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6 편
화요일 저녁 올리브 산에서
이 화요일 오후에, 예수와 사도들이 겟세마네 캠프까지 가는 길에 성전 바깥으로 나가면서, 마태는 성전의 건축에 주의를 끌면서 말했다: “주여, 이것들이 어떤 모양의 건물인가 지켜보소서. 육중한 돌과 아름다운 장식(裝飾)을 보소서. 도대체 이 건물들이 파괴되는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그들이 올리브 산을 향하여 줄곧 가는 동안, 예수는 말했다: “너희가 이 돌과 이 육중한 성전을 보는구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날이 곧 닥치리라. 사람들이 이 돌들을 모두 던져 버리리라.” 신성한 성전의 파괴를 묘사하는 이 논평은 주의 뒤를 따라 걷는 동안, 사도들의 호기심을 일으켰다.
겟세마네를 향하여 기드론 골짜기를 따라서 지나가는 군중을 피하려고 예수와 동료들은 가까운 거리에 올리브 산 서쪽 비탈을 기어오르고, 다음에 공공 캠프장 위로 조금 떨어져, 겟세마네 가까이 그들의 사립 캠프까지 오솔길을 따라갈 생각이 있었다. 베다니로 계속 이끄는 길을 등지고 돌아서자, 그들은 지는 태양의 햇살로 영화롭게 된 성전을 지켜보았다. 산에서 머무르는 동안에, 그들은 도시의 불빛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불이 비추어진 성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았다. 거기서 부드러운 보름달 빛 아래서, 예수와 열두 사도는 앉았다. 주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당장에 나다니엘이 이렇게 물었다: “주여, 말씀하소서. 언제 이 사건들이 일어나려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나이까?”
1. 예루살렘의 멸망
나다니엘의 물음에 답하여 예수는 말했다: “그렇게 하마, 이 민족이 불법(不法)의 잔을 가득 채웠을 때, 응보가 우리 조상의 이 도시에 급속히 내려올 때에 관하여, 너희에게 일러 주리라. 나는 바야흐로 너희를 떠나려 하고, 아버지께로 가노라. 내가 너희를 떠난 뒤에, 아무도 너희를 속이지 않도록 조심하라, 많은 사람이 구원자로 와서 많은 사람이 길을 잃게 할 것임이라. 너희가 전쟁과 전쟁 소문을 들을 때 상관하지 말지니, 비록 이 모든 것이 일어나더라도, 예루살렘의 종말이 아직 가깝지 아니한 때문이라. 너희는 기근(饑饉)이나 지진(地震)에 마음이 흔들리지 말며, 너희가 국가 당국에 끌려가고 복음을 위하여 박해받을 때 근심해서도 안 되느니라. 너희는 나 때문에 회당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갇히겠고, 너희 가운데 더러는 죽음을 당하리라. 너희가 총독과 통치자들 앞에 끌려갈 때, 그것은 너희 믿음을 간증하기 위한 것이요, 하늘나라 복음을 너희가 끈질기게 믿음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 너희가 재판관 앞에 설 때, 무엇을 말해야 할까 미리 초조해하지 말지니, 바로 그 시간에 영(靈)이 너희가 너희 적들에게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너희를 가르칠
것임이라. 진통이 있는 이 날에 너희 친척들조차, 사람의 아들을 거절한 자들의 지휘 밑에서 너희를 감옥과 죽음으로 인도하리라. 한동안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의 미움을 받을까 싶으나, 이 박해 속에서도 나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겠고, 내 영이 너희를 저버리지 아니하리라. 참으라! 이 하늘나라 복음이 모든 적을 이기고, 궁극에 모든 민족에게 선포될 것을 의심하지 말라.”
예수는 도시를 내려다보면서 멈추었다. 메시아의 영적 개념을 부인하는 것, 기대된 구원자의 물질적 사명에 집요하게, 맹목(盲目)으로 집착하려는 결의는 얼마 안 있어 유대인들을 강력한 로마 군대와 직접 충돌하게 하리라는 것, 그러한 투쟁은 오로지 유대 나라의 마지막 완벽한 파멸을 가져올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주는 깨달았다. 그의 민족이 그의 영적 수여(授與)를 거절하고 아주 자비롭게 비치는 하늘의 빛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때, 그렇게 함으로써 땅에서 영적 사명을 가진 독립된 민족으로서 그들은 자체의 멸망을 굳혔다. 궁극에 그들의 멸망을 가져온 소란으로 직접 이끈 것은 이 현세의 메시아 아이디어였다는 것을 유대 지도자들도 나중에 인정했다.
예루살렘이 초기 복음 운동의 요람(搖籃)이 되도록 예정되었기 때문에, 예수는 예루살렘의 파멸과 연관하여 유대 민족이 끔찍하게 멸망할 때 복음 선생과 전도자들이 죽기를 원하지 않았고, 따라서 추종자들에게 이 가르침을 주었다. 예수는 제자들 중에 더러 곧 다가오는 이 항쟁에 말려들어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그렇게 죽지 않을까 많이 걱정했다.
그리고 나서 안드레가 물었다: “그러나 주여, 거룩한 도시와 성전이 멸망하게 되면, 그리고 당신이 우리를 지도하려고 여기 계시지 않으면, 언제 우리가 예루살렘을 버려야 하나이까?” 예수가 말했다: “너희는 내가 떠난 뒤에, 아니 진통과 모진 박해가 있을 이 시절을 통해서 여기 남아 있어도 좋으나, 거짓 선지자들의 폭동이 있은 뒤에 너희가 예루살렘이 마침내 로마 군대(軍隊)에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때 예루살렘의 황폐가 가까웠음을 너희가 알리라. 그 때 너희는 산으로 달아나야 하느니라. 도시 안에, 또 그 근처에 있는 자는 누구나 아무 것도 구제하려고 머무르지 말고, 바깥에 있는 자들도 그 안으로 감히 들어가지 말지니라. 큰 시련이 있으리니, 이 때는 이방인이 복수하는 시절이 될 것임이라. 너희가 그 도시를 버린 뒤에, 순종하지 않는 이 민족은 칼날에 사라지고 모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겠고, 그렇게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 그 동안에, 내가 너희에게 경고하노니, 속지 말라. 누구라도 너희에게 와서, ‘보라, 여기 구원자가 있다’ 아니면 ‘보라, 저기 그가 있다’ 하면 믿지 말지니, 많은 거짓 선생이 일어나고 숱한 사람이 길을 잃을 것임이라. 그러나 너희는 속지 말아야 하나니, 내가 이것을 모두 미리 너희에게 일렀음이라.”
주의 이 놀라운 예언들이 어리둥절한 머리 속에 가라앉는 동안, 사도들은 상당히 오랫동안 달빛 속에서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바로 이 경고(警告)에 순응하여, 로마 군대가 처음 나타나자, 신자와 제자들 무리 거의 전부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달아났고, 북쪽에 펠라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발견했다.
이 뚜렷한 경고가 있은 뒤에도 예수의 많은 추종자는 이 예언이, 메시아가 다시 나타나심이 새 예루살렘의 확립을 초래하고, 세계의 서울이 되도록 도시의 확장을 초래할 때 예루살렘에서 분명히 일어날 변화를 언급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머리 속에서 이 유대인들은 성전의 멸망을 “세상의 종말(終末)”과 연결하려고 각오가 굳었다. 그들은 이 새 예루살렘이 온 팔레스타인을 채우리라, 세상의 종말이 온 뒤
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즉시 나타나는 일이 따를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베드로가 “주여,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날 때 모든 것이 없어질 것을 우리가 아나이다. 그러나 당신이 이 모든 것을 일으키려고 언제 돌아오실까 우리가 어떻게 알겠나이까?”하고 말한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이 말을 듣자, 예수는 얼마 동안 생각에 잠겼고, 그리고 나서 말했다: “너희가 늘 잘못하는 것은 새 가르침을 옛 가르침에 붙이려고 언제나 애쓰는 까닭이라. 너희의 굳어진 관념에 따라서 복음을 해석하기를 너희가 고집하느니라. 그런데도 내가 너희를 깨우치려고 애쓰리라.”
2. 주의 재림
예수는 몇 차례에 걸쳐 말씀하였는데, 이것은 말씀을 듣는 자들로 하여금, 그가 얼마 안 있어 이 세상을 떠날 뜻이 있지만 그가 하늘나라의 일을 마치려고 아주 확실히 돌아오리라 추측하도록 이끌었다. 그가 그들을 떠나리라는 확신이 추종자들 사이에 커짐에 따라서, 그리고 그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 그가 돌아온다는 이 약속을 모든 신자가 단단히 붙들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웠을 따름이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신다는 교리는 이처럼 그리스도 교인들의 가르침 속에 일찍 합병되었으며, 거의 모든 후세의 제자들이 경건하게 이 진리를 믿어 왔고, 그가 언젠가 오시기를 확신을 가지고 기대해 왔다.
그들이 주, 선생과 갈라져야 한다면, 돌아오리라는 이 약속을 얼마나 더 굳세게 이 초기의 제자와 사도들이 붙잡았는가. 그리고 그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예루살렘이 멸망한다는 예언을 다시 오신다는 이 약속과 연결시켰다. 올리브 산에서 가르친 이 날 저녁 내내, 주가 바로 그런 잘못을 막으려고 특별히 고심(苦心)했는데도, 그들은 그의 말씀을 줄곧 이렇게 풀이했다.
베드로의 물음에 예수는 대답을 이었다: “어찌하여 너희는 아직도 사람의 아들이 다윗의 보좌에 앉기를 찾고, 유대인의 물질적인 꿈이 성취되리라 기대하느냐?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여태까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너희가 이제 내려다보는 것들은 이제 종말(終末)에 이르고 있으되, 이것은 새 시작이 될 것이요, 거기로부터 하늘나라 복음이 온 세상으로 가고 이 구원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리라. 어둠의 왕이 되어 버린 자, 다음에 아담, 그를 뒤따라 멜기세덱, 그리고 오늘날 사람의 아들을 이 세상에 이미 수여하신 것 같이, 하늘나라가 완전히 결실(結實)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어김없이 진리를 더 크게 드러내고 올바름을 더 높이 나타내시리라는 것을 확신하라. 그래서 내 아버지는 어둡고 악한 이 세상에도, 계속하여 자비를 나타내고 사랑을 보이시리라. 내 아버지가 내게 모든 능력과 권한을 투입하신 뒤에, 나도 또한 그렇게 너희의 운명을 계속 따르고, 내 영이 함께 함으로 하늘나라의 일을 안내하겠고, 그 영을 머지 않아 모든 육체에 부으리라. 비록 내가 이처럼 너희와 함께 정신적으로 있을지언정, 또한 약속하노니, 내가 이 세상으로 언젠가 다시 돌아오리라. 거기서 내가 육체를 입은 이 생명을 살았고, 하나님을 사람에게 드러내고, 아울러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체험을 얻었노라. 아주 곧 나는 너희를 떠나고 아버지가 내 손에 맡기신 일을 맡아야 하나, 기운을 내라, 언젠가 내가 돌아올 것임이라. 그 동안에 한 우주에서 내 진리의 영이 너희를 위로하고 안내하리라.
“약하고 육체를 입은 나를 너희가 지금 보아도, 돌아올 때 나는 권능을 가지고 영으로 오리라. 육체의 눈은 육체를 입은 사람의 아들을 바라보거니와 오직 영의 눈이 아버지가 영화롭게 하고 그의 이름으로 땅에 나타나는 사람의 아들을 바라보리라.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다시 나타날 그 때는 오직 파라다이스 회의에서만 알고 있고, 하늘의 천사들조차 이 일이 언제 일어날까 모르느니라. 그러나 이것을 너희가 이해해야 하나니,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하여 이 하늘나라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되었을 때, 그리고 시대가 충만하게 무르익었을 때, 아버지는 너희에게 또 다른 섭리(攝理) 시대를 수여하거나, 아니면 사람의 아들이 시대를 판결하러 돌아오리라.
“그리고 이제 예루살렘의 진통에 관해서 이르면, 이에 대하여 내가 너희에게 말했고, 내 말이 이루어지기까지 이 세대조차 사라지지 아니하겠으나,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오는 때에 관하여 말하면, 하늘이나 땅에서 아무도 주제넘게 입을 열어서는 안 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시대가 무르익는 것에 관하여 지혜로워야 하고, 시대의 징조(徵兆)를 헤아리는 데 정신차려야 하느니라. 무화과 나뭇가지가 부드러운 가지를 보이고 그 이파리를 낼 때 여름이 가까운 줄 너희가 아는도다. 마찬가지로, 세상이 물질에 머리를 쓰는 긴 겨울을 보내고 나서, 영적으로 새 섭리 시대의 봄철이 오는 것을 너희가 헤아릴 때, 너희는 새로 찾아오는 여름철이 가까이 옴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오는 것과 상관되는 이 가르침의 중요성이 무엇이냐? 너희 각자가 일생의 투쟁을 그만두고 죽음의 문을 지나가라고 부름받을 때, 너희는 즉시 심판을 직면하고, 무한한 아버지의 영원한 계획에서 봉사하는 새 섭리 시대의 사실과 얼굴을 마주치는 것을 너희는 깨닫지 못하느냐? 자연 생명의 끝에 이르고, 이로서 더 나아가 아버지 나라의 영원히 진보하는 길에서 다음 계시에 본래부터 있는 조건과 요구(要求)에 부딪칠 때, 너희는 한 시대의 끝에, 글자 그대로의 사실로서 온 세상이 부닥쳐야 할 것을, 개인으로서, 몸소 겪는 체험으로서 각자가 아주 확실히 부닥쳐야 하느니라.”
주가 사도들에게 하신 모든 강연 가운데 아무 것도,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자신이 다시 오신다는 이 두 가지 주제에 관하여 올리브 산에서 이 화요일 저녁에 하신 이 강연만큼 그들의 머리 속에서 그렇게 뒤죽박죽이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특별한 기회에 주가 하신 말씀의 기억에 근거를 두고 후일에 쓰인 기록들 사이에 일치되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 결과로, 그 화요일 저녁에 말씀한 많은 것에 관하여 기록을 비워두었을 때, 많은 전통이 생겨났다. 그리고 2세기 아주 일찍, 칼리굴라 황제의 궁정에 부속되었던, 어떤 셀타라 하는 사람이 쓴, 메시아에 관한 어느 유대인 묵시록이 마태 복음 속에 통째로 복사되었고, 나중에 (일부가) 마가와 누가의 기록에 첨가되었다. 셀타의 이 기록에서, 열 처녀의 비유가 나타났다. 복음의 어느 부분도 일찍이 이 날 저녁의 가르침처럼 혼동되어 잘못 해석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결코 그렇게 헛갈리지 않았다.
이 열 세 사람이 캠프를 향하여 여행 길을 다시 떠났을 때, 그들은 말이 없었고, 크게 감정이 긴장되었다. 유다는 동료들을 버리려는 결정을 마침내 확인했다. 다윗 세베대, 요한 마가, 그리고 한 무리의 주요 제자들이 예수와 열둘을 새 캠프로 환영한 것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사도들은 잠자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멸망, 주가 떠나시는 것, 그리고 세상의 종말에 관하여 더 알고 싶어했다.
3. 캠프에서 나중에 있은 토론
그들이 스무 명쯤, 모닥불 근처에 모여 있는 동안, 토마스가 물었다: “당신이 하늘나라의 일을 마치려고 돌아와야 하시오니, 아버지의 일로 당신이 떠나 계시는 동안 우리가 무슨 태도를 가져야 하나이까?” 예수는 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리고 토마스야, 너까지 내가 말하고 있던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구나. 너희가 하늘나라와 가지는 연결은 영적이고 개인적인 것이요,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깨달음으로 말미암아 정신적으로 얻는 개인적 체험의 문제라고, 내가 여태까지 내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더냐? 내가 무엇을 더 말하랴? 나라들의 멸망, 제국들의 붕괴, 믿지 않는 유대인들의 멸망, 한 시대의 종말, 아니 세상의 종말까지도, 이것들이 이 복음을 믿는 자, 또 영원한 나라에 대한 확신 속에 자기 생명을 감추어 둔 자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나님을 알고 복음을 믿는 너희는 이미 영생을 보장받았느니라. 너희가 영적으로, 아버지를 위하여 인생을 살았으매, 아무 것도 너희에게 심각한 관심거리가 될 수 없느니라. 하늘나라를 세우는 자들, 하늘 세계들의 인가받은 시민들은, 현세의 격변에 흔들리거나 땅에서 생기는 대변동에 마음이 불안해서는 안 되느니라. 너희의 생명은 아들의 선물이요, 그것이 아버지 안에 영원히 안전함을 너희가 아는즉, 나라들이 전복되거나, 시대가 끝나거나,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지면, 이 하늘나라 복음을 믿는 너희에게 무슨 문제이냐? 믿음으로 현세의 생명을 살고 나서, 동료를 위하여 사랑으로 봉사하는 올바름으로 영(靈)의 열매를 맺고 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처음에, 땅에서 겪는 모험을 통해서 너희를 지탱했던 바로 그 살아남는 믿음으로, 너희는 영원한 생애에서 자신 있게 다음 걸음을 기대할 수 있느니라.
“불가피하고 항상 다가오는 자연사(自然死)에 비추어, 각 개별 신자가 일생의 일을 추진하는 것과 꼭 같이, 각 세대의 신자들은 사람의 아들이 돌아올 가능성에 비추어 자기의 일을 계속 수행해야 하느니라. 너희가 일단 믿음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세우고 나서, 살아남는 보장에 관하여 다른 아무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느니라. 그러나 틀림이 없도다! 살아남는 이 믿음은 산 믿음이요, 인간의 가슴 속에서 처음으로 영감을 불러일으킨 그 신성한 영의 열매를 더욱 나타내느니라. 하늘나라에서 아들임을 너희가 일단 받아들인 것은, 육체를 입은 하나님 아들들의 진취적 영적 열매를 맺는 것과 상관되는 진리를 일부러 집요하게 거절하는 마당에 너희를 구원하지 않으리라. 땅에서 아버지의 일에 나와 함께 하던 너희는, 인류를 위하여 아버지께 봉사하는 길을 너희가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면, 이제도 하늘나라를 저버릴 수 있느니라.
“개인으로서, 또 신자들의 세대로서, 내가 비유(比喩)를 말하는 동안 내 말을 들으라: 어떤 위대한 사람이 있었더니, 다른 나라로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신뢰하는 종들을 모두 앞에 부르고 저희 손에 그의 재물을 모두 맡겼더라. 한 사람에게 다섯 달란트를 주었고, 한 사람에게 두 달란트, 또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더라. 이렇게 영예로운 집사(執事)들의 무리 전체를 거쳐 내려가면서, 각자에게 저희의 몇 가지 능력에 따라서 그의 재물을 맡겼고, 그리고 나서 길을 떠났더라. 주인이 떠나 버렸을 때, 종들은 저희에게 맡긴 재물로부터 이익을 얻으려고 열심히 일에 달라붙었는지라.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는 즉시 그것으로 장사하여, 금방 다섯 달란트의 이익을 얻었고, 마찬가지로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곧 두 달란트를 더 벌었더라. 그래서 이 종들이 모두 저희의 주를 위하여 이익을 얻었는데, 한 달란트
만 받은 자는 그렇지 않았더라. 그는 혼자 가서 땅에 구덩이를 파고 주인의 돈을 감추었는지라. 이 종들의 주인이 얼마 안 있어 뜻하지 않게 돌아와서 계산하려고 집사들을 불렀는데, 주인 앞에 모두 부름받았을 때,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그에게 맡긴 돈을 가져왔고, 다섯 달란트를 더 가져와서 말하였더라. ‘주여, 당신이 투자하라고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고, 내 이익으로 다섯 달란트를 더 내놓게 되어 기쁘나이다.’ 그리고 나서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아, 너는 몇 가지 일에 충성하였고, 이제 너를 여러 사람 위에 집사로 세우리라. 네 주인의 즐거움에 당장 참여하라.’ 그리고 나서 두 달란트 받은 자가 앞으로 나와서 말하였느니라: ‘주여, 당신은 내 손에 두 달란트를 주셨나이다. 보소서, 나는 다른 이 두 달란트를 벌었나이다.’ 그리고 나서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아, 너도 몇 가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이제 너를 여러 사람 위에 세우리라. 네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라.’ 그리고 나서 한 달란트를 받았던 자를 계산하게 되었더니, 이 종이 앞으로 나와서 말하되, ‘주여, 내가 당신을 알고, 당신이 몸소 수고하지 않은 데서 이익을 기대하시니 당신이 날카로운 사람인 줄 깨달았나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내게 맡긴 아무 것도 위태롭게 하기가 두려웠나이다. 나는 당신의 달란트를 땅 속에 안전히 감추었나이다. 여기 있나이다. 당신에게 속한 것을 이제 당신이 받으셨나이다.’ 그러나 주인이 대답하되, ‘너는 게으르고 빈둥거리는 집사이라. 네 말대로, 오늘 너의 부지런한 동료 종들이 갚은 것 같이, 너에게서 합당한 이익으로 계산하기를 내가 요구할 것을 알았다고 네가 고백하였느니라. 이것을 알았은즉, 따라서 내가 돌아올 때 내 돈과 이자(利子)를 받도록 적어도 내 돈을 은행가의 손에 맡겨야 했으리라.’ 그리고 나서 우두머리 집사에게 이 주인이 말하되, ‘이 한 달란트를 이롭지 않은 이 집사에게서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자에게 주어라’ 하였더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을 것이요, 풍성하게 가지려니와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기리라. 너희는 영원한 나라의 사무(事務)에서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느니라. 내 아버지는 자녀들 모두가 은혜 안에서, 진리의 지식 안에서 자라기를 요구하시니라. 이 진리를 아는 너희는 영의 열매를 더 맺고, 동료 종들에게 사심 없이 봉사하는 데 더욱 헌신함을 나타내야 하느니라. 내 동포(同胞) 가운데 가장 적은 자 하나에게 너희가 봉사를 베푸는 만큼, 너희가 이 봉사를 내게 한 것임을 기억하라.
“이제, 또 앞으로, 아니 언제까지나, 너희가 아버지의 일에 몰두해야 하느니라. 내가 올 때까지 계속하여라. 너희에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행하라, 그리하면 이로서 너희는 죽어서 청산하는 부름에 준비가 되리라. 이렇게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아들이 만족하기까지 살고 나서, 즐겁게, 대단히 큰 기쁨을 가지고, 영구한 나라에서 영원히 봉사하는 일에 너희가 들어갈지니라.”
진리는 실천하는 것이다. 진리의 영은 영적 실체가 있고 신성하게 봉사하는 새 영역으로 빛의 아이들을 늘 이끌고 있다. 안정되고 안전하고 영예로운 형태로 구체화하라고 너희에게 진리를 주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아름다움과 실제로 얻는 영적 이득(利得)이 너희의 영적 열매를 구경하는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고, 그 결과로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데 마음이 이끌리도록, 진리를 너희가 계시하는 것은 너희 개인 체험을 겪음으로 향상되어야 한다. 오로지 진리를 아는 지식 속에서 이렇게 자라는 충성스러운 종들과, 그로서 영적 실체들을 신성하게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자가 “저희 주의 기쁨에 충분히 참여하기”를 언제라도 바랄 수 있
다. 예수를 따른다고 공언(公言)하는 자들의 연이은 세대가, 신성한 진리를 보관하는 직분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면 얼마나 딱한 모습인가: “주여, 1백 년이나 1천 년 전에 당신이 우리에게 맡긴 진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는 하나도 잃지 않았고,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우리가 충실히 간직하였나이다.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에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못하게 하였고, 당신이 우리에게 준 진리가 여기 있나이다.” 그러나 영적 게으름에 관하여 그러한 탄원은 주가 계신 앞에서 열매를 못 맺는, 진리의 집사를 정당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너희 손에 맡겨진 진리에 따라서, 진리의 주(主)는 계산을 요구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받은 자질과 관리 직책에 대하여, 다음 세계에 너희는 맡은 책임에 대하여 설명하라고 요구될 것이다. 타고난 재능이 많든 적든, 정당하고 자비로운 계산을 직면(直面)해야 한다. 자질이 오로지 이기적 추구에만 쓰였고, 항상 늘어나는, 사람들에게 베푸는 봉사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서 나타나다시피, 영의 열매를 늘려서 거두는 상급 의무에 아무 생각을 쏟지 않는다면, 그러한 이기적인 집사는 그들의 신중한 선택에서 생긴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의 게으름을 직접 주인의 탓으로 돌린 점에서, 모든 이기적인 사람은 한 달란트를 받은 이 불충한 종과 얼마나 비슷한가. 자초(自招)하여 얻은 실패에 부딪쳤을 때, 다른 사람의 탓으로, 때때로 나무람을 받는 것이 가장 타당하지 않은 자의 탓으로 돌리기가 얼마나 쉬운가!
그 날 밤 그들이 쉬러 갈 때 예수는 말했다: “너희는 거저 받았도다. 그런즉 너희가 거저 하늘의 진리를 주어야 하느니라. 남에게 줌으로써 이 진리가 늘어나고, 너희가 진리를 베푸는 동안에도, 유익한 은총의 커지는 빛이 더욱 빛나리라.”
4. 미가엘의 돌아오심
주의 모든 가르침 가운데 어떤 국면도 이 세상에 언젠가 그가 친히 돌아온다는 약속처럼 그렇게 오해를 받지는 않았다. 일곱째이자 마지막 자신 수여를 그 영역의 한 사람으로서 체험한 혹성으로 언젠가 돌아오는 데 미가엘이 흥미를 가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금은 광대한 우주의 군주 통치자인 나사렛 예수가, 그렇게 독특한 삶을 살고, 아버지가 제한 없이 수여한 우주 권능과 권한을 혼자서 마침내 얻어낸 세상으로,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라도, 돌아오는 데 흥미를 가지리라 믿는 것이 당연할 따름이다. 영원히 유란시아는 우주 통치권을 얻는 일에 미가엘이 태어난 일곱 구체(球體)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수많은 기회에, 많은 사람에게, 예수는 그가 이 세상으로 돌아오리라는 뜻을 밝혔다. 추종자들이 주가 현세의 구원자로서 활동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에 눈을 뜨고, 예루살렘이 전복되고 유대 나라가 멸망하리라는 그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그들은 그가 돌아오리라는 약속을 이 대격변의 사건들과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의 담을 뭉개 버리고, 성전을 무너뜨리고, 유대 땅의 유대인들을 흩어놓고, 여전히 주가 권능과 영광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 추종자들은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것을 그 시대의 끝, 아니 결국에는 세상의 종말과 연결시킨 관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예수는 아버지께로 올라가신 뒤에, 하늘과 땅에서 모든 권능이 그의 손에 맡겨진 뒤에, 두 가지 일을 하기로 약속했다. 첫째로, 그는 세상으로 자기 대신에 다른 선생, 진리의 영을 보낼 것을 약속했다. 둘째로, 그는 언젠가 이 세상으로 친히 돌아오리라고 추종자들에게 아주 확실히 약속했다. 그러나 육체를 입고 자신 수여 체
험을 가졌던 이 혹성을 어떻게, 어디서 또는 언제 다시 찾아볼 것인가 말하지 않았다. 그가 육체를 입고 살았을 때 육체의 눈은 그를 보았어도, 그가 돌아올 때 (적어도 가능한 여러 방문 중 하나에서) 오로지 영적 믿음의 눈으로만 그를 알아볼 수 있으리라고 그는 한 계제에 암시하였다.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예수가 유란시아로 여러 번 돌아오리라고 우리 가운데 다수가 믿고 싶어한다. 그가 이렇게 여러 번 방문한다는 특별한 약속을 우리가 가지지 않았지만, 우주 칭호들 가운데 유란시아의 혹성 영주 칭호를 지닌 분이, 이 세상의 정복이 그러한 독특한 칭호를 그에게 수여하였으니까, 그 세상을 여러 번 찾아보리라는 것이 아주 가능성 있게 보인다.
우리는 미가엘이 유란시아로 친히 다시 오실 것을 아주 분명히 믿지만, 언제 또는 어떤 방식으로 그가 오기를 택할 것인가 털끝만큼도 짐작할 수 없다. 땅에 그가 두 번째로 오심이, 관련된 아들 행정관의 출현과 함께, 아니면 따로, 이 현재 시대의 마지막 심판과 연결하여, 때를 맞추어 일어날 것인가? 후일의 어떤 유란시아 시대의 종결과 연결하여 오실까? 아무 발표 없이, 그리고 독립된 사건으로서 오실까? 우리는 모른다. 오직 한 가지에 대하여 우리가 확신하는데, 즉 그가 돌아올 때, 아마도 온 세상이 알 듯하다는 것이니, 이는 그가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아기가 아니라, 한 우주의 최고 통치자로서 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눈이 그를 바라보아야 한다면, 그리고 오직 영적 눈이 그의 계심을 헤아릴 것이라면, 그의 오심은 오랫동안 뒤로 미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주가 친히 땅에 다시 오시는 것을 어떤 고정된 사건이나 안정된 시대와 분리하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오직 하나, 그가 돌아오기로 약속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가 언제 또는 어떤 연관에서 이 약속을 지킬 것인지 우리는 조금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한, 그는 땅에 언제라도 나타날지 모르며, 여러 시대가 지나고 그 시대들이 그와 관계된 파라다이스 군단의 아들들에게 정식으로 판결 받을 때까지 오시지 않을지 모른다.
땅에 미가엘이 두 번째로 오시는 것은 중도자(中道者)와 인간 모두에게 엄청나게 감상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그밖에 그것은 중도자들에게 아무런 직접 의미가 없고, 자연사의 보통 사건보다 인간들에게 실용적으로 아무 중요성이 더 없다. 자연사는 아주 갑자기 필사 인간을 바로 이 예수, 우리 우주의 군주 통치자가 계신 앞으로 직접 인도하는 연속된 우주 사건들을 즉시 파악하도록 뒤흔든다. 빛의 아이들은 모두 그를 볼 운명을 가졌고, 우리가 그에게 가거나 아니면 그가 어쩌다가 먼저 우리에게로 오시든지, 조금도 심각하게 아랑곳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늘에서 너희를 반길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이, 너희는 언제나 땅에서 그를 반길 준비를 하여라. 우리는 그가 영화롭게 나타나시는 것, 아니 거듭 오시는 것까지도 자신 있게 기대하지만, 어떻게, 언제, 아니면 어떤 연관에서 그가 나타나기로 정해졌는가 우리는 까맣게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