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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영향

뉴징검다리 2010. 2. 9. 07:28

2. 로마의 영향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화를 통째로 이어받았고, 제비 뽑는 정부 대신에 대의 정치(代議政治)를 썼다. 그리고 로마가 이상한 언어와 민족에 대하여, 또 종교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대한 태도를 온 서양 세계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이 변화는 당장에 그리스도교를 유리하게 만들었다.

로마에서 초기에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가운데 많은 것은 오로지 전도할 때 불행하게도 “나라”라는 용어를 썼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어떤 종교에도 관대했지만,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티가 나는 것은 무엇이나 대단히 분개했다. 그래서 대체로 오해 때문에 생긴 이 초기의 박해가 사라졌을 때, 종교 선전을 위하여 무대가 활짝 열렸다. 로마인은 정치 행정에 관심을 가졌고, 예술이나 종교에는 거의 아랑곳하지 않았어도 이 두 가지에 특별히 관대하였다.

동방(東方)의 율법은 엄격하고 원칙이 없었다. 그리스의 율법은 유연하고 예술적이었다. 로마의 법은 기품이 있고 존경심을 일으켰다. 로마의 교육은 전례 없는 무딘 충성심을 낳았다. 초기의 로마인들은 정치적으로 헌신하고 숭고하게 몸을 바친 사람들이었다. 정직(正直)하고 열심이 있고 이상에 헌신했지만, 그 이름에 마땅한 종교가 없었다. 그리스인 선생들이 그들에게 바울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로마인들은 위대한 민족이었다. 자신을 다스렸기 때문에 서양(西洋)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러한 견줄 데 없는 정직, 헌신, 굳센 자제는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고 성장시키는 데 이상적인 흙이었다.

정치적으로 국가에 헌신한 것처럼, 이 그리스·로마인들이 제도화(制度化)된 교회에 똑같이 영적 헌신을 바치는 것은 수월했다. 로마인들은 교회가 국가의 경쟁자라고 두려워했을 때에만 교회에 대항하여 싸웠다. 민족의 철학이나 토착 문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로마그리스 문화를 제 것으로 이어받았고, 용감하게 그리스도를 그 도덕 철학으로 채용했다. 그리스도교는 로마의 도덕 문화가 되었지만, 그렇게 도매 방법으로 새 종교를 받아들인 사람들의 영적 성장에서 개인의 체험이 된다는 의미에서는 도저히 로마의 종교가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정말로 많은 개인이 이 모든 국가 종교의 표면 밑으로 파고들었고, 혼의 영양(營養)을 얻기 위하여,

리스화되고 이교화된 그리스도교에 잠재하는 진리 속에 숨어 있는 의미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한 것은 참말이다.

금욕주의자와 “자연과 양심”에 대한 그들의 억센 호소는 로마 전체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적어도 지적 의미에서, 더 낫게 준비시켰을 뿐이다. 로마인은 성질과 훈련으로 보면 법률가였고, 자연 법칙까지도 존경했다. 이제, 그리스도교 안에서, 자연 법칙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헤아렸다. 시세로버질을 낳을 수 있는 민족은 바울그리스화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기에 무르익었다.

그래서 이 로마화된 그리스인들은 유대인과 그리스도 교인이 그들의 종교를 철학화하고, 그 관념을 조정하고 그 이상을 체계화하며, 종교 관습을 기존의 생명 흐름에 적응하기를 강요하였다. 이 모두가 히브리 성서가 그리스어로 번역되어, 또 나중에 신약이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엄청나게 도움을 받았다.

유대인들과 많은 다른 민족과 대조해서, 그리스인들은 오랫동안 잠정적으로 불멸(不滅)을, 죽은 뒤에 어떤 식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을 믿어 왔고,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의 바로 그 핵심이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강하게 호소하리라는 것이 확실했다.

그리스 문화와 로마의 정치적 승리가 연속된 것은 지중해의 땅을 한 언어(言語)와 한 문화(文化)를 가진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하였고, 서양 세계가 유일한 하나님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켰다. 유대교는 이 하나님을 마련해 주었지만, 유대교는 로마화된 이 그리스인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빌로는 반대를 줄이려고 얼마큼 도왔지만, 그리스도교는 그들에게 더 좋은 유일한 하나님 개념을 드러냈고, 그들은 쉽사리 받아들였다.

3. 로마 제국 밑에서

로마의 정치적 통치가 강화된 뒤에, 그리스도교가 널리 퍼진 뒤에, 그리스도 교인들은 자신들이 유일한 하나님, 위대한 종교 개념을 가졌지만 제국이 없음을 발견했다. 그리스·로마인은 자신들이 큰 제국을 가졌어도, 제국 숭배와 영적 통일에 걸맞는 종교 개념으로 쓰일 하나님이 없음을 발견했다. 교인(敎人)들은 제국을 받아들였고, 제국(帝國)은 그리스도교를 채택했다. 로마인은 정치적 통치의 단결, 그리스인은 문화와 학문의 통일, 그리스도교는 종교 사상과 관습의 통일을 마련해 주었다.

로마는 제국의 보편성 때문에 민족주의 전통을 이겨 냈고, 역사에서 처음으로 다른 종족과 나라들이 적어도 명칭으로는, 하나의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금욕주의자(禁慾主義者)들의 맹렬한 가르침과 신비(神秘) 종파들이 부르짖는 구원의 약속 사이에 큰 싸움이 있었을 때, 그리스도교는 로마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리스도교는 신선하게 위로하는 말씀과 사람을 해방하는 힘을 가지고, “사심(私心) 없다”는 낱말이 없는 언어를 가진 민족, 영적으로 갈급한 민족에게 왔다.

신봉자들이 봉사하는 생애를 산 그 방법, 아니 맹렬히 박해하던 초기에 믿음을 위하여 죽은 그 방법조차, 그리스도교에게 아주 큰 힘을 주었다.

그리스도가 아이들을 사랑한 것에 관한 가르침은 아이들을 원하지 않을 때, 특히 여자(女子) 아기들을 내버려 죽게 하는, 널리 퍼졌던 관습을 곧 그치게 만들었다.

그리스도교 예배의 초기 방식은 대체로 유대인 회당에서 이어받고, 미트라교 의식(儀式)에 따라서 고쳐지고, 거기에 후일에 많은 이교도의 허식(虛飾)이 더해졌다. 초대 그리스도 교회의 뼈대는 유대교로 전향하고 그리스도 교인이 된 그리스인들이었다.

그리스도 이후 2세기는 전 세계 역사에서 좋은 종교가 서양 세계에서 진보하기에 가장 좋은 때였다. 1세기에 그리스도교는 투쟁과 타협으로, 뿌리를 내리고 빨리 퍼지려고 자체를 준비했다. 그리스도교는 황제를 받아들였고, 나중에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채택했다. 이 때는 새 종교가 퍼지기에 좋은 시대였다. 종교의 자유가 있었고, 여행은 보편적이고, 사상(思想)은 쇠고랑에 묶이지 않았다.

그리스화된 그리스도교를 이름으로만 받아들여서 생긴 영적 추진력은 로마에 너무 늦게 왔고, 그래서 한창 시작된 도덕의 쇠퇴를 막거나, 이미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확대되는, 종족의 쇠퇴를 보상하지 못했다. 이 새 종교는 제국 로마에게 문화적 필수품이었고, 더 큰 의미에서 영적 구원을 얻는 수단이 되지 못한 것은 지극히 불행한 일이다.

정부의 일에 개인 참여의 부족이 가져오는 확실한 결과로부터, 지나친 온정주의(溫情主義), 무거운 세금과 극심한 징세의 폐해, 금(金)을 유출하게 만들고 적자(赤字)가 나게 레반트와 무역한 것, 유흥의 광란, 로마식 표준화, 여자의 지위 격하, 노예 제도와 종족의 타락, 육체적 전염병, 거의 영적 불모지인 곳까지 제도화된 국가 교회로부터는 좋은 종교조차 큰 제국을 구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조건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초기의 학교들은 절충되지 않은 예수의 가르침을 많이 계속 유지했다. 판타에누스클레멘트를 가르쳤고, 다음에 계속하여 인도에서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나다니엘을 따랐다. 예수의 이상의 얼마큼은 그리스도교를 세우는 데 희생이 되었어도, 공정하게 말하면, 2세기 끝이 되어서 그리스·로마 세계의 거의 모든 위대한 지성(知性)은 그리스도 교인이 되었다는 것을 기록해야 한다. 승리는 완성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제국이 무너진 뒤에도 그리스도교가 살아남는 것을 보장하도록 이 로마 제국은 충분히 오래 견디었다. 그러나 하늘나라 복음을 그리스인의 그리스도교 대신에 받아들였더라면, 로마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는 때때로 추측해 보았다.

4. 유럽의 암흑 시대

교회는 사회의 부속물이요 정치의 연합군이니까, 이른바 유럽의 “암흑 시대”의 지적·영적 쇠퇴를 함께 나눌 운명을 가졌다. 이 시대에, 종교는 자꾸 수도원화되고, 금욕화(禁慾化)되고 합법적인 것이 되었다. 영적 의미에서 그리스도교는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이 기간을 통해서 내내, 잠자고 세속화된 이 종교와 나란히, 신비주의의 연속되는 흐름이 있었고, 이것은 비현실에 가깝고 철학적으로 범신주의(汎神主義)와 비슷한, 광신의 영적 체험이었다.

어둡고 절망에 빠진 이 여러 세기 동안, 종교는 다시 실질적으로 한 다리 걸쳐서 겪는 것이 되었다. 개인은 교회의 압도하는 권한·전통·명령 앞에서 거의 길을 잃어버렸다. 신의 법정(法廷)에서 특별한 영향을 가졌다고 생각되고, 따라서 효력이 있게 하소연하면 신들 앞에서 사람을 위하여 중재할 “성자(聖者)”의 무리가 창조되어 새로운 영적 위험이 생겼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충분히 사회화되고 이교화되어서, 다가오는 암흑 시대를 막을 힘이 없었지만, 도덕적으로 어둡고 영적으로 침체된 이 오랜 기간에 살아남기에 더 낫게 준비되었다. 서양 문명의 긴 밤을 통해서 줄곧 버티었고, 르네상스가 밝아왔을 때 아직도 도덕적 영향을 세상에서 미치고 있었다. 암흑(暗黑) 시대가 지난 뒤를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회복은 그 가르침의 수많은 종파를 낳았고, 이 여러 종파는 특별한 지성·감정·영적 부류의 인간 성격에 적당한 신앙이었다. 그리고 이 특별한 여러 그리스도교 집단, 다시 말해서 종교 집단들 중에서 다수가 이 발표를 작성할 때 아직도 지속한다.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종교를 예수에 관한 종교로 뜻하지 않게 변질(變質)시킨 데서 생겨난 역사를 전시한다. 더 나아가서 그것은 그리스화, 이교화(異敎化), 세속화, 제도화, 지적 쇠퇴, 영적 타락, 도덕적 겨울잠, 절멸의 위협, 그 뒤에 회생(回生), 분열, 그리고 최근에 비교적 회복을 겪은 역사를 제시한다. 그러한 족보는 본래부터 활력이 있고 광대한 회복하는 자원을 소유함을 가리킨다. 바로 이 그리스도교가 문명화된 서양 민족 세계에 지금 존재하며 생존(生存) 투쟁에 부닥치고 있으며, 이 싸움은 지배권을 얻으려 했던 지난날의 투쟁의 특징을 나타냈던 그 중대한 여러 위기보다 훨씬 더 불길(不吉)하다.

종교는 과학적 지성과 물질주의 경향을 가진 새 시대의 도전과 이제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에 벌어지는 이 거대한 싸움에서, 예수의 종교는 궁극에 승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