아홉 살 되던 해 (서기 13년)

이 때가 되어서, 예수마리아는 사이가 훨씬 더 좋았다. 그를 아들로 여기는 일이 적었다. 마리아의 눈에, 그는 아이들에게 차라리 아버지 같이 되었다. 나날의 생활은 실제적이고 당면(當面)한 문제로 가득하였다. 그의 일생의 일에 관하여 말하는 일이 뜸해졌는데,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들이 모든 생각을 남자 아이 넷과 여자 아이 셋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부양하고 기르는 데 공동으로 쏟았기 때문이다.

이 해가 시작되자, 아이를 훈련하는 그의 방법을 받아들이도록 예수는 어머니를 완전히 설득했다―악행하지 말라고 금하는 옛 유대인 방법 대신에 선을 행하라는 긍정적(肯定的) 명령이었다. 집에서, 또 대중을 가르치는 생애를 통해서 내내, 예수긍정 형태의 훈계를 변함없이 이용했다. 언제 어디서나 말했다. “너희는 이것을 하라―저것을 해야 하느니라.” 옛날의 금기로부터 내려오는, 부정(否定) 형태의 가르침을 결코 이용하지 않았다. 금지함으로 악에 중점(重點) 두는 일을 삼가고, 한편 선을 행하라 명령함으로 선한 것을 높이 올렸다. 이 집안에서 기도 시간은 가족의 복지에 관계되는 어떤 것이나, 무엇이든지 토론하는 기회였다.

그렇게 어린 나이부터 동생(同生)들에게 현명한 훈련을 시작했기 때문에, 즉석에, 진심으로 복종을 얻는 데 거의, 또는 결코 아무 벌이 필요하지 않았다. 유일한 예외는 유다였고, 잡다한 경우에 집안의 규칙을 어긴 것 때문에 벌을 내리는 것이 필요했다. 세 번이나, 가족의 행동 규칙을 일부러 위반했음을 자백(自白)한 것 때문에 유다에게 벌주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명되었는데, 그 때 벌은 그보다 나이 든 아이들이 만장 일치로 선포해서 정해졌고, 벌이 주어지기 전에 유다 자신이 찬성하였다.

예수는 행한 모든 일에 대단히 규율과 체계가 있었지만, 모든 행정 판결에는 해석의 신선한 탄력성과 적용의 개별성이 있었고, 그들에게 가장인 형을 움직이는 정의(正義)의 정신으로 아이들 모두에게 크게 감명을 주었다. 결코 멋대로 동생들을 징계하지 않았고, 그러한 한결같은 공정과 개인적 배려는 예수를 가족 모두에게 무척 소중하게 만들었다.

야고보시몬은, 싸우기 좋아하고 때로는 성내는 놀이 친구들을 설득과 무저항으로 달래는 예수의 계획을 따르려고 애쓰면서 자랐고, 꽤 성공했다. 그러나 요셉유다는, 집에서 그런 가르침에 머리를 끄덕였지만, 동무들에게 공격을 받을 때 서둘러 자신을 방어했다. 특히, 유다는 이 가르침의 정신을 위반한 잘못이 있다. 그러나 무저항은 가족의 규칙은 아니었다. 개인에 관한 가르침을 어기는 데는 아무런 벌이 따르지 않았다.

대체로, 아이들은 모두, 더군다나 여자아이들은, 애정 있는 아버지의 경우에 하는 것과 똑같이, 예수에게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의논하고 속을 털어놓았다.

야고보는 균형이 잘 잡히고 차분한 젊은이로 자라고 있었지만, 예수처럼 영적 성향을 가지지 않았다. 그는 요셉보다 공부를 훨씬 더 잘하는 학생이었고, 요셉은 충실한 노동자이긴 했어도 영적 생각이 더군다나 부족했다. 요셉은 꾸준히 일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아이들의 지적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시몬은 착한 생각을 가진 소년이었어도 너무나 꿈꾸는 사람이었다. 생활에 정착하는 데 느렸고, 예수마리아에게 상당한 걱정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선하고 좋은 뜻을 가진 소년이었

다. 유다는 불 붙이는 나무였다. 가장 높은 이상을 가졌지만, 성질이 안정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각오와 공격성 모두를, 더 많이 가졌지만, 어머니의 비례 및 신중 감각이 상당히 모자랐다.

미리암은 고귀한 것과 영적인 것을 날카롭게 이해하는, 균형이 잘 잡히고 온건한 딸이었다. 마르다는 생각과 행동이 느렸어도 아주 믿을 만하고 유능한 아이였다. 아기 은 집안에서 햇빛 같은 사람이었다. 생각 없이 말을 해도 아주 마음이 진지했다. 가장(家長)인 큰 오빠를 그 아이는 거의 숭배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의 버릇을 잘못 들이지는 않았다. 은 예쁜 아이였지만, 미리암처럼 잘생기지는 않았고, 미리암은, 그 도시에서 첫째 가는 미인은 아니라도, 그 가족 안에서 미인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예수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종교의 다른 여러 단계에 관계된 가족 교육과 관습을 자유화하고 개량하려고 많이 수고했고, 이 모든 변화에 마리아는 진심으로 찬성했다. 이 때가 되어서, 예수는 의문의 여지 없이, 집안의 가장이었다.

이 해에 유다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이 비용을 치르기 위해서 예수는 하프를 파는 것이 필요했다. 이렇게 마지막 오락의 즐거움이 사라졌다. 머리가 피곤하고 몸이 지쳤을 때 하프 켜기를 무척 좋아했지만, 최소한, 세리(稅吏)로부터 그 하프가 차압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위로를 얻었다.

5. 에즈라의 딸, 레베카

비록 가난했어도 나사렛에서 예수의 사회적 지위는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시에서 으뜸가는 젊은이들 가운데 하나였고, 대부분의 젊은 여자들 사이에서 대단히 평판이 좋았다. 예수가 튼튼하고 지적인 남성의 아주 빛나는 표본이었으니까, 또 영적 지도자인 그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나사렛의 부유한 상인이자 무역가 에즈라의 맏딸, 레베카가 이 요셉의 아들을 차츰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달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여자는 사랑을 예수의 누이동생 미리암에게 먼저 고백했고, 미리암은 다시 이 모두를 어머니와 의논했다. 마리아는 크게 마음이 흔들렸다. 이제 그는 가족에게 빠뜨릴 수 없는 가장(家長)이 되었는데, 아들을 잃게 되려는가? 문제가 도대체 그치지 않을 것인가? 다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리고 나서, 멈춰서, 결혼이 예수의 미래 생애에 무슨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깊이 생각했다. 자주는 아니라도, 적어도 어떤 때는, 예수가 “약속의 아이”였다는 사실을 회상했다. 마리아미리암이 이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한 뒤에, 그들은 바로 레베카에게 가서, 그 여자 앞에 사연(事緣)을 모두 털어놓고, 예수가 운명의 아들이다, 그가 위대한 종교 지도자, 아마도 메시아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그 여자에게 정직하게 일러 줌으로, 예수가 미처 알기도 전에, 그 일을 그만두게 하려고 애쓰기로 작정하였다.

레베카는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 이야기에 마음이 떨렸고, 그 여자가 선택한 이 남자와 운명을 같이 하고, 지도자의 일생을 함께 하겠다고 갈수록 더 마음이 굳어졌다. (속으로) 그러한 남자는 더군다나 충실하고 유능한 아내가 필요하리라고 주장했다. 그 여자는 마리아가 자기를 말리려 하는 노력을 집안의 가장이자 유일한 기둥을 잃어버리는 두려움에 대하여 자연스러운 반응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목수의 아들에게 마음 끌리는 것을 아버지가 승인함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가 버는 돈을 잃는 것을 충분히 보상하려고 아버지가 그 가족에게 충분한 소득을 기꺼이 주리라 생각했고, 그 여자는 옳았다. 아버지가 그러한 계획에 찬성했을 때, 레베카마리아미리암과 더 의논했고, 지지를 얻지 못하자, 그 여자는 대담하게 예수

게 직접 갔다. 그 여자는 아버지의 협조를 얻어 이렇게 했고, 그는 레베카의 열일곱 살 되는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예수를 집으로 초대했다.

예수는 주의 깊게, 이해하는 태도로, 처음에는 레베카의 아버지가, 다음에 레베카 자신이 이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어떤 금액의 돈도 자기 아버지의 가족을 몸소 부양하는 책임, “인간의 모든 신뢰 가운데 가장 신성한 것―사람이 자신의 살과 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을 대신할 수 없다는 취지로 그는 친절히 대답했다. 레베카의 아버지는 가족에 헌신하는 예수의 말에 깊이 마음이 움직였고, 그 회담에서 물러났다. 아내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우리는 그를 아들로 삼을 수 없소. 그는 우리에게 너무나 고귀하오.”

그리고 나서 레베카와 중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제까지 그의 생애에서, 교제할 때 소년과 소녀, 젊은 남녀를 거의 구별하지 않았다. 그의 머리는 개인적인 사랑이 인간적 결혼에 이르는 것을 언제라도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에는, 실용적인 세상일의 다급한 문제들과, “아버지의 일에 관한” 궁극의 생애를 골똘히 생각하는 데 전적으로 너무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보통 인간이 부닥치고 결정해야 하는 그런 문제의 하나와 마주친 것이다. 정말로, 그는 “너희와 마찬가지로 모든 면에서 시험을 받았도다.”

주의 깊게 듣고 난 뒤에, 찬미를 표현한 것에 대하여 레베카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이것은 내 일생에 날마다 나를 기쁘게 하고 위로하리라”고 덧붙였다. 단순한 형제 같은 대우와 순수한 친구 관계 외에 어느 여자와도 관계를 가지도록 자유롭지 않다고 설명했다. 첫째 가는 가장 중요한 의무는 아버지의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며,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결혼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나서 덧붙여 말했다: “내가 운명의 아들이라면, 내 운명이 분명히 나타날 때까지 나는 일생 동안 지속되는 책임을 져서는 안 되오.”

레베카는 마음이 찢어지듯 아팠다. 위로받기를 뿌리치고, 아버지가 마침내 세포리스로 이사하기를 찬성할 때까지 아버지에게 나사렛을 떠나자고 졸랐다. 후일에 결혼하려고 찾은 숱한 남자에게, 레베카는 오직 한 마디 대답했다.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그 여자에게는, 일찍이 살았던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이 사람이 생명의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생애를 시작할 때를 기다리기 위해서―산다고. 그 여자는 대중을 위해 수고하는 파란 많은 몇 년을 통해서 헌신하여 그를 따랐으며, 그가 예루살렘으로 승리에 넘쳐 나귀 타고 들어간 그 날, 자리에 있었고 (예수의 눈에 뜨이지는 않았다), 사람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렸던 그 비극과 운명의 날 오후에, 마리아의 옆에서 “다른 여자들 속에” 서 있었다. 이 사람의 아들은 하늘에 있는 수많은 세계 뿐 아니라, 그 여자에게도 “몹시 사랑스럽고, 만인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자”였다.

6. 그가 스무 살 되던 해 (서기 14년)

레베카예수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는 나사렛 근처에서, 나중에는 가버나움에서 수군거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 뒤 몇 년 동안, 남자들이 그를 아낀 것처럼 많은 여자가 예수를 사랑했지만, 두 번 다시, 또 다른 착한 여인이 몸소 헌신하는 제안을 물리치지 않아도 되었다. 이 때부터 계속, 예수에 대한 인간의 사랑은 존경과 찬미로 보는 성질을 띠게 되었다. 남자와 여자들이 다 그를 헌신적으로 사랑했고, 자아를 만족시키거나 애정으로 소유하려는 욕망의 빛을 띤 것이 아니라 그의 됨됨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예수의 인품에 대하여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언제나, 레베카의 헌신적 사랑이 다시 입에 오르내렸다.

미리암레베카의 사건을 잘 알고, 어떻게 오빠가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조차 버렸는가 알고서 (앞날의 생애, 운명의 생애의 요인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를 이상으로 여기고, 오빠 뿐 아니라 한 가장(家長)으로서, 감동적인 깊은 애정을 가지고 그를 아끼게 되었다.

돈을 쓸 수 있는 형편이 못 되었지만, 예수는 유월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싶은 야릇한 욕망이 생겼다. 레베카와 최근에 만난 경험을 알고서, 어머니는 지혜롭게 길을 떠나라고 재촉하였다. 뚜렷하게 의식하지 않았지만, 그가 가장 바란 것은 나사로와 이야기하고 마르다·마리아와 이야기할 기회였다. 자기 가족 다음으로, 이 세 사람을 누구보다도 가장 사랑했다.

예루살렘으로 이 여행을 떠나면서, 메기도·안티파트리스·리다의 길로 갔고, 부모가 에집트에서 나사렛으로 그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지났던 똑같은 길을 일부 거쳤다. 유월절에 가는 데 나흘을 썼고, 팔레스타인의 국제 전쟁터인 메기도와 그 주위에서 벌어졌던 지난 사건들에 대하여 많이 생각했다.

예수예루살렘을 통해서 계속 갔고, 성전과 모여드는 방문자들의 무리를 바라보려고 잠시 멈췄다. 헤롯이 지은 이 성전(聖殿)과 정치적으로 임명된 이 사제직에 대해서 이상하고도 커지는 싫증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나사로·마르다·마리아를 보고 싶었다. 나사로예수와 같은 나이였고, 이제는 집의 가장이었다. 이번 방문할 때가 되어서는, 나사로의 어머니도 또한 무덤에 묻혔다. 마르다예수보다 한 살 남짓 나이가 위였고, 마리아는 두 살 아래였다. 예수는 세 사람 모두에게 우상이 되어 버린 이상(理想)이었다.

이번 방문에, 전통에 대하여 때때로 일어나는 반항심이 갑자기 한 번 치솟았다―예수가 판단하건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그릇 대표하는 의식(儀式) 풍습에 대한 분개심의 표현이었다. 예수가 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나사로예리고 길에 인접한 마을에서 친구들과 유월절을 축하하려고 주선해 놓았다. 이제 예수는 그들이 있는 곳, 나사로의 집에서, 축제(祝祭)를 지내자고 제안했다. 나사로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희생 양이 하나도 없다네.” 그리고 나서 그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그러한 유치하고 의미 없는 의식에 참으로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장황하고 납득이 가는 논설을 시작했다. 엄숙하고 뜨겁게 기도를 드린 뒤에, 그들이 일어섰고 예수는 말했다. “내 민족의 유치하고 어두운 지성들은 모세가 지시한 대로 저희의 하나님을 섬길지어다. 저희가 그리하는 것이 낫지만, 생명의 빛을 본 우리는, 이제 더 죽음의 어두운 길로 우리 아버지께 다가가지 맙시다. 우리의 아버지가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진리를 알고서 자유롭게 됩시다.”

그 날 저녁 땅거미가 질 무렵에, 네 사람은 앉아서, 처음으로 희생 양이 없이 경건한 유대인들이 축하한 유월절 축제를 지냈다. 부풀리지 않은 빵과 포도주가 이 유월절을 지내려고 준비되었으며, 예수는 “생명의 빵”과 “생명의 물”이라 이름지은 이 상징적 음식을 친구들에게 덜어 주었고, 막 나누어 준 가르침을 엄숙히 좇아서 먹었다. 나중에 베다니를 찾았을 때는 언제나, 이 성스러운 의식을 거행하는 것이 그의 버릇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에게 이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처음에 깜짝 놀랐지만, 차츰 그의 생각을 알아듣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이 새로운 유월절 아이디어를 집안에 들여올 생각이 없다고 안심시켰을 때, 어머니는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는, 해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서” 계속 유월절을 지냈다.

결혼에 대하여 마리아예수와 오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이 해 동안이었다. 어머니는 그가 가족에 대한 책임에서 풀려난다면 결혼할 것인가 터놓고 물었다. 눈앞

에 닥친 의무가 결혼을 막았기 때문에 그 문제를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어머니에게 설명했다. 언제라도 결혼 생활에 들어갈 것인가 의심이 든다고 표현했다. 모든 그러한 일은 “나의 때”, 즉 “내 아버지의 일이 시작되어야 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육신으로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머리 속에서 이미 작정했기 때문에, 인간적인 결혼 문제를 전혀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 해에 그는 필사 성품과 신다운 성품을 간단하고 효과적인 한 인간 개성으로 더욱 짜 맞추는 과제를 새로이 시작했다. 도덕적 지위와 영적 이해가 계속 자랐다.

(집을 제외하고) 나사렛 재산이 다 사라졌지만, 이 해에 가버나움에 있던 한 부동산의 지분(持分)을 팔아서 조금 재정의 도움을 받았다. 이것은 요셉의 전 재산의 마지막이었다. 이 가버나움 부동산은 세베대라 이름하는 배 만드는 사람과 함께 처분했다.

요셉은 이 해에 회당 학교를 마쳤고, 집에 있는 목수 작업장에서 작은 벤치에서 일을 시작하려고 준비했다. 아버지의 재산은 바닥이 났지만, 세 사람이 이제 정규적으로 일하고 있으니 가난을 물리치는 데 성공하리라는 전망이 보였다.

예수는 빨리 남자, 그냥 젊은이가 아니라 어른이 되고 있다. 책임지는 것을 잘 배웠다. 실망(失望)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일을 해 나가는가 안다. 계획이 꺾이고 목적이 일시 실패했을 때 용감히 견딘다. 불공평과 마주쳤을 때에도 공정하고 정당하기를 배웠다. 영적 생활에 대한 이상을 땅에서 존재하는 실용적 요구에 어떻게 조절하는가를 배우고 있다. 좀더 가깝고 눈앞에 닥친 필요한 목적(目的)을 이루려고 열심히 수고하면서, 더 높고 먼 이상주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어떻게 계획하는가 배우고 있다. 큰 뜻을 인간 상황의 평범한 요구에 적응하는 기술을 꾸준히 쌓고 있다. 물질적으로 성취하는 기계 작용을 움직이기 위해서 영적 추진 에너지를 이용하는 기술을 아주 거의 통달했다. 땅의 존재를 계속하면서, 어떻게 하늘의 삶을 사는가 천천히 배우고 있다. 한편으로 땅에 있는 가족의 아이들을 안내하고 지도하는 아버지 노릇을 맡으면서, 갈수록 더 하늘 아버지가 궁극에 인도하시는 데 의존한다. 패배에 빠지려 하는 바로 그 문턱에서 솜씨 있게 승리를 움켜쥐는 데 숙달되고 있다. 시간 속에서 닥치는 어려움을 어떻게 영원한 승리로 바꾸는가 배우고 있다.

그래서 해가 지남에 따라서, 시공 세계에서 필사 육체의 생명이 사는 것처럼, 이 나사렛 젊은이는 계속 생명을 체험한다. 유란시아에서 충분하고 대표적이고 충만한 삶을 산다. 그가 만든 생물의 첫 생애, 즉 육체를 입고 사는 생애의 짧고 벅찬 여러 해 동안에 그들이 거치는 체험을 겪으면서, 성숙해서 이 세상을 떠났다. 이 인간 체험 모두가 우주 군주의 영원한 재산이다. 그는 우리를 이해하는 형이요, 공감하는 친구이며, 경험이 많은 군주요, 자비로운 아버지이다.

아이로서 광대한 양의 지식을 쌓았고, 소년으로서 이 정보를 가려 내고 분류하고 연결지었으며, 이제 그 땅에서 어른으로서, 이 정신 재산을 비로소 정리한다. 이것은 이 세상을 비롯하여, 온 네바돈 우주에 두루, 사람이 사는 모든 다른 구체에 있는 동포 필사자들을 대신하여, 나중에 그의 가르침·헌신·봉사에서 이용되도록 준비된다.

그는 이 땅의 아기로서 세상에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연달아 소년기와 청년기 단계를 거쳤다. 이제 성년기의 문턱에 서 있고, 인간 생활의 체험을 풍부히

겪었다. 인간 성품을 충만히 이해하며, 인간 성품이 약한 것에 동정심이 가득하다. 어떤 나이나 어느 단계에 있는 필사 인간에게도,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계시하는 신다운 기술에 숙달되고 있다.

이제 완전히 자란 남자―그 땅에 어른―으로서,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계시하고,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최고의 사명을 계속하려고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