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와 다른지도자...
제 191 편
사도와 다른 지도자들에게 나타나심
부활이 있었던 일요일은 사도들의 생애에서 끔찍한 날이었고, 열 사람은 그 날의 대부분을 문에 빗장을 지르고 그 위층 방에서 보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달아날 수도 있었지만, 바깥에 나다니는 것이 발견되면 산헤드린 관리들에게 체포되는 것이 두려웠다. 토마스는 벳바게에서 혼자서 그의 곤경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었다. 동료 사도들과 함께 남아 있었더라면 그는 더 잘 버티었을 터이고, 더 유익한 길을 따라서 그들의 토론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요한은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생각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는 예수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주가 확언한 것을 적어도 다섯 번, 사흘째를 언급한 것을 적어도 세 번 열거했다. 요한의 태도는 그들에게, 특히 형 야고보와 나다니엘에게 어지간히 영향을 주었다. 요한이 그 집단에서 가장 나이 어린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들에게 더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고립(孤立)된 처지는 그들의 어려움과 많이 상관이 있었다. 요한 마가는 그들이 성전 근처에서 되어 가는 일과 접촉을 유지하게 해 주었고, 도시에서 유력해지는 여러 소문에 관하여 그들에게 정보를 주었지만, 예수가 이미 나타났던 다른 무리의 신자들로부터 소식을 모으려는 생각은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것은 다윗의 사자들이 이제까지 베풀었던 종류의 봉사였지만, 그들은 모두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신자들의 무리에게 부활의 전령(傳令)으로서 마지막 임무를 띠고 자리를 비웠다. 이 여러 해 동안 처음으로 사도들은 하늘나라 일에 관하여 나날의 정보를 얻으려고 그들이 얼마나 다윗의 사자들에게 의존하였는가 깨달았다.
이 날 하루 종일, 베드로는 주가 부활한 것에 관하여 믿음과 의심 사이에 감정이 오락가락하였다. 베드로는 마치 예수의 몸이 안에서 막 증발한 것처럼, 무덤에서 시체를 쌌던 천이 거기에 놓인 광경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베드로는 궁리하였다. “그러나 그가 살아서 자신을 여인들에게 보일 수 있다면, 어째서 자신을 우리에게, 사도들에게 보이지 않는가?” 그가 그 날 밤 안나스의 안마당에서 예수를 부인했기 때문에, 아마도 자기가 사도들 가운데 있다는 이유로 예수가 그들에게 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베드로는 슬퍼지곤 했다. 그리고 나서 “내 사도들에게―그리고 베드로에게―가서 이르라” 하는 여인들이 가져온 말씀에 기운을 얻곤 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듣고 격려를 받는다는 것은 여인들이 살아나신 주를 정말로 보았고 주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을 믿어야 함을 의미했다. 이처럼 베드로는 하루 종일 믿었다가 의심하며 갈팡질팡했고, 8시가 조금 지나서 안마당으로 나갔다. 베드로는 그가 주를 부인(否認)한 것 때문에 예수가 그들에게 오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사도들 사이에서 자리를 비우려고 생각했다.
처음에 야고보 세베대는 그들에게 모두 무덤으로 가자고 주장했다. 그는 신비의 진상을 알아보려고 무언가 하는 데 크게 찬성했다. 야고보의 재촉에 반응해서 그들
이 대중(大衆) 앞에 나서는 것을 막은 사람은 나다니엘이었는데, 그는 이 때 목숨을 부당하게 위태롭게 하는 데 대하여 예수가 경고한 것을 그들에게 상기시킴으로 이렇게 했다. 한낮이 되어서 야고보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분해져서 경계하며 기다렸다. 그는 말이 없었다. 예수가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아서 엄청나게 실망했고, 다른 무리와 개인들에게 주가 여러 번 나타난 것을 몰랐다.
안드레는 이 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많이 기울였다. 그 상황에 몹시 어리둥절하였고, 자기 몫보다 더 많이 의심이 들었지만, 적어도 동료 사도들을 지도하는 책임으로부터 벗어난 어떤 홀가분한 느낌을 누렸다. 그들이 정신 헛갈리는 이 때를 닥치기 전에 주가 지도하는 짐에서 해방시켜 준 것을 그는 정말로 고맙게 여겼다.
이 비극(悲劇)의 날, 길고 피곤한 몇 시간 동안, 한 번이 넘게, 그 무리에서 유일하게 지탱하는 영향력은 나다니엘의 특징인 철학적 조언이 빈번하게 기여한 것이었다. 그는 하루 종일, 열 명 사이에서 정말로 고삐를 쥐는 세력이었다. 한 번도 그는 주가 부활하신 것을 믿거나 불신한다고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이 지남에 따라서, 그는 예수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약속을 지켰다고 믿는 방향으로 점점 더 기울었다.
열심당원 시몬은 너무나 움츠러들어서 그 토론에 끼지 못했다. 시간의 대부분을 그는 방 구석에서 벽을 바라보며 소파에 기대고 있었고, 하루 종일 여섯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하늘나라 개념은 파괴되었고, 주의 부활이 그 상황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의 실망(失望)은 무척 개인적이었고 너무나 가슴에 사무쳐서, 부활과 같은 엄청난 사실에 부딪쳐서도 갑자기 통지받고 회복하지 못했다.
적자니 이상하지만, 여느 때 말이 없던 빌립은 이 날 오후 내내, 말을 많이 하였다. 아침 나절에는 할 말이 거의 없었지만, 오후 내내 다른 사도들에 관하여 물었다. 베드로는 빌립의 질문에 자주 귀찮아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의 물음을 마음씨 좋게 받아들였다. 빌립은 예수가 정말로 무덤에서 살아났다면, 그의 몸이 십자가에 못박힌 육체적 자국을 지닐 것인가 특별히 알고 싶어했다.
마태는 어지간히 정신이 헛갈렸고, 동료들의 토론(討論)에 귀를 기울였지만, 머리 속에서 앞으로 그들의 재정 문제를 곰곰이 살피면서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예수가 부활했다고 생각된 것에 상관 없이, 유다는 사라졌다. 다윗은 격식 차리지 않고 자금을 그에게 넘겼고, 그들은 권위 있는 지도자가 없었다. 부활에 관한 그들의 논쟁을 마태가 깊이 고려하는 데 생각이 미치기 전에, 그는 이미 주와 얼굴을 마주하고 보았다.
알패오 쌍둥이는 이 심각한 토론에 거의 끼어 들지 않았고, 관습대로 시중을 드느라고 꽤 바빴다. 빌립이 물은 질문에 대답하여 그들 가운데 하나가 한 말은 그들의 태도를 표현했다: “우리는 부활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주와 함께 이야기했다고 말씀하시고, 우리는 어머니를 믿노라.”
토마스는 그가 흔히 겪는 절망적으로 우울한 시기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 날 얼마 동안 잠잤고, 나머지 시간에는 산 위로 걸어다녔다. 그는 동료 사도들과 다시 함께 있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혼자서 있고 싶은 바람이 더 강했다.
주는 여러 가지 이유로, 사도들에게 처음으로 상물질(上物質)로 나타나는 것을 미루었다. 첫째로, 그들이 그가 부활했다는 말을 들은 뒤에, 육체를 입고 아직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그의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그들에게 일러 준 것에 대하여 잘
생각해 볼 겨를을 가지기를 바랐다. 주는 그들 모두에게 모습을 나타내기 전에, 베드로가 특이한 어떤 문제와 씨름하기를 바랐다. 둘째로, 그가 처음으로 나타날 때 토마스가 그들과 함께 있기를 바랐다. 요한 마가는 이 일요일 아침 일찍, 벳바게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토마스를 찾아냈고, 그렇다는 말을 사도들에게 11시쯤에 전해 왔다. 나다니엘이나 어떤 다른 두 사도(使徒)가 찾아갔다면, 그 날 어느 때라도 토마스는 사도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그는 정말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전날 밤에 사실 그대로 떠났기 때문에, 너무 마음이 거만해서 그렇게 빨리 제 발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튿날이 되어, 그는 너무나 우울해졌고, 그래서 그가 돌아갈 마음을 먹기까지 거의 한 주가 걸렸다. 사도들은 그를 기다렸고, 그는 형제들이 그를 찾고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요청하기를 기다렸다. 토마스는 이처럼 다음 토요일 저녁까지 동료들로부터 떨어져 있었고, 그 때 어둠이 찾아온 뒤에, 베드로와 요한은 벳바게로 가서 그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예수가 처음으로 그들에게 나타난 뒤에, 그들이 대번에 갈릴리로 가지 않았는가 하는 까닭이다. 그들은 토마스 없이 가려 하지 않았다.
1. 베드로에게 나타나심
예수가 마가의 집 뜰에서 시몬 베드로에게 나타난 것은 이 일요일 저녁에, 8시 반이 가까운 때였다. 이것은 여덟 번째로 상물질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주를 부인한 이후로, 베드로는 의심(疑心)과 죄책감의 무거운 짐 밑에서 살았다. 토요일 내내, 또 이 일요일에, 그는 아마도 이제는 더 사도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과 싸웠다. 그는 유다의 운명에 소스라치게 놀랐고, 그도 주를 배반했다고까지 생각했다. 물론 주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정말로 살아났다면, 예수가 그들에게 나타남을 막는 것은 그가 사도들과 함께 있기 때문일까 싶다고, 이 날 오후 내내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의 틀 속에서, 그러한 혼의 상태에서, 풀 죽은 사도가 꽃과 풀숲 사이로 거니는 동안에 예수는 베드로에게 나타났다.
안나스의 집 현관에서 주가 지나가면서 보낸 사랑에 넘친 눈길을 베드로가 생각했을 때, 빈 무덤에서 돌아온 여인들이 그 날 아침 일찍 그에게 가져온 소식, “내 사도들에게―그리고 베드로에게―가서 이르라”하는 그 놀라운 소식을 머리 속에서 살펴보는 동안, 이 자비(慈悲)의 표시를 생각하는 동안에, 믿음은 비로소 의심을 이겼고, 그는 가만히 서서 주먹을 불끈 쥐면서, 크게 말했다: “나는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음을 믿노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이르리라.” 그리고 이렇게 말하자, 그 앞에서 사람의 모습이 갑자기 나타나서, 귀에 익은 목소리로 베드로에게 말했다: “베드로야, 적은 너를 갖고 싶어했어도 나는 너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고, 네가 나를 부인한 것은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 아님을 알았노라. 그런즉 네가 미처 부탁하기도 전에 너를 용서(容恕)하였노라. 그러나 너는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복음(福音)의 좋은 소식을 전하도록 준비하면서, 이제 너 자신에 대하여, 그리고 그 때의 괴로움을 그만 생각하여야 하느니라. 이제는 더 하늘나라로부터 네가 무엇을 얻을까 아랑곳하지 말고, 오히려 비참한 영적 가난 속에 사는 자들에게 네가 무엇을 줄 수 있는가 걱정해야 하느니라. 시몬아, 새 날의 전투를 위하여, 사람의 자연스러운 지성 속에 있는 영적 어둠과 악한 의심과 투쟁하기 위하여, 자세를 갖추라.”
베드로와 상물질 예수는 뜰을 지나서 걸었고, 과거·현재·미래의 일에 대하여 거의 5분 동안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서 그가 물끄러미 보는 가운데 주는 사라지며 말했다: “내가 너희 형제와 함께 너를 볼 때까지, 베드로야 잘 있거라.”
한 순간, 베드로는 그가 부활하신 주와 함께 이야기했고, 아직도 하늘나라의 대사(大使)임을 확신할 수 있다는 깨달음에 휩싸였다. 그는 영화롭게 된 주가 복음을
계속 전파하라고 그에게 타이르심을 막 들었다. 그리고 가슴 속에서 이 모든 것이 넘쳐흐르자, 위층 방으로, 동료 사도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숨이 차게 흥분하여 외쳤다: “나는 주를 보았노라. 그가 뜰에 계셨는지라. 그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나를 용서하셨는지라.”
베드로가 뜰에서 예수를 보았다는 선언은 동료 사도들에게 깊이 감명을 주었고 그들은 의심을 거의 버릴 준비가 되었는데, 그 때 안드레가 일어나서 동생의 보고(報告)에 지나치게 영향을 받지 말라고 경고했다. 베드로가 전에 진짜가 아닌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안드레는 넌지시 비추었다. 주가 그들에게 물 위에서 걸어오는 것을 베드로가 보았다고 주장한 환상(幻想), 갈릴리 바다에서 밤에 본 그 환상을 안드레가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어도, 그는 이 사건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을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내비치기에 넉넉히 이야기했다. 형이 빗대어 한 말에 시몬 베드로는 무척 마음이 상했고, 즉시 고개를 푹 숙이고 침묵에 빠졌다. 쌍둥이는 베드로를 무척 딱하게 여겼고, 그에게 건너가서 동정심을 표현하고, 그를 믿는다고 말하고, 그들의 어머니도 또한 주를 보았다고 다시 주장했다.
2. 사도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나다
그 날 저녁 9시가 조금 지난 뒤에, 그리고 클레오파스와 야곱이 떠난 뒤에, 알패오 쌍둥이는 베드로를 위로했고 나다니엘은 안드레를 꾸짖었다. 열 사도가 붙잡힐까 두려워서 문을 다 빗장으로 잠그고서 위층 방에서 거기 모여 있는 동안, 상물질 모습으로 주는 그들 한가운데 갑자기 나타나서 말했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내가 나타날 때 어찌하여 너희는 마치 유령을 본 듯 그리 놀라느냐? 육체를 입고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내가 이 일에 관하여 이르지 아니하더냐? 대사제와 통치자들이 내가 죽음을 당하도록 넘겨 주리라, 너희 무리 가운데 하나가 나를 저버릴 것이라, 사흘째에 내가 살아나리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더냐? 여인들, 클레오파스와 야곱, 하다 못해 베드로의 보고(報告)에 대하여 너희가 온갖 의심을 하고 이 모든 토론을 하다니 무엇 때문이냐? 얼마나 오랫동안 너희가 내 말을 의심하고 내 약속을 믿지 않겠느냐? 그리고 나를 보았으매 너희가 믿겠느냐? 이제도 너희 가운데 하나가 자리에 없느니라. 너희가 다시 한 번 모였을 때, 그리고 사람의 아들이 무덤에서 살아난 것을 너희 모두가 확실히 안 뒤에, 갈릴리로 떠나라. 하나님을 믿고, 서로를 믿으라. 그렇게 너희는 하늘나라의 새로운 봉사에 들어갈지니라. 너희가 갈릴리로 갈 준비가 되기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예루살렘에 머물리라. 나의 평화를 너희에게 두고 떠나노라.”
그들에게 말을 마치고 나서, 상물질(上物質) 예수는 눈앞에서 한 순간에 사라졌다. 모두 엎어져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라진 주를 경배했다. 이것은 주가 아홉 번째로 상물질로 나타난 것이다.
3. 상물질 생물과 함께
이튿날 월요일은 전부, 그 때 유란시아에 있던 여러 상물질 생물과 함께 있는 데 쓰였다. 주의 상물질 과도기 체험에 참여하는 자로서, 사타니아의 일곱 저택 세계로부터 여러 계급의 과도기 필사자들과 더불어, 1백만이 넘는 상물질 지휘자와 동료들이 유란시아로 왔다. 상물질 모습의 예수는 이 눈부신 지성 존재들과 함께 40일 동안 머물렀다. 그는 그들을 가르쳤고, 그 지도자들로부터, 사타니아의 사람
사는 세계들에서 온 사람들이 체계의 상물질 구체들을 통과하면서 거치는 상물질 과도기의 생명에 대하여 이야기를 들었다.
이 월요일 자정 무렵에 주의 상물질 모습은 상물질 진보에서 둘째 단계로 이동하기 위하여 조절되었다. 다음에 땅에서 필사 아이들에게 나타났을 때, 그는 둘째 단계의 상물질 존재였다. 상물질 생애에서 주가 나아가는 동안, 상물질 지성 존재와 변화시키는 그 동료들이, 주를 필사자의 물질 눈에 보이게 만들기가, 기술적으로 점점 더 어려워졌다.
예수는 4월 14일, 금요일에, 상물질의 셋째 단계로, 17일 월요일에 넷째 단계로, 22일 토요일에 다섯째 단계로, 27일 목요일에 여섯째 단계로, 5월 2일 화요일에 일곱째 단계로, 7일 일요일에 예루셈 시민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14일 일요일에 에덴시아의 최고자들의 품에 들어갔다.
이전의 여러 자신 수여(授與)와 연관하여, 그가 별자리 본부에서 거주한 것으로부터, 심지어 계속 초우주 본부 봉사에 이르기까지, 또 그것을 거쳐서, 시공의 승천하는 필사자들의 생애를 이미 충만히 체험했기 때문에, 이 방법으로 네바돈의 미가엘은 우주에서 체험하는 봉사를 마쳤다. 바로 이 상물질 체험으로 말미암아 네바돈의 아들 창조자는 일곱째이자 마지막 우주 수여를 정말로 마치고 만족스럽게 끝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