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2 편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다
예수와 사도들은 서기 30년 3월 31일, 금요일 오후에 4시가 조금 지나서 베다니에 다다랐다. 나사로와 그 자매들과 친구들은 그들을 기대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날마다 나사로가 부활한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려고 왔기 때문에, 예수는 이웃에 어느 시몬이라는 신자의 집에 머무르도록 주선이 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는데, 이 사람은 나사로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그 작은 마을의 유지(有志)였다.
그 날 저녁에, 예수는 많은 방문자를 받았고, 베다니와 벳바게의 보통 사람들은 그를 환영하는 느낌이 들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산헤드린의 사형 선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자신이 유대인의 임금이라 선포하려고 예수가 이제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숱한 사람이 생각했어도, 베다니 가족은―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는―주가 그런 종류의 임금이 아니라는 것을 더 잘 깨달았다. 그들은 이것이 그가 예루살렘과 베다니를 마지막으로 찾아보는 것일지 모른다고 어렴풋이 느꼈다.
대사제들은 예수가 베다니에서 묵는다는 통지를 받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체포하려 시도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예수가 계속하여 예루살렘으로 오기를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예수는 이 모든 것을 알았지만 당당하게 차분한 태도를 가졌다. 친구들은 그가 이보다 더 침착하고 명랑함을 본 적이 없었다. 산헤드린이 온 유대인에게 그를 수중에 넘기라고 요구했을 때, 사도들조차 그가 그리 아랑곳하지 않은 것에 놀랐다. 주가 그 날 밤에 주무시는 동안, 사도들은 둘씩 그를 지켰고, 여럿이 칼을 차고 있었다. 그들은 이튿날 아침 일찍 수백 명의 순례자 때문에 잠이 깨었는데, 순례자들은 안식일에도 예수와 그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킨 나사로를 보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왔다.
1. 베다니에서 안식일을
유대 당국 뿐 아니라 유대 바깥에서 온 순례자들은 모두 이렇게 물었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예수가 축제에 오겠느냐?” 그러므로 예수가 베다니에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기뻐했지만, 대사제와 바리새인들은 얼마큼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예수를 관할 밑에 두어서 기뻤지만, 예수의 대담성에 조금 불안해졌다. 그가 이전에 베다니를 방문했을 때 나사로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났던 것, 또 나사로가 예수의 적들에게 큰 문제가 되고 있음을 기억했다.
유월절 엿새 전, 안식일 다음 날 저녁에, 온 베다니와 벳바게는 시몬의 집에서 공개 연회(宴會)로 예수의 도착을 축하하는 데 참석하였다. 이 만찬은 예수와 나사로 두 사람에게 영예를 돌리려는 것이었고, 산헤드린을 무시하고 베풀어졌다. 마르다는 식사 대접을 지시했고, 동생 마리아는 여자가 공개 연회에 앉는 것이 유대인 관습에 어긋났기 때문에 여자 구경꾼들 사이에 있었다. 산헤드린의 관리들이 자리에 있었지만 예수의 친구들 한가운데서 그를 체포하기를 두려워했다.
예수의 이름은 옛날의 여호수아를 따서 지었는데, 그는 이 여호수아에 대하여 시몬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어떻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리고를 통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는가 이야기했다. 예리고의 담이 무너지는 전설(傳說)에 대하여 논평하면서 예수는 말했다: “나는 벽돌과 돌로 만든 그러한 담에 관심이 없으나, 모든 사람에게 쏟는 아버지의 사랑이 이렇게 전파되는 앞에서, 편견·독선·미움의 담이 무너지게 만들고자 하노라.”
사도들이 모두 드물게 차분한 것을 빼고, 연회는 아주 명랑하고 정상으로 무르익었다. 예수는 특별히 명랑했고, 식탁에 올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보통 아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잔치가 끝날 때가 가까이 되자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여자 구경꾼들 무리 가운데서 앞으로 걸어나와서, 귀빈(貴賓)인 예수가 기댄 곳까지 가서, 다음에 아주 드물고 비싼 기름이 든, 큰 알라배스터 항아리를 열었다. 주의 머리에 기름을 바른 뒤에, 마리아는 머리털을 풀어 헤치고 머리털로 예수의 발을 문지르면서 그 발에 향유를 붓기 시작했다. 온 집이 그 향유 냄새로 가득하였고,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마리아가 한 일에 놀랐다. 나사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이 중얼거리고, 그렇게 비싼 향유를 이렇게 사용한다고 분개하는 빛을 보이자, 가룟 유다는 안드레가 기대는 곳으로 걸어와서 말했다: “어째서 이 향유를 팔고, 돈이 가난한 자들을 먹이는 데 기부되지 않았느냐? 주가 그러한 낭비를 꾸짖으라고 너는 주께 말씀드려야 하느니라.”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 알고 무어라고 말했는가 들었기 때문에, 마리아가 곁에서 무릎을 꿇은 동안 예수는 마리아의 머리에 손을 얹고, 얼굴에 친절한 빛을 띠고 말했다: “너희는 모두, 그 여자를 가만 두라. 그 여자가 마음 속에 좋은 일을 한 줄 알면서, 어찌 이 일로 그 여자를 괴롭히느냐? 투덜거리며 이 향유를 팔아서 돈을 가난한 자에게 주었어야 한다 하는 너희에게 내가 이르노라. 너희에게 언제나 가난한 자들이 있으니, 너희가 좋게 여기는 대로 아무 때나 저희에게 봉사를 베풀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항상 있지 아니하리니, 내가 곧 아버지께로 감이라. 이 여인은 장례할 때 내 몸을 위하여 이 향유를 오랫동안 저축하였고, 내 죽음을 예상하여 이렇게 기름 붓는 것을 좋게 여겼으므로, 그 여자에게 그러한 만족을 부인하지 못할지니라.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죽는 것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는 것에 대하여 내가 이른 것을 믿음을 마리아가 이 행동으로 나타냈으매 그 여자는 너희 모두를 꾸짖었도다. 오늘 밤에 한 일로 이 여인을 꾸짖지 말지니라. 오히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다가오는 시대에, 온 세상에 두루 이 복음이 전도되는 곳은 어디서나 그 여자가 행한 일을 말하여 그 여자를 기억하리라.”
가룟 유다는 이것을 친히 책망을 받았다고 생각했고, 이 책망 때문에, 상한 느낌을 앙갚음하려고 마침내 작정하였다. 여러 번 그러한 생각을 전에 무의식 중에 품었지만, 이제 활짝 열리고 의식하는 머리 속에서 감히 그런 사악한 생각을 품었다. 이 향유 값이 한 사람이 1년 동안 버는 것에 해당하는 금액이었기 때문에―5천 명에게 빵을 마련하기에 넉넉했으니까―많은 다른 사람이 그가 이런 태도를 가지도록 북돋았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를 사랑했고, 죽고 나서 그의 몸을 보존하려고 이 비싼 향유를 전에 마련했는데, 이는 그가 죽어야 한다고 그들에게 미리 경고했을 때 그 말씀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각이 달라져서, 아직 살아 계실 때 주께 이 헌물을 드리기로 했다면, 그 여자에게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아서는 안 된다.
나사로와 마르다는 마리아가 백송향(甘松香)이 담긴 이 항아리를 사려고 돈을 오랫동안 저축한 것을 알았고, 그런 문제에서 마음에 원하는 대로, 그 여자가 하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했으며, 그들은 살림이 넉넉했고, 그런 헌물을 쉽사리 장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사제들이 예수와 나사로를 위하여 베다니에서 이 만찬(晩餐)을 베풀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나사로를 어떻게 할까 자기들끼리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번에 나사로도 또한 죽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려 낸 나사로를 살려 둔다면, 예수를 사형에 처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고 똑바로 결론을 내렸다.
2. 일요일 아침 사도들과 함께
이 일요일 아침에, 시몬의 집 아름다운 정원에서, 주는 열두 사도를 주위에 부르고,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준비로서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아버지께 돌아가기 전에 그가 아마도 많은 연설을 하고 많은 교훈을 가르치리라고 일렀지만, 예루살렘에서 이 유월절에 머무르는 동안 대중(大衆)을 상대로 어떤 일도 삼가라고 사도들에게 훈시했다. 가까이 남아 있고 “경계하고 기도하라”고 지시했다. 사도와 직계 추종자들의 다수가 그 때도 몸에 칼을 지니고 다니는 것을 알았지만, 이 사실에 대하여 아무 말을 비추지 않았다.
이 날 아침의 가르침은 가버나움 근처에서 세움 받은 날부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려고 준비하는 이 날까지 그들이 베푼 봉사에 대한 짧은 검토를 포함했다. 사도들은 잠자코 귀를 기울였고,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그 날 아침 일찍, 다윗 세베대는 펠라 야영지의 장비를 팔아서 얻은 자금을 유다에게 넘겨 주었고, 유다는 다시 이 돈의 큰 부분을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비상시를 예상하여 보관하려고 그들을 청한 주인 시몬의 손에 맡겼다.
사도들과 회의를 가진 뒤에 예수는 나사로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에게 산헤드린의 복수심에 목숨 희생하는 일을 피하라고 지시했다. 이 훈계에 복종하여, 며칠 뒤에 나사로는 필라델피아로 피신하였는데, 그 때 산헤드린의 관리들이 그를 잡으려고 사람들을 보냈다.
어떤 면에서, 예수의 추종자들은 모두 다가오는 위기를 느꼈지만, 주가 드물게 명랑했고 뛰어나게 좋은 유머를 보였기 때문에 그 심각성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
3.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나다
베다니는 성전으로부터 약 3.2킬로미터 되었고, 예수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나려고 준비가 된 것은 그 일요일 오후 1시 반이었다. 그는 베다니와 거기 있는 순진한 사람들을 깊이 사랑하는 느낌을 간직했다. 나사렛과 가버나움과 예루살렘은 그를 물리쳤지만, 베다니는 그를 받아들이고 믿었다. 그리고 이 작은 마을에는 거의 모든 어른과 아이가 믿는 사람이었고, 그는 땅에서 자신 수여에서 가장 막강한 일, 나사로를 살리는 일을 여기서 행하기를 택했다. 나사로를 살린 것은 마을 사람들이 믿을까 싶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이미 믿었기 때문이다.
아침 내내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가 메시아라는 대중의 모든 주장을 지금까지 억제하려고 언제나 애써 왔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랐다. 그는 육체를 입은 생애의 끝에 다가가고 있었고, 산헤드린은 이미 그의 죽음을 선포했다. 제자들이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놓아 둔다고 해서 아무런 해로운 일이 생길 수 없었고, 그가 정식으로, 대중 앞에서 떳떳이 도시로 들어가기를 택한다면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날까 싶었다.
그는 사람들의 인기를 얻으려는 마지막 노력으로서, 또는 권력의 마지막 쟁취로서 예루살렘으로 대중이 보는 가운데 들어가려고 결심하지는 않았다. 제자와 사도들의 인간다운 열망을 채우려고 전적으로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환상에 빠진 몽상가의 헛된 꿈을 예수는 하나도 품지 않았다. 이 방문의 결과가 무엇이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예루살렘으로 대중이 보는 가운데 들어가기로 작정하고 나서, 주는 그러한 결심을 실행할 적당한 방법을 선택할 필요성에 부딪쳤다. 얼마큼 모순되는 숱한 예언, 이른바 메시아 예언을 모두 생각해 보았지만, 그가 따르기가 조금이라도 적당한 것이 꼭 하나 있는 듯했다. 이 예언 말씀의 대부분은 임금, 다윗의 아들이자 후계자, 온 이스라엘을 외국 지배의 멍에로부터 현세에 구원할 용감하고 공격적인 사람을 묘사했다. 그러나 그의 사명의 영적 개념을 더 가깝게 고수(固守)하는 자들이 메시아와 때때로 연결했던 성서 구절이 있었는데,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계획을 위한 지침으로 일관성 있게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구절은 스가랴에서 발견되는데 이렇게 적혀 있다: “크게 기뻐하라, 아 시온의 딸아. 외치라, 아 예루살렘의 딸아. 보라, 네 임금이 너에게 오도다. 그는 공정하고 구원을 가져오도다. 비천한 자로서 나귀를 타고 오시니, 새끼, 곧 나귀의 새끼라.”
전쟁하는 임금은 반드시 말을 타고 도시에 들어갔다. 평화와 우정(友情)의 사명을 가진 임금은 반드시 나귀를 타고 들어갔다. 예수는 말 탄 사람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지만, 나귀를 탄 사람의 아들로서 평화롭게, 좋은 뜻을 가지고 기꺼이 들어갈 생각이 있었다.
예수는 그의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그 나라는 순수하게 영적 문제라고, 직접 가르쳐서 사도들에게 강조하려고 오랫동안 애썼지만, 이 노력에 성공하지 못했다. 쉽게 친히 가르쳐서 실패한 것을 이제 상징(象徵)에 호소하여 성취를 시도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점심 식사 바로 뒤에, 예수는 베드로와 요한을 불렀고, 큰길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베다니의 북서쪽으로 짧은 거리에 있는 이웃 마을 벳바게로 가라고 지시한 뒤에, 말씀을 이었다: “벳바게로 가서, 십자로에 이르면, 너희는 거기 묶여 있는 나귀 새끼를 발견하리라. 그 나귀를 풀어서 이리로 가져오라. 어째서 너희가 이렇게 하느냐 누구라도 묻거든, 다만 ‘주께서 나귀가 필요하니라’ 말하라.” 주가 지시한 대로 두 사도가 벳바게로 갔을 때, 그들은 트인 거리에, 구석에 있는 어느 집 근처에, 어미 가까이 매여 있는 나귀 새끼를 발견했다. 베드로가 그 나귀 새끼를 풀기 시작하자, 주인이 다가와서 어째서 그가 이렇게 하는가 물었고, 예수가 지시한 대로 베드로가 대답하자 그 사람은 말했다: “너희의 주가 갈릴리에서 온 예수라면, 그에게 나귀 새끼를 가지고 가라.” 그래서 그들은 나귀 새끼를 끌고 돌아왔다.
이 때가 되어서 순례자 수백 명이 예수와 사도들의 둘레에 모였다. 아침 중반부터 유월절에 가는 길에 지나는 방문자들이 머물렀다. 그 동안에, 다윗 세베대와 옛 사자였던 동료들 가운데 몇 사람은 자청하여 예루살렘으로 서둘러 갔고, 거기서 나사렛 예수가 도시로 승리하여 입성(入城)한다는 보고를 성전 주위에 있던 방문하는 순례자 무리 사이에서 효과 있게 퍼뜨렸다. 따라서 이 방문자들 수천 명이, 입에 오르내리던 이 선지자요 이적을 행하는 이, 더러는 메시아라고 믿은 사람을 맞이하려고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이 군중은 예루살렘에서 나왔기 때문에, 도시로 들어가는 예수와 군중이 올리브 산 벼랑 가를 지나고 도시로 내려가기 시작한 바로 뒤에 그들을 만났다.
그 행렬이 베다니를 출발하자, 축제에 온 제자(弟子), 신자, 방문하는 순례자들로 이루어진 군중이 크게 흥분했는데, 순례자들 가운데 다수가 갈릴리와 페레아에서 왔다. 그들이 출발하기 바로 전에, 최초의 여인단의 열두 여자가 동료들을 얼마큼 데리고 그 장면에 이르렀고, 그 독특한 행렬이 도시를 향하여 기뻐서 계속 움직이자 거기에 합세했다.
출발하기 전에, 알패오 쌍둥이는 그들의 외투를 나귀 위에 펼쳐 놓고 주가 올라타는 동안 나귀를 붙들었다. 그 행렬이 올리브 산 꼭대기를 향하여 움직이자, 임금의 아들, 약속된 메시아를 태운 나귀를 위하여 영예의 카펫을 만들려고, 축제 기분에 싸인 군중이 땅에 옷을 벗어 던지고 가까이 있는 나무에서 가지들을 꺾어 왔다. 즐거운 군중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계속 움직이는 동안, 그들은 시편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아니 차라리 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다윗의 아들에게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는 자는 복이 있도다.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나라는 복이 있을 지어다.”
그들이 따라 움직이자 예수는 명랑하고 즐거웠으며, 올리브 산 벼랑 가에 이르자, 거기서 도시와 성전의 탑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주는 행렬을 멈추었고, 그들이 예수가 눈물 흘리는 것을 보는 동안, 큰 침묵이 모두를 덮었다. 도시에서 그를 환영하려고 쏟아져 나오는 광대한 군중을 내려다보며, 주는 크게 감동하고 눈물겨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예루살렘아, 너 조차도, 적어도 이 시절에, 네 평화에 속하는 것과 아주 거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네가 알기만 했더라면! 그러나 이제 이 영광이 바야흐로 네 눈이 보지 못하게 감춰지려 하는구나. 너는 이제 평화의 아들을 물리치고 구원의 복음에 등을 돌리려 하는구나. 네 둘레에 도랑을 파고 사방(四方)에서 너를 포위할 시절이 곧 네게 닥치리라.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기까지 저희가 너를 남김없이 파괴할지니라. 신이 방문하는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으니 이 모든 것이 너에게 닥칠지니라. 너는 바야흐로 하나님의 선물을 물리치려 하고, 만민(萬民)이 너를 물리치리라.”
그가 말씀을 마치고 나자, 그들은 올리브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종려 가지를 흔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다른 방법으로 기뻐 날뛰며 즐겁게 사귀는 기분에 빠진 무리, 예루살렘에서 나온 방문자들의 무리와 금방 합세하였다. 주는 이 군중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와서 그들을 맞이해야 한다고 계획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남들이 한 일이었다. 극적인 아무 일도 그는 결코 미리 계획하지 않았다.
주를 환영하려고 쏟아져 나온 군중과 아울러, 또한 숱한 바리새인과 다른 적들이 왔다. 민중의 환호(歡呼)가 갑자기 생각지 않게 터진 것에 너무나 불안해져서, 그들은 체포 행위가 민중의 거침없는 폭동(暴動)을 터뜨리게 하지 않을까 저어하여 예수를 체포하기가 두려웠다. 그들은 큰 무리의 방문자들의 태도를 크게 두려워했는데, 이 방문자들은 예수에 대하여 많이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고, 이들 가운데 다수가 예수를 믿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자, 군중은 점점 더 시위하는 모습이었고, 너무 지나쳐서 바리새인들 가운데 더러는 예수 옆에 다가와서 말했다, “선생이여, 당신은 제자들을 꾸짖고 저희에게 더 점잖게 행동하라고 타일러야 하나이다.” 예수는 대답했다: “대사제들이 거절한 평화의 아들을 이 아이들이 환영하는 것이 마땅할 따름이라. 길가에 있는 이 돌들이 저희 대신에 외치지 않을까 하나니, 저희를 멈추는 것이 소용 없으리라.”
바리새인들은 황급히 행렬 앞으로 가서 산헤드린에 다시 참여했다. 산헤드린은 그 때 성전에서 심의하는 중이었고, 그들은 동료들에게 보고했다: “보라,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우리는 이 갈릴리 사람 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었도다. 사람들은 그에게 미쳤는지라. 우리가 이 무지한 자들을 멈추지 아니하면, 온 세상이 그를 뒤쫓아가리라.”
민중의 정열(情熱)이 이렇게 겉으로 저절로 터진 것에 붙여야 할 아무런 깊은 의미가 정말로 없었다. 이 환영은 비록 즐겁고 진지하기는 했어도, 흥겨운 이 군중의 마음 속에서 진정하거나 뿌리 깊은 어떤 확신이 있음을 가리키지 않았다. 바로 이 군중은 이 주의 후반(後半)에, 산헤드린이 일단 예수에 대하여 굳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자, 그리고 그들이 환상에서 깨어났을 때―오래 간직했던 기대에 맞게 예수가 하늘나라를 세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똑같이 기쁘게 예수를 재빨리 거부했다.
그러나 온 도시가 힘차게 술렁거렸고, 그래서 사람마다 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구뇨?” 군중은 응답했다, “갈릴리의 선지자, 나사렛 예수라.”
4. 성전 둘레를 방문하다
알패오 쌍둥이가 나귀를 주인에게 돌려주는 동안에, 예수와 열 사도는 가까운 동료들로부터 따로 떨어져, 성전 둘레를 어슬렁거리며, 유월절을 위한 준비를 구경하였다. 산헤드린이 사람들을 크게 두려워했기 때문에, 예수에게 손대려는 아무 시도도 있지 않았고, 그것이 결국은 예수가 군중으로 하여금 이렇게 그를 환호하도록 버려 둔 이유 중에 하나였다. 이것이 도시에 들어가고 나서 예수가 즉시 붙잡히는 것을 막는 데 효과적일 수 있던 유일한 인간적 과정이었음을 사도들은 조금도 깨닫지 못했다. 주는 수만의 유월절 방문자 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높고 낮은 주민에게, 그들이 원한다면, 복음을 듣고 평화의 아들을 받아드릴 이 마지막 기회를 한 번 더 주고 싶었다.
이제, 저녁이 다가오자, 군중은 영양분을 찾으러 갔고, 예수와 직계 추종자들만 남았다. 얼마나 이상한 날이었는가! 사도들은 생각이 깊었지만 말이 없었다. 예수와 관련을 가진 여러 해 동안, 그런 날을 구경한 적이 없었다. 한 순간 그들은 금고 옆에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을 떨어뜨리는 것을 구경했다: 부자들은 돈 받는 상자 속에 많이 넣었고, 모두가 가진 재산의 한도에 따라서 무엇인가 냈다. 마침내, 제대로 옷을 걸치지 못한 어느 가난한 과부가 왔고, 그 여자가 (작은 동전) 두 잎을 나팔 속으로 넣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나서 사도들이 과부를 주목하게 하며 예수는 말했다: “너희가 방금 본 것을 잘 주목하여라. 이 가난한 과부는 모든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던졌으니, 이 모든 다른 사람은 남는 데서 하찮은 것을 얼마큼 헌금으로 던졌거니와, 가난한 이 여인은 비록 빈궁한데도, 가진 것을 모두, 아니 생활에 쓸 것까지도 내놓았느니라.”
저녁이 가까워지자, 그들은 말없이 성전 마당 근처에 이리저리 거닐었고, 이 낯익은 장면들을 다시 한 번 둘러본 뒤에, 더 일찍 있었던 방문도 빼지 않고 이전의 여러 방문과 관련된 느낌을 회상하며, 예수는 말했다: “우리가 쉬도록 베다니로 올라가자.”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예수는 시몬의 집으로 갔고, 한편 다른 사도들은 베다니와 벳바게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묵었다.
5. 사도들의 태도
이 일요일 저녁에, 그들이 베다니로 돌아가는 동안 예수는 사도들 앞에서 걸었다. 그들이 시몬의 집에 이른 뒤에 헤어질 때까지, 말 한 마디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열두 사람도, 이 하늘나라 대사(大使)들의 정신과 혼을 통하여 지금 솟구치고 있는 것처럼 다채롭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일찍이 느낀 적이 없다. 이 억센 갈릴리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고 불안했다. 다음에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몰랐다. 너무
놀라서 그다지 두려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주의 다음 날 계획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몰랐고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들은 숙소로 돌아갔지만, 쌍둥이를 제외하고, 잠을 많이 자지 못하였다. 그러나 시몬의 집에서, 무기(武器)를 가지고 예수를 지키지는 않았다.
안드레는 속속들이 어리둥절했고 거의 혼란에 빠졌다. 그는 대중의 환호가 터진 것을 심각하게 평가하려고 애쓰지 않은 유일한 사도였다. 사도단의 우두머리로서 자기 책임을 생각하는 데 너무 몰두해서, 군중이 크게 호산나를 외친 것에 무슨 의미나 중요성이 있는가 심각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안드레는 동료들 가운데 몇 사람을 지키느라고 바빴고, 그들이, 특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열심당원 시몬이, 흥분하는 동안 감정에 치우칠까 두려워했다. 이 날 하루 종일, 그리고 뒤이은 며칠 동안, 안드레는 심각한 의심이 들어 괴로왔지만, 사도 동료들에게 이러한 걱정거리를 하나도 털어놓지 않았다. 그가 알기로 열둘 가운데 칼로 무장한 몇 사람의 태도에 걱정이 되었지만, 바로 아우 베드로가 그런 무기를 지니고 있는 것을 몰랐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행렬은 비교적 안드레에게 깊지 않은 인상을 주었다. 자기의 책임에 너무 바빠서, 그는 달리 영향을 받을 수 없었다.
시몬 베드로는 민중이 이처럼 열광을 나타낸 것에 처음에는 온 몸이 붕 떠 있다시피 했지만, 그들이 그 날 밤, 베다니로 돌아올 때가 되어서, 그는 어지간히 정신이 들었다. 베드로는 단지 주가 무슨 일을 하려 하는지 알아차릴 수 없었다. 민중의 열광하는 파도를 타는 김에, 예수가 이어서 어떤 종류의 발표를 하지 않아서 몹시 실망했다. 베드로는 그들이 성전에 도착했을 때, 어째서 예수가 군중에게 말씀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적어도 사도들 중 한 사람에게 군중에게 연설하라고 허락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베드로는 위대한 설교자였고, 그렇게 술술 받아들이고 열광하는 큰 청중을 헛되이 보내는 것을 보고 아까워했다. 군중에게 성전에서,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늘나라 복음을 무척 전도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는 이 유월절 주간에 예루살렘에 있는 동안 아무런 가르침을 주거나 전도(傳道)해서는 안 된다고 그들에게 특별히 당부했다. 도시 안으로 들어가는 이 볼 만한 행렬로부터 나온 반응은 시몬 베드로에게 비참했다. 밤이 되자 그는 제 정신이 들었고 말할 수 없이 슬펐다.
야고보 세베대에게, 이 일요일은 어리둥절하고 깊은 혼란에 빠진 날이었다. 그는 진행되는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알아차릴 수 없었다. 사람들이 이렇게 사납게 환호하도록 버려 두고 나서, 그들이 성전에 도착했을 때 주가 사람들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으려 한 목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행렬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리브 산을 내려가는 동안에, 특히 그들이 주를 환영하려고 쏟아져 나온 수천의 순례자와 마주쳤을 때, 야고보는 구경한 것에 대하여 가슴 뿌듯함과 만족감이 엇갈리는 감정, 그리고 그들이 성전에 다다랐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깊은 두려운 느낌 때문에, 마음이 몹시 산란하였다. 그리고 나서 예수가 나귀에서 내려서, 느긋하게 성전 마당 둘레를 계속 거닐었을 때, 그는 풀이 죽었고 실망으로 가득 찼다. 하늘나라를 선포할 그러한 찬란한 기회를 던져 버리는 이유를 야고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밤이 되어서, 슬프고 무서운 불안의 손아귀에 정신이 꽉 잡혀 있었다.
요한 세베대는 어째서 예수가 이렇게 했는가 얼마큼 가깝게 이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적어도 이렇게 이른바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의 영적 중요성을 어느 정도 깨달았다. 군중이 성전을 향하여 움직임에 따라서, 그리고 주가 나귀 새끼에 걸터앉아 있음을 보는 동안에, 요한은 예수가 한때 성서의 구절, 스가랴의 말씀을 인용한 것을 기억했는데, 이것은 메시아가 평화의 사람으로 오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
렘으로 들어가는 것을 묘사했다. 이 구절을 머리 속에서 이모저모 따져보자, 요한은 이 일요일 오후 구경거리가 상징하는 의미를 비로소 알아차렸다. 적어도 그는 이 구절의 뜻을 넉넉히 깨달았고, 이것은 그로 하여금 그 에피소드를 얼마큼 즐기고, 겉보기에 목적 없이 승리의 행진이 끝난 것에 지나치게 우울해지지 않게 하였다. 요한은 상징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자연스러운 성향이 있는 종류의 지성을 가졌다.
빌립은 그 소동이 갑작스럽게 저절로 터져서 온통 들떠 있었다. 올리브 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생긴 이 모든 시위가 도대체 무슨 일인가, 어떤 정돈된 개념에 이를 만큼 충분히 생각을 가다듬을 수 없었다. 주가 영예를 받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그 연출을 기쁘게 보았다. 그들이 성전에 이를 때가 되어서, 그는 예수가 아마도 그에게 군중을 먹이라고 요청할까 하는 생각에 움찔했고, 그래서 군중으로부터 여유 있게 돌아서는 예수의 행동이 대다수의 사도들에게 그토록 쓰라린 실망을 주었지만, 빌립에게는 크게 안심이 되었다. 군중은 때때로 열둘의 집사에게는 큰 시련이었다. 군중의 물질적 필요에 관하여 이 개인적 걱정을 덜고 난 뒤에, 빌립은 군중을 가르치려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실망을 베드로와 함께 표현했다. 그 날 밤에 빌립은 이 체험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고, 하늘나라 아이디어 전부를 의심하는 유혹이 들었다. 이 모든 일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솔직하게 궁금하였지만, 의심을 아무에게도 나타내지 않았는데, 예수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주를 크게 신뢰하였다.
상징적이고 예언 같은 모습을 제쳐 놓고, 나다니엘은 주가 유월절의 순례자로부터 일반적 지지를 얻은 이유를 가장 가깝게 이해하였다. 그들이 성전에 이르기 전에, 예루살렘으로 그렇게 시위(示威)하며 들어가지 않고는 주제넘게 도시로 들어가려는 순간, 예수가 산헤드린의 관리들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던져지리라는 것을 생각해서 알아 냈다. 그러므로 예수가 도시의 담 안으로 일단 들어가고,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즉시 체포하는 일을 삼가도록 이렇게 그들에게 설득력 있게 감명을 주고 나서, 주가 즐거워하는 군중을 더 이상 이용하지 않은 것에 나다니엘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이런 방법으로 주가 도시에 들어간 참 이유를 알았기 때문에, 나다니엘은 더 차분하게 자연스럽게 따라갔고, 다른 사도들보다 예수의 나중 행동에 마음이 덜 흔들리고 실망을 적게 느꼈다. 나다니엘은 까다로운 상황을 다루는 데 예수가 지혜롭고 영리할 뿐 아니라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을 크게 신뢰했다.
마태는 처음에 이 구경거리 연출에 어쩔 줄을 몰랐다. 예루살렘의 임금이 와서 구원을 가져오고 나귀 새끼를 타고 왔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기뻐하는 것을 선지자가 언급하는 스가랴의 구절을 또한 상기할 때까지,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그 행렬이 도시 방향으로 움직이고, 그리고 나서 성전에 가까워지자, 마태는 환희에 빠졌다. 소리지르는 이 군중의 선두에서 주가 성전에 도착했을 때, 무슨 놀라운 일이 일어나리라고 확신했다. 바리새인들 가운데 하나가, “모두 보라, 누가 여기에 오는가, 유대인의 임금이 나귀를 탔구나!”하며 예수를 비웃었을 때, 마태는 겨우 크게 자제함으로 가까스로 그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 날 저녁에 베다니로 가는 길에 열두 사도 중에서 아무도 그보다 더 우울하지 않았다. 시몬 베드로와 열심당원 시몬 다음으로, 그는 가장 날카롭게 신경이 곤두섰고, 밤이 되자 지친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마태는 훨씬 즐거워졌다. 결국 그는 지고도 즐거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토마스는 모두 열둘 가운데서 가장 어리둥절하고 당황했다. 대부분의 시간에 그냥 따라다녔고, 그 광경을 보면서 주가 그러한 특이한 시위에 참가한 동기가 도대체 무엇일까 정직하게 의문을 품었다. 가슴 속 깊이 그 연출 전체가, 명백히 어리석지는 않더라도, 조금 유치하다고 여겼다. 이와 같은 어떤 일도 예수가 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이 일요일 오후에 예수의 이상한 행동을 설명하지 못해서 어리둥절했다. 그들이 성전에 이를 때가 되어서, 토마스는 이 민중 시위의 목적은 산헤드린을 깜짝 놀라게 해서, 그들이 감히 주를 즉시 체포하려 하지 않도록 하는 것임을 추측했다. 베다니로 돌아가는 길에, 토마스는 생각이 많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잘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시끌벅적한 입성을 연출한 예수의 영리함이 얼마큼 유머 있게 호소하기 시작했고, 그는 이 반응 때문에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열심당원 시몬에게 이 일요일은 큰 날로 시작되었다. 다음 며칠 동안 예루살렘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환상을 보았고, 그 점에서 그는 옳았다. 그러나 시몬은 예수가 다윗의 왕좌에 앉고, 유대인들의 새 국가 통치가 확립되는 것을 꿈꾸었다. 하늘나라가 선포되자마자 민족주의자들이 행동에 나서고, 그 자신은 새 나라의 군집하는 군대의 최고 지휘를 맡는 것을 보았다. 올리브 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그 날 해지기 전에 산헤드린과 그 동조자들이 다 죽는 것을 환상으로 보기까지 했다. 정말로 무슨 큰 일이 일어나려 한다고 믿었다. 그는 군중 전체에서 가장 시끄러운 자였다. 그 날 오후 다섯 시가 되자, 그는 말이 없고 움츠러들고 환상에서 깨어난 사도였다. 적어도 주가 부활하고 시간이 오래 지나기까지, 그는 이 날 충격을 받은 결과로서 그에게 덮친 우울함으로부터 결코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알패오 쌍둥이에게 이 날은 완벽한 날이었다. 끝까지 하루를 정말로 즐겼고, 성전 근처에서 조용히 방문하는 동안에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민중 봉기의 시시한 끝을 상당히 피했다. 그 날 저녁에 베다니로 돌아왔을 때, 사도들의 풀이 죽은 행동을 그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쌍둥이가 기억하기로, 이 날이 언제나 땅에서 하늘에 가장 가까운 날이었다. 이 날은 사도로서 그들의 생애 전체에서 흐뭇한 절정이었다. 이 일요일 오후의 가슴 뿌듯함은 파란 많은 이 주간의 비극 모두를 치르고, 십자가 처형의 바로 그 시간까지 그들을 버티게 했다. 그것은 쌍둥이가 상상할 수 있는 바, 가장 어울리는, 임금의 입성(入城)이었고, 그들은 구경거리 전부를 순간마다 즐겼다. 그들이 본 모든 것을 완전히 좋게 여겼고, 오랫동안 그 기억을 간직했다.
모든 사도 가운데, 가룟 유다는 예루살렘으로 이 행렬이 입성한 것에 가장 나쁘게 영향을 받았다. 시몬의 집에서 잔치할 때 마리아가 향유를 부은 것과 관련하여 그 전날 주의 꾸지람을 받은 것 때문에, 그의 머리는 불만(不滿)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유다는 그 광경 전부에 속이 메스꺼웠다. 그에게 이것은, 정말로 우스꽝스럽지는 않더라도, 유치하게 보였다. 복수심에 찬 이 사도가 이 일요일 오후의 행렬을 보았을 때, 그에게 예수는 임금보다는 어릿광대와 비슷하게 보였다. 그는 마음 속에서 그 연출 전체를 분개하였다. 그는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의 관점을 가졌고, 이들은 나귀나 나귀 새끼를 탈 사람은 누구든지 깔보았다. 승리의 행렬이 도시로 들어갔을 무렵에, 유다는 그러한 하늘나라 아이디어 전부를 버리기로 거의 작정하였다. 하늘나라를 세우려는 모든 그러한 어리석은 시도를 버리기로 거의 결심하였다. 그리고 나서 나사로의 부활과 많은 다른 일을 생각했고, 적어도 하루 더, 열둘과 함께 계속 남아 있기로 마음먹었다. 게다가 그는 돈 가방을 지녔고 사도의 자금(資金)을 몸에 지니고서, 버리고 달아나려 하지 않았다. 그 날 밤에 베다니로 돌
아가는 길에 그의 행동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는데, 사도들이 다 똑같이 풀이 죽었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다는 사두개인 친구들의 조롱에 엄청나게 영향을 받았다. 예수가 도시의 대문에 막 이르자 일어난 어떤 에피소드만큼, 어떤 한 가지 다른 이유도 그에게 그렇게 강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어떤 저명한 사두개인이 (유다 집안의 한 친구) 즐겁게 비웃는 기분으로 그에게 달려가서 등을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내 친구여, 어째서 얼굴에 그리 근심하는 빛이 있느냐. 이 나사렛 예수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의 여러 대문을 지날 때, 그가 유대인의 임금이라 우리가 갈채하는 동안, 기운을 내고 우리 모두와 합세하라.” 유다는 박해로부터 움츠러든 적이 없었지만, 이 따위의 비웃음은 견딜 수 없었다. 오래 간직했던 복수(復讐)의 감정과 함께, 조롱받는다는 이 치명적 두려움, 주와 동료 사도들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이 끔찍하고 두려운 느낌이 이제 섞였다. 마음 속에서, 세움 받은 이 하늘나라 대사는 이미 도망자였다. 주와 드러내 놓고 갈라지는 어떤 그럴듯한 핑계를 찾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