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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원칙

뉴징검다리 2010. 2. 10. 05:46

4. 생활 원칙

바로 이 안식일 저녁에 베다니에서, 예수와 열둘, 한 무리의 신자들이 나사로의 집 뜰에서 불 옆에 모여 있는 동안에, 나다니엘예수에게 물었다: “주여, 남들이 우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이 우리가 저희에게 해야 한다는 지침을 주시며 옛 생활 원칙의 긍정 형식을 당신이 가르쳤어도, 나는 어떻게 그런 명령을 언제나 지킬 수 있는가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나이다. 마음에 있는 배우자를 이처럼 죄 속에서 사악하게 바라보는 음탕한 사람의 예를 들어서, 내 주장을 들어 보소서. 남들이 자기에게 하기 바라는 대로, 나쁜 생각을 품은 사람이 저희에게 해야 한다고 어찌 우리가 가르칠 수 있나이까?”

나다니엘의 물음을 듣자, 예수는 벌떡 일어나서 손가락으로 그 사도를 지적하며 말했다: “나다니엘아, 나다니엘아! 너는 마음 속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영에게서 태어난 자로서 내 가르침을 받지 않느냐? 지혜롭고 영적 이해를 가진 사람으로서 진리를 듣지 않느냐? 남들이 너희에게 해 주기 바라는 대로 저희에게 행하라 훈계했을 때, 나는 높은 이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른 것이요, 악행을 조장하기 위해서 가르침을 방종으로 왜곡하려고 유혹받을 자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노라.”

말씀을 마치자, 나다니엘이 일어나서 말했다: “하지만 주여, 당신의 가르침의 그런 해석을 내가 승인하리라 생각하시면 안 되나이다. 허다한 사람이 그렇게 당신의 훈계를 잘못 판단하리라 추측하고, 이 문제에 대하여 우리에게 더 가르치시리라 희망한 까닭에 물었나이다.” 그리고 나서 나다니엘이 앉자 예수는 말씀을 이었다: “나다니엘아, 네 머리 속에서 그렇게 악한 생각을 승인하지 않음을 잘 아노라. 그러나 너희 모두가 너무나 자주 평범한 가르침에 진정한 영적 해석을 내리지 못하여 내가 실망하노니, 그 가르침은 인간의 언어로, 사람들이 말해야 하는 그대로, 너희에게 주어야 하느니라. ‘남들이 너희에게 해 주기 바라는 대로 저희에게 하라,’ 이 생활 원칙, 이 훈계의 해석에 붙는 의미의 다른 수준에 관하여 너희를 가르치리라:

“1. 육체의 수준. 순전히 이기적이고 음탕한 그런 해석은 네 질문이 가정한 것이 잘 예를 보여주리라.

“2. 느낌의 수준. 이 수준은 육체의 수준보다 한 단계 높으며, 동정심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이 생활 원칙의 해석을 높일 것이라 의미하느니라.

“3. 지성의 수준. 이제 지성의 논리와 체험의 지능이 활동하게 되느니라. 그런 생활 원칙이 깊은 자존심의 고귀함에 담겨 있는 최고의 이상주의에 어울리게 해석

되어야 한다고 바른 판단이 명령하느니라.

“4. 형제 사랑의 수준. 한층 높은 경지에서 동료의 복지에 사심 없이 헌신하는 수준을 발견하느니라. 더 높은 이 수준, 하나님이 아버지임을 의식하고 그 결과로 사람이 형제임을 인식함으로부터 생겨나는 봉사, 진심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수준에서, 이 기본 생활 원칙의 새롭고 훨씬 더 아름다운 해석이 있느니라.

“5. 도덕의 수준. 다음에, 참된 철학 수준의 해석에 다다를 때, 사물의 옳고 그름에 대하여 진정한 통찰력을 가질 때, 너희가 인간 관계의 영원한 건강을 깨달을 때, 생활 형편에 적응하는 개인 문제에 적용되는 대로, 고상하게 생각하고, 이상적이고, 지혜롭고, 치우치지 않은 제삼자가 그런 명령을 보고 해석하리라 생각되는 대로, 너희가 그런 해석 문제를 비로소 보게 되리라.

“6. 영적 수준. 다음에 마지막이지만 가장 중대한 수준, 영적 통찰력과 영적 해석의 수준에 다다르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리라 생각되는 대로 저희를 대우하라는 신의 명령을 이 생활 원칙에서 인식하라고 우리에게 강요하느니라. 이것이 인간 관계의 우주 이상(理想)이라. 너희 최고의 소망이 언제라도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일 때, 이것이 모든 그런 문제에 대하여 취할 태도이라. 그러므로 비슷한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내가 하고자 하리라 생각되는 대로 너희가 저희에게 행하기를 바라노라.”

이 때까지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중에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이 없었다. 그들은 주가 물러나신 뒤에 오랫동안 그 말씀을 토론했다. 나다니엘은 질문의 정신을 예수가 오해했다는 생각에서 회복하는 데 더디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철학적인 동료 사도가, 사람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질문을 던질 용기를 보인 것을 고맙게 여기고도 남았다.

5. 바리새인 시몬을 찾아보다

시몬유대산헤드린의 회원이 아니었어도, 예루살렘에서 영향력 있는 바리새인이었다. 건성으로 믿는 사람이었는데, 심하게 비난을 받을까 싶은데도, 예수와 개인 동료들, 베드로·야고보·요한을 집으로 저녁 식사 모임에 감히 초대하였다. 시몬은 주를 오랫동안 지켜보았고, 그 가르침에, 그리고 그 인격에 더욱 깊이 감명을 받았다.

부유한 바리새인들은 자선에 전념하였고, 박애(博愛) 정신의 선전을 피하지 않았다. 때때로 어떤 거지에게 자선(慈善)을 베풀려 할 때 나팔까지 불곤 하였다. 이 바리새인들은 탁월한 손님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 대문을 열어놓는 것이 관습이었고, 그래서 길거리의 거지들도 들어와서, 저녁 먹는 사람들의 소파 뒤로, 벽을 둘러싸고 서서, 잔치하는 사람들이 던질까 싶은 음식을 받을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시몬의 집에서 이 특별한 계제에, 길거리에서 들어온 사람들 가운데 평판 좋지 않은 여인이 있었는데, 최근에 하늘나라 복음의 좋은 소식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 이 여인은 이방인의 성전 마당 바로 옆에 자리잡은 이른바 고급 창녀 집 중에 하나를 예전에 운영하던 사람으로 온 예루살렘에 두루 잘 알려져 있었다. 예수의 가르

침을 받아들이고 난 뒤에, 못된 장사 자리를 걷어치웠고, 관련을 가졌던 대다수의 여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생활 형태를 바꾸도록 유도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아직도 바리새인들에게 크게 업신여김을 받았고―매춘의 표시로―머리털을 내리도록 강요되었다. 이름 없는 이 여자는 향기로운 로션이 든 큰 병을 가져왔고, 예수가 음식을 들며 기대고 있는 동안, 뒤에 서서 그의 발에 기름을 바르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또한 감사의 눈물로 그의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발을 닦고 있었다. 이렇게 바르기를 마치고 나서, 줄곧 눈물을 흘리며 그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이 모든 것을 보자 시몬은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사람이 선지자라면, 이렇게 그를 만지는 이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종류의 여자인가, 악명 높은 죄인임을 알아차렸으리라.” 시몬의 머리 속에서 무슨 생각이 돌아가는지 아시기 때문에, 예수는 입을 열어 말씀했다. “시몬아, 너에게 이르고 싶은 것이 있노라.” 시몬이 대답했다, “주여, 말씀을 계속하소서.” 그러자 예수가 말했다: “돈 빌려 주는 어떤 부자에게 빚진 자가 둘 있었는지라. 하나는 그에게 5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다른 하나는 오십을 졌더라. 자, 둘 가운데 아무도 갚을 돈이 없어서, 두 사람을 용서해 주었더라. 시몬아, 네 생각에는 둘 가운데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했다. “제 생각에는 빚을 더 많이 용서해 준 자니이다.” 그리고 예수는 말했다: “네가 옳게 판단하였도다.” 여인을 가리키면서, 예수는 말을 이었다: “시몬아, 이 여인을 잘 들여다보라. 초청받은 손님으로 내가 집에 들어왔는데, 그래도 너는 내게 발 씻을 물을 주지 않았고, 감사하게 여기는 이 여인은 눈물로 내 발을 씻고 머리털로 내 발을 닦았느니라. 너는 친절한 인사로 내게 입맞추지 않았으되, 이 여인은 들어온 뒤로 죽,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는 내 머리에 기름 붓기를 소홀히 하였으되, 그 여인은 비싼 로션을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다만, 이 여인은 많은 죄를 용서받았고, 이것이 그 여자로 하여금 많이 사랑하게 하였느니라. 그러나 조금만 용서받은 자는 때때로 조금만 사랑하느니라.” 그 여인을 돌아보시고, 여인의 손을 잡아 일으키면서 말했다: “너는 정말로 네 죄를 뉘우쳤고, 용서함을 받았느니라. 동포의 생각 없고 불친절한 태도에 낙심하지 말라. 하늘나라의 기쁨과 자유 속에 계속하여라.”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시몬, 그리고 함께 저녁을 먹던 친구들은 더욱 놀랐고, 자기들끼리 속삭이기 시작했다. “감히 죄도 용서하다니, 이 사람이 누구이냐?” 이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예수는 돌이켜서 여자를 보내며 말했다: “여자여, 평안히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친구들과 함께 떠나려고 일어나면서, 예수시몬을 돌아보고 말했다: “시몬아, 네가 믿음과 의심 사이에 얼마나 갈팡질팡하는가, 얼마나 두려움 때문에 난처하고 자존심 때문에 괴로운가, 네 마음을 아노라. 그러나 네가 빛에 굴복하도록 너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고, 청하지 않고 반기지 않은 손님의 마음 속에서 하늘나라 복음이 이미 일으킨 엄청난 변화와 비교할 만하게, 바로 그런 지성과 영의 힘찬 변화를 인생의 네 위치에서 맛보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노라. 너희 모두에게 선언하노니,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들어오라고 아버지가 하늘나라 문을 열어 놓았고, 땅에서 가장 비천한 혼이나 가장 극악하다 생각되는 죄인조차도 진지하게 들어가기를 구하면, 그러한 자들에게 어떤 사람이나 집단도 문을 닫을 수 없느니라.” 베드로·야고보·요한과 함께 예수는 청한 주인에게 작별을 알리고, 겟세마네 동산의 야영지에 있는 나머지 사도들과 합치려고 떠났다.

바로 그 날 저녁에 예수하나님에 대한 신분(身分)의 상대적 가치, 그리고 파라다이스로 영원히 올라가는 도중의 진보에 관하여 사도들에게 오래 기억에 남을 연설을 하였다. 예수는 말했다: “아이들아, 아이와 아버지 사이에 참되고 살아 있는 연결이 존재한다면, 아이는 아버지의 이상을 향하여 계속 나아갈 것이 확실하니라. 아이가 처음에는 느리게 나아갈까 싶은 것이 참말이나, 그래도 진보는 확실하니라. 중요한 것은 나아가는 속도(速度)가 아니라, 오히려 확실성이라. 너희가 실제로 거둔 성과는 너희의 방향하나님을 향하는 사실처럼 중요하지 않으니라. 날마다 너희가 무엇이 되고 있는가, 이것은 오늘 너희가 무엇인가보다 무한히 중요하니라.

“너희 중에 몇이 오늘 시몬의 집에서 본 이 변화된 여자는 이 순간에, 시몬, 그리고 선의를 가진 그 친구들의 수준보다 엄청나게 아래에서 살고 있느니라. 그러나 이 바리새인들은 의미 없는 예식으로 예배하는 수준, 사람을 속이는 수준을 거친다는 망상으로 거짓 진보(進步)에 골몰하지만, 이 여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길고도 파란 많은 탐험에서 아주 열심히 출발했고, 하늘을 향한 그 여자의 길은 영적 자만과 도덕적 자기 만족으로 꽉 막혀 있지 않느니라. 인간적으로 말하면, 이 여자는 시몬보다 하나님에게서 훨씬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혼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느니라. 이 여자에게 장래에 엄청난 영적 가능성이 있느니라. 너희 가운데 더러는 영과 혼의 실제 수준에서 높이 서 있지 않을지 모르지만, 너희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에게 이르기까지 열려 있는 생명의 길에서 날마다 나아가고 있느니라. 너희 각자에게 미래에 엄청난 가능성이 있으며, 세상의 지혜와 영적 불신(不信)이 죽어 저장된 큰 지능을 소유하는 것보다, 작더라도 살아 있고 성장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훨씬 좋으니라.”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을 주제넘게 가정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예수는 사도들에게 진지하게 경고했다. 하늘 아버지가 늘 쉽게 죄를 묵인(黙認)하고 무자비함을 용서하는 부모, 물렁하거나 느슨하거나 어리석게 눈감아 주는 부모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땅의 어리석은 자와 짜고서 생각이 모자라는 아이들의 도덕적 몰락을 초래하고, 이로서 자식이 비행(非行)을 저지르고 일찍부터 타락에 빠지게 만드는 데 확실하게 직접 기여하는 부모, 지나치게 응석을 받아 주고 지혜롭지 못한 어떤 부모처럼 하나님이 보이게 만들기까지 아버지와 아들의 예를 그릇 적용하지 말라고 듣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였다. 예수는 말했다: “내 아버지는 아이들의 모든 도덕적 성장과 영적 진보에서 자폭·자살하는 행위와 관습을 응석 받듯 묵인하지 않느니라. 그러한 죄 많은 관습은 하나님 보시기에 더러운 것이라.”

예수와 사도들이 드디어 가버나움을 향해 떠나기 전에, 예수예루살렘의 높고 낮은 자, 부자와 가난한 자들과 함께, 반쯤 사사로운 다른 여러 모임과 잔치에 참석했다. 많은 사람이 정말로 하늘나라 복음의 신자가 되었고, 나중에 아브너와 그 동료들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이들은 예루살렘과 근처에서 하늘나라의 이익을 키우려고 뒤에 남았다.

6. 가버나움으로 돌아가다

4월의 마지막 주에, 예수와 열둘은 예루살렘 가까이 있는 베다니 본부를 떠났고, 예리고요단 강의 길을 거쳐, 가버나움으로 돌아가는 여행 길을 떠났다.

유대인의 대사제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결정을 내릴 목적으로 많은 비밀 회의를 열었다. 모두가 예수의 가르침을 중지하려고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찬성했지만, 방법에 동의할 수 없었다. 헤롯요한을 끝장낸 것 같이, 전에 국가 당국이 그를 처분하기 바랐지만, 예수로마의 관리들이 전도(傳道)에 그다지 놀라지 않도록 일을 처리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따라서 예수가버나움을 향해서 떠나기 전날 열린 회의에서, 예수가 종교적 죄목으로 체포되고 산헤드린에게 재판받아야 하리라고 결정이 내렸다. 따라서 비밀 첩자(諜者) 6인 위원회가 예수의 언행을 지켜보려고 따라다니라고 임명되었고, 이들은 율법을 어기고 신성을 모독하는 충분한 증거를 쌓았을 때 보고서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 여섯 유대인은 약 30명에 이르는 사도의 일행을 예리고에서 따라잡았고, 제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핑계로, 예수의 추종자 일행에 따라붙었는데, 이들은 갈릴리에서 둘째 전도 여행이 시작될 때까지 그 무리와 함께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서 그들 가운데 셋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대사제들과 산헤드린에게 보고하였다.

베드로요단 강 건널목에서 모인 군중에게 설교했고, 이튿날 아침 그들은 아마투스 쪽으로 강을 따라 올라갔다. 가버나움까지 곧바로 진행하기를 바랐지만, 어찌나 큰 무리가 여기에 모였는지 여기서 전도하고 가르치고 세례를 주면서 사흘을 묵었다. 5월 초하루, 안식일 이른 아침까지 집을 향하여 움직이지 않았다. 안식일에 예수가 주제넘게 여행을 떠나려 했으니, 예루살렘 첩자들은 예수에 대하여 처음 죄목―안식일을 어겼다는 죄목―을 이제 확보하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실망하도록 예정되었는데, 떠나기 바로 전에, 예수안드레를 앞으로 불러서, 모두 앞에서 안드레에게 오직 9백 미터까지만 진행하라 지시했기 때문이고, 이것이 유대인이 합법적으로 안식일에 여행하는 거리였다.

그러나 첩자들은 예수와 동료들이 안식일을 어겼다고 고발할 기회를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일행이 좁은 길을 따라서 지나가는 동안, 그 때 막 익고 있던 밀, 바람에 넘실거리는 밀이, 길 어느 편에도 가까이 있었고, 사도들 가운데 더러는 배가 고파서, 익은 이삭을 따서 먹었다. 나그네들이 길을 지나면서 이삭 따먹는 것이 관습이었고, 따라서 그런 행위가 잘못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첩자들은 예수를 공격하기 위한 핑계로서 이것을 붙잡았다. 안드레가 이삭을 손에 비비는 것을 보았을 때, 다가가서 말했다: “안식일에 이삭을 따서 비비는 것이 율법에 어긋남을 너는 모르느냐?” 안드레가 대답했다. “그러나 우리는 배가 고프고, 겨우 필요에 충분할 만큼만 비비노라. 그리고 언제부터 안식일에 이삭 먹는 것이 죄가 되었느냐?”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대답했다: “먹는 것은 아무 잘못이 없지만, 이삭을 따서 두 손 사이에 비비면서 너는 율법(律法)을 어기느니라. 분명히 너의 주는 그런 행위를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 그리고 나서 안드레가 말했다: “그러나 이삭 먹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면, 분명컨대 우리 손에서 비비는 것은 네가 허락하는 이삭 씹기보다 도저히 더 큰 일이 아니라. 어째서 그런 사소한 일로 트집잡느냐?” 안드레가 그들이 트집꾼이라고 넌지시 비추자, 그들은 분개했고, 예수마태에게 말씀하시면서 따라 걷는 데로 달려가서, 항의(抗議)하며 말했다: “보소서, 선생이여, 당신의 사도들이 안식일에 율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나이다. 저희가 이삭을 따서 비벼 먹나이다. 우리는 당신이 저희에게 그만두라고 명하시리라 확신하나이다.” 그러자 예수는 고발하는 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정말로 율법에 열심이로다. 너희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를 잘도 기억하였구나. 그러나 너희는 성서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어느 날 다윗이 배가 고파서, 다윗과 그와 함께 있던 자들이 하나님의 집으로 들어가서 제사 빵을 먹었는데, 사제들을 제외하고 누구라도 그것을 먹는 것이 율법에 어긋나느니라. 게다가 다윗은 그와 함께 있던 자들에게 또한 이 빵을 주었느니라. 안식일에 많은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함을 우리 율법에서 읽지 아니하였느냐? 날이 끝나기 전에, 오늘의 필요를 위하여 가져온 것을 너희가 먹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겠느냐? 착한 사람들아, 안식일을 위하여 열심을 가진 것이 잘하는 일이나, 동료의 건강과 복지를 지키는 것이 더욱 좋으리라. 내가 선언하노니,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졌고, 사람이 안식일(安息日)을 위하여 만들어지지 않았느니라. 너희가 내 말을 감시하려고 우리와 함께 있다면, 나는 드러내 놓고 선언하리니,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에도 주인이라.”

바리새인들은 분별 있고 지혜로운 말씀에 깜짝 놀라고 당황했다. 남은 그 날 동안 자기들끼리 있었고, 감히 아무 질문도 더 하지 않았다.

유대 전통과 노예처럼 치르는 예식에 대한 예수의 반대는 언제나 긍정적이었다. 그의 반대는 그가 행한 것에, 그가 확신한 것에 있었다. 주는 부정적으로 비난하는 데 시간을 거의 쓰지 않았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죄 짓는 방종으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사는 자유를 즐길 수 있다고 가르쳤다. 예수는 사도들에게 말했다: “사람들아, 너희가 진리로 깨우침을 받고, 무엇을 하는지 정말로 안다면, 너희는 복되니라. 그러나 신의 길을 모른다면, 불행하고 이미 율법을 어기는 자이라.”

7. 가버나움에 돌아와서

예수와 열둘이 타리케아에서 배를 타고 벳세다로 온 것은 5월 3일, 월요일 한낮 무렵이었다. 함께 여행하던 자들을 피하려고, 배를 타고 여행했다. 그러나 이튿날이 되어서,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공식(公式) 첩자들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은 다시 예수를 찾아냈다.

화요일 저녁에 묻고 대답하는 관례적 수업 가운데 하나를 예수가 진행하고 있을 때, 여섯 첩자의 두목이 말했다: “나는 여기 당신의 가르침에 참석하고 있는 요한의 사도들 중 하나와 이야기하고 있었나이다. 우리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요한이 그 추종자들에게 명하는 것처럼, 어찌하여 당신은 한 번도 제자들에게 금식하고 기도하라 명하지 않는가 우리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나이다.” 예수요한이 한 말을 언급하면서 이 질문자에게 대답했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 신부 방에 있는 친구들이 금식하느냐? 신랑이 함께 있는 한, 저희는 도저히 굶을 수 없느니라.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리니, 그 때 신부 방의 아이들이 물론 금식하고 기도하리라. 기도하는 것은 빛의 아이들에게 자연스러우나, 금식하는 것은 하늘나라 복음의 일부가 아니라. 지혜로운 재단사(裁斷師)는 줄어들지 않은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깁지 않음을 기억하라, 젖었을 때 줄어들어 더 나쁘게 찢어질까 두려움이라. 사람이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넣지도 않으니, 새 포도주가 가죽을 터뜨려 포도주와 가죽이 다 못 쓰게 될까 두려움이라. 지혜로운 사람은 새 포도주를 새 가죽 부대에 넣느니라. 그런즉 내 제자들이 옛 체제를 지나치게 하늘나라 복음의 새 가르침으로 집어 넣지 아니하매, 저희가 지혜를 보이니라. 선생을 잃은 너희는 한동안 금식(禁食)함이 명분 있을까 하니라. 금식은 모세 율법에서 적당한 부분일지 모르나, 다가오는 하늘나라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두려움에서 자유를 얻고 신성한 영 안에서 기쁨을 누리리라.”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요한의 제자들은 위로를 받았고,

한편 바리새인들은 더욱 어리둥절하였다.

다음에 주는 더 나아가서, 모든 옛 가르침이 전부 새 교리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품지 않도록, 청중에게 경고했다. 예수는 말했다: “오래 되고 또한 참된 것은 지속되어야 하며, 마찬가지로, 새로워도 거짓인 것은 물리쳐야 하느니라. 그러나 새롭고도 참된 것을 받아들일 믿음과 용기를 가지라. 이렇게 기록된 것을 기억하라: ‘오래 된 친구를 버리지 말지니, 새 친구가 저와 견줄 만하지 못함이라. 새 친구는 새 포도주와 같으니, 포도주가 오래 되면, 너희가 즐겁게 마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