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도에 대한 강연
“요한은 정말로 너희에게 간단한 형태의 기도를 가르쳤느니라: ‘아 아버지여, 죄로부터 우리를 씻어 주시고, 아버지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사랑을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영이 우리의 마음을 영원히 거룩하게 하소서, 아멘!’ 그는 너희가 군중에게 무언가 가르칠 것이 있도록 이 기도를 가르쳤느니라. 기도할 때 혼의 표현으로, 너희가 그런 판에 박힌 형식적 간청을 사용해야 한다고 의도하지 않았느니라.
“기도는 영을 향하여 혼의 태도가 보이는 표현, 온전히 개인적이고 저절로 나오는 표현이라. 기도는 아들의 교통이요 친교의 표현이어야 하느니라. 영이 기도를 지었을 때, 기도는 협동하는 영적 진보로 인도하느니라. 이상적인 기도는 지적 예배로 이끄는 영적 교통의 한 형태요, 참되게 기도하는 것은 너희의 이상을 이루려고 하늘을 향하여 손을 뻗는 성실한 태도이라.
“기도는 혼의 호흡이요,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려는 끈질긴 시도로 이끌어야 하느니라. 너희 가운데 누가 이웃이 있어, 한밤에 가서 ‘친구여, 빵 세 덩이를 꾸어 달라, 여행하는 내 친구가 나를 보러 왔는데, 그 앞에 내놓을 것이 하나도 없노라’ 말하고, 네 이웃이 대답하되 ‘나를 귀찮게 하지 말라, 이제 문이 닫혔고 아이들과 나는 잠자리에 들었으니, 일어나서 빵을 줄 수 없노라’하면, 너는 친구가 배고프다, 그에게 먹을 것을 하나도 줄 수 없다고 설명하며 고집하리라. 너희에게 이르노니, 네 친구라고 해서 이웃이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겠거니와 그래도 끈질기게 조르는 까닭에, 일어나서 필요한 대로 너에게 빵을 주리라. 그래서 끈질긴 요청이 인간에게서도 특혜(特惠)를 얻는다면, 너희가 영적으로 끈질기게 구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마음 내키는 손에서 생명의 빵을 얼마나 더 얻겠느냐.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내리라, 두드리라, 그리하면 문이 열리리라. 구하는 자마다 받으며, 찾는 자는 찾아내며, 구원의 문을 두드리는 자에게는 문이 열리리라.
“너희 가운데 어떤 아버지가 아들이 지혜롭지 못하게 간청하면, 아들이 잘못 간구하는 그대로가 아니라 부모의 지혜에 따라 주기를 망설이겠느냐? 빵이 필요하면, 아이가 지혜롭지 못하게 돌을 달라 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돌을 주겠느냐? 네 아들이 물고기가 필요하면, 그물 속에 물뱀이 어쩌다가 물고기와 함께 올라오고 단지 아이가 어리석게 뱀을 달라 요구한다고 해서, 그에게 물뱀을 주겠느냐? 그러면 죽을 수 밖에 없고 유한한 너희가 기도(祈禱)에 응답하고 아이들에게 좋고 적당한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는 구하는 자들에게 영을 비롯하여 많은 다른 복을 얼마나 더 부어 주시겠느냐? 사람들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어느 사악한 도시에 살았던 어떤 재판관의 이야기를 들어 보라.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사람을 존경하지도 않았느니라. 자, 그 도시에 어떤 빈궁한 과부가 있었는데, 이 부당한 판사에게 거듭 찾아와서 ‘내 원수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소서’ 말하였는지라. 얼마 동안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으나, 곧 그가 혼잣말을 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존중하지도 않아도, 이 과부가 나를 때 없이 번거롭게 하니, 계속 찾아와서 나를 지치게 하지 않도록 그 여자를 변호하리라.’ 너희가 집요하게 기도하라 격려하려고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요, 너희의 간구가 하늘에 계신 공평하고 올바른 아버지의 마음을 바꾸리라는 것을 비추려 함이 아니라. 그러나 너희의 집요(執拗)함은 하나님에게 은혜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너희 태도를 바꾸고 혼의 영적 감수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
“그러나 기도할 때 너희는 너무 믿음이 작으니라. 진정한 믿음은 혼이 성장하고 영적으로 진보하는 길에 어쩌다 놓인 산더미 같은 물질적 어려움을 없애리라.”
3. 믿는 자의 기도
그러나 사도들은 아직 마음이 흡족하지 않았다. 새 제자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모범 기도를 예수가 주시기를 바랐다. 기도에 대한 이 강론(講論)을 들은 뒤, 야고보 세베대가 말했다: “아주 좋소이다, 주여, 그러나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어떻게 적절하게 기도하는가 우리에게 가르치소서’하고 우리에게 무척 자주 부탁하는 새 신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형식을 원하나이다.”
야고보가 말을 마치자 예수는 말했다: “그래, 너희가 아직도 그런 기도를 바란다면, 내 아우와 누이들에게 나사렛에서 가르친 것을 하나 제시하고자 하노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하옵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내일을 위하여 오늘 우리에게 빵을 주시고
생명의 물로 우리의 혼을 새롭게 하소서.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해 준 것 같이
또한 우리의 빚을 모두 용서하소서.
시험 속에서 우리를 구하시고,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며,
아버지처럼 더욱 우리를 완전하게 만드소서.
사도들이 신자들을 위하여 예수가 모범 기도를 가르쳐 주기를 바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세례자 요한은 추종자들에게 몇 가지 기도를 가르쳤다. 위대한 선생들은 모두 생도들을 위하여 기도를 지었다. 유대인의 종교 선생들은 스물다섯이나 서른 정도, 지정(指定)된 기도가 있었고, 회당에서, 길거리 구석에서도 외웠다. 예수는 대중 앞에서 기도하기를 특별히 꺼렸다. 이 때까지, 열두 사도는 그가 기도하는 것을 겨우 몇 번 들었다. 예수가 밤새도록 기도하거나 예배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그가 간청하는 방식이나 형식을 매우 알고 싶어했다. 요한이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처럼, 어떻게 기도하는가 가르쳐 달라고 요청을 받았을 때, 대중에게 무어라고 대답할지 몰라서 정말로 궁지에 빠졌다.
예수는 열두 사도에게 언제나 남모르게 기도하라, 기도에 들어갈 때, 훌쩍 떠나 자기들끼리 조용한 자연 환경 가운데로 가거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으라고 가르쳤다.
예수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께로 올라간 뒤에, 많은 신자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를 덧붙여, 이른바 이 주기도문(主祈禱文)을 끝내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그 뒤에, 두 줄이 베끼다가 없어졌고, 이 기도에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임이니이다” 하는 여분의 구절이 더해졌다.
예수는 나사렛 집에서 식구들이 기도한 그대로, 공동(共同) 형태의 기도를 사도들에게 주었다. 결코 형식적인 개인 기도를 가르치지 않았고, 오직 집단, 가족 또는 사회적 간청을 가르쳤다. 예수는 결코 그렇게 하겠다고 자청(自請)하지 않았다.
예수는 효과 있는 기도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1. 이기심 없이―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2. 믿으면서―믿음에 따라서.
3. 성실하게―마음이 정직하게.
4. 총명하게―빛에 따라서.
5. 신뢰하면서―아버지의 전적으로 지혜로운 뜻에 복종해서.
예수가 기도하느라고 산에서 밤새도록 있을 때, 그것은 주로 제자들, 특히 열두 사도를 위한 것이었다. 주는 자신을 위하여 거의 기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파라다이스 아버지와 함께 이해하며 교통하는 성질의 예배에 많이 잠겨 있었다.
4. 기도에 대하여 더 하신 말씀
기도에 대한 강론이 있은 뒤에 며칠 동안, 사도들은 온통 중요하고 경건한 이 습관에 대하여 주께 계속 물었다. 이 며칠 동안 사도들에게 예수가 기도와 예배에 관하여 교육한 것은, 다음과 같이 현대의 말투로 요약하고 다시 정리해도 좋다:
어떤 간구를 진지하게 간절히 되풀이하는 것은, 그런 기도가 하나님의 자녀의 진지한 표현이고 믿음에서 튀어나왔을 때, 직접 응답하는 것이 아무리 현명치 못하고 불가능하더라도, 그 혼의 영적 감수(感受) 능력을 어김없이 키워 준다.
모든 기도에서, 아들 신분이 선물임을 기억하라. 어떤 아이도 아들이나 딸의 신분을 얻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땅에 있는 아이는 부모의 뜻에 따라서 생겨나게 된다. 과연 그러하니, 하나님의 아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영(靈)의 은총과 새 생명으로 들어온다. 따라서 하늘나라―신의 아들 신분―을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너희는 올바름―진보적 인격 성장―을 노력으로 얻지만, 은총으로 말미암아, 믿음을 통해서 아들 신분을 받는다.
기도는 예수의 혼이 온 우주의 최상 통치자들과 초월적 교통을 가지는 곳까지 이끌었다. 기도는 땅의 필사자들을 참된 예배로 교통하는 경지까지 이끌 것이다. 혼의 영적 감수 능력은 하늘이 내리는 축복의 양(量)을 좌우하며, 이 축복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개인적으로 쓰이고, 의식하면서 실현될 수 있다.
기도와 그에 결부된 예배는 생활의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물질 존재의 단조로운 고역(苦役)으로부터, 초연해지는 기법이다. 기도는 영적으로 변화된 자아 실현, 그리고 지적·종교적으로 달성하는 개성에 가까이 가는 길이다.
기도는 해로운 내성(內省)의 해독제이다. 적어도, 주가 가르친 것과 같은 기도는 혼에 몹시 유익한 보살핌이다. 예수는 사람이 동료들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의 유익한 영향력을 한결같이 이용했다. 주는 단수(單數)가 아니라, 복수(複數)의 표현으로 보통 때 기도했다. 오직 땅에서 보낸 일생의 큰 위기에 부딪쳤을 때 예수는 자신을 위하여 기도했다.
기도는 인류의 여러 종족의 물질 문명 한가운데서 영적 생명이 숨쉬는 것이다. 예배는 쾌락을 추구하는 필사자 세대에게 주는 구원이다.
기도를 혼의 영적 전지(電池)를 다시 충전하는 것과 비유해도 좋은 것 같이, 예배는 혼을 우주의 아버지의 무한하신 영이 보내는 우주 방송을 잡으려고 혼을 조절하는 행위와 비교해도 좋다.
기도는 아이가 영 아버지를 진지하고 갈급하게 바라보는 것이요, 기도는 인간의 뜻을 신의 뜻과 교환하는 심리학 과정이다. 기도는 이제 있는 것을, 앞으로 되어야 하는 것으로 개조(改造)하는 신의 계획의 일부이다.
예수가 오래 밤늦게 깨어 있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무척 자주 동반했는데, 이들이 예수의 기도를 듣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주가 소리나게 기도를 입밖에 낸 적이 아주 드물었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기도는 정신적으로, 마음 속에서―말없이―하셨다.
모든 사도 가운데, 베드로와 야고보가 기도와 예배에 대한 주의 가르침을 가장 가깝게 알아들었다.
5. 다른 형태의 기도
땅에서 머무르던 나머지 기간에, 때때로 예수는 사도들에게 몇 가지 추가 기도 형태를 주목하게 했지만, 다만 다른 문제들을 설명하면서 그렇게 했으며, 이 여러 “비유 기도”를 군중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타일렀다. 이 기도문 가운데 여럿은 사람 사는 다른 혹성들에서 온 것이지만, 이 사실을 예수는 열둘에게 밝히지 않았다. 이 기도들 가운데 다음이 있었다:
우주 영토가 우리 아버지 안에 계시니
그 이름과 온통 영화로운 그 성품이 높임을 받으소서.
아버지의 계심은 우리를 둘러싸고, 그 영광은 하늘에서 완전히
보이는 것 같이 우리를 통해서 불완전하게 나타나나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활기 있게 하는 빛의 힘을 주시고,
상상하는 악한 옆길로 우리가 빠지지 말게 하소서.
아버지의 깃드심은 영화로운 계심, 영구한 힘이요,
아들의 무한한 사랑이 우리에게 영원한 선물인 까닭이니이다.
바로 그러하니, 언제까지나 참이니이다.
***
우주의 중심에 계시고 창조하시는 우리 아버지여
우리에게 아버지의 성품을 주시고 그 됨됨이를 주소서.
은총으로 우리를 아들딸로 만드시고,
우리의 영원한 성취를 통해서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소서.
천사들이 빛 속에서 아버지의 명령을 듣는 것 같이
우리가 이 구체에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도록,
조절하고 고삐 쥐는 영을 우리 안에 살고 거하도록 주소서.
오늘날 진리의 길을 따라 나아가는 가운데 우리를 버티게 하시고
타성과 악과 모든 악한 죄짓는 행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동료에게 친절을 보이는 것 같이 우리를 참으소서.
자비의 영을 우리 인간 마음 속에 널리 펼치소서.
생명의 불확실한 미로를 통해서 걸음걸음 아버지의 손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의 끝날이 다가올 때, 우리의 충실한 영을 아버지 품 안에 받으소서.
그렇다 해도, 우리의 소망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
완전하고 올바른 우리 하늘 아버지여,
오늘날 우리의 여행을 안내하고 지도하소서.
우리의 발걸음을 거룩히 하고 우리의 생각을 조절하소서.
영원히 진보하는 길에서 우리를 늘 이끄소서.
권능이 충만하기까지 우리를 지혜로 채우시고
무한한 에너지로 활력을 주소서.
천사 무리의 계심과 안내를 신성하게 의식함으로 우리를 북돋우소서.
빛의 길에서 위를 향하여 항상 안내하소서.
큰 심판의 날에 우리를 충분히 정당하게 만드소서.
영원한 영광 속에서 우리를 아버지처럼 만드시고
하늘에서 끝없이 봉사하는 길로 우리를 받으소서.
***
신비 속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거룩한 성품을 우리에게 나타내소서.
땅에 있는 아이들에게, 오늘을 주시사 길과 빛과 진리를 보게 하소서.
영원히 나아가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그 안에서 걸을 의지를 주소서.
우리 안에서 아버지의 신성한 왕권을 세우시고
그로서 우리가 자아를 완전히 통달하게 하소서.
어둠과 죽음의 길로 빗나가지 않게 하시고
생명의 물가로 영원히 우리를 이끄소서.
아버지 자신을 위하여 우리의 기도를 들으소서.
우리를 더욱 아버지처럼 만들기를 기뻐하소서.
끝에는 신다운 아들을 위하여, 영원한 팔 속으로 우리를 받으소서.
그렇다 해도, 우리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
한 부모로 통합된 영화로운 아버지와 어머니여
그 신다운 성품에 우리가 충성하리이다.
신성한 영의 선물과 수여로 말미암아
주가 우리 안에, 우리를 통해 다시 사시도록
주가 하늘에서 완전하고 당당하게 보이는 것 같이
이 구체에서 이렇게 주를 불완전하게 재생하나이다.
날마다 형제 되어 달갑게 봉사할 일을 주시고
순간마다 사랑으로 봉사하는 길에서 우리를 이끄소서.
주의 참을성을 우리가 아이들에게 보이는 것 같이
늘 어김없이 우리를 참으소서.
모든 일을 잘 하는 신의 지혜와
모든 생물에게 자비로운 그 무한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소서.
우리의 자선이 이 땅의 약한 자를 품어 안도록
주의 참을성과 인자함을 우리에게 수여하소서.
우리의 생애가 끝날 때, 그것이 주의 이름에 명예요,
주의 착한 영에게 기쁨이요, 우리 혼의 조수에게 만족이 되게 하소서.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여,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필사 자녀들에게 영원히 좋은 것을 주가 바라시는 것 같이
바로 그렇게 되어지이다.
***
온통 충실한 우리의 근원, 전능한 중심이여,
온통 인자한 아들의 이름을 경건하고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은혜와 복이 우리에게 내려와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 명령을 집행하도록 우리에게 힘 주나이다.
순간마다 생명 나무의 자양분을 우리에게 주시고,
날마다 그 안에 있는 생명의 강물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한 걸음 한 걸음 어둠에서 신성한 빛으로 우리를 이끄시고
깃드는 영이 변화시킴으로 우리의 지성을 새롭게 하소서.
마침내 죽는 날이 우리에게 닥칠 때
아버지의 몸에 우리를 받으시고 영원으로 보내소서.
결실이 많게 봉사하는 하늘 왕관을 우리에게 얹으소서,
바로 그러하니, 끝없는 우주 전역에 걸쳐서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한 영향을 영화롭게 하리이다.
***
우주의 은밀한 곳에 거하시는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이 영예롭고, 자비가 존경받고, 판단이 존중받으옵소서.
올바름의 태양이 한낮에 우리를 비추게 하소서
한편 땅거미 질 때 우리가 멋대로 걷는 걸음을 안내하시기 바라나이다.
아버지가 택하는 길에서 우리를 손잡아 이끄시고
길이 어렵고 때가 어두울 때 우리를 버리지 마소서.
우리가 아버지를 무척 자주 소홀히 하고 잊는 것 같이 우리를 잊지 마시고
우리가 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어하는 것 같이 자비롭고 우리를 사랑하소서.
우리를 괴롭히고 해치는 자를 우리가 공평하게 용서하는 것 같이
친절히 우리를 내려다보시고 자비 속에 우리를 용서하소서.
훌륭한 아들의 사랑과 헌신과 수여가
아버지의 끝없는 자비와 사랑과 더불어 영생이 소용되기를.
우주의 하나님이 그 영을 충분히 우리에게 내려 주시기를.
우리에게 이 영의 인도하심에 굴복할 은혜를 내리소서.
헌신하는 천사 무리가 사랑으로 베푸는 봉사로 말미암아
아들이 시대의 끝까지 우리를 안내하고 인도하기를.
갈수록 더 우리를 늘 아버지처럼 만드시고
우리의 마지막 날에 영원한 파라다이스 품으로 우리를 받으소서.
바로 그러하니, 수여 아들의 이름으로
또 최상의 아버지의 영예와 영광을 위하여.
사도들은 대중을 교육할 때 이 기도 교훈을 발표할 자유가 없었지만, 이 모든 계시로부터 개인의 종교적 체험에서 많은 소득을 얻었다. 예수는 열두 사도를 친밀하게 교육하는 것과 연관하여 이것과 기타 기도 모형(模型)을 본보기로 이용했으며, 이 일곱 표본 기도를 이 기록에 옮기도록 특별 허가가 내렸다.
6. 요한의 사도들과 가진 회의
10월 초하루 무렵에 빌립과 동료 사도들 중에서 몇 사람이 가까운 마을에서 먹을 것을 사고 있었는데, 그 때 세례자 요한의 어떤 사도들을 만났다. 시장에서 우연히 이렇게 만난 결과로서, 길보아 야영지에서 예수의 사도와 요한의 사도들 사이에 3주 동안의 회의가 열리게 되었는데, 예수의 선례를 따라서, 요한이 유력(有力)한 제자들 가운데 열둘을 사도가 되도록 최근에 임명했기 때문이다. 요한은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의 우두머리 아브너가 재촉을 받아서 이렇게 했다. 이 합동 회의의 첫째 주간 내내, 예수는 길보아 야영지에 있었지만, 마지막 두 주 동안 자리를 비웠다.
이 달의 둘째 주가 시작되자, 아브너는 동료들을 모두 길보아 야영지에 모았고, 예수의 사도들과 함께 회의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 3주 동안 이 스물네 사람은 하루에 세 번, 한 주에 6일 동안 회의를 가졌다. 첫째 주에 예수는 오전·오후·저녁 회의 사이에 그들과 함께 섞였다. 그들은 주가 함께 회견하고 합동 회의를 주관하기를 바랐지만, 그는 토론에 참여하기를 굳게 물리쳤다. 하지만 세 번 그들에게 말씀하기로 했다. 예수가 스물네 사람에게 한 이 연설은 동정·협동·관용에 대한 것이었다.
안드레와 아브너는 두 사도 집단의 이 합동 회의를 번갈아 주관하였다. 이 사람들은 토론할 어려운 일이 많았고, 수많은 문제를 풀어야 했다. 거듭하여 문제를 예수에게 가져가곤 했지만, 오직 이런 말씀을 들었다: “나는 오직 너희의 개인적이고 순전히 종교적 문제에만 아랑곳하노라. 나는 개인에게 아버지의 대표요, 집단에게는 아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가지는 관계에서 개인적인 어려움에 빠져 있다면, 내게로 오라. 그러면 너희 말에 귀를 기울이고, 너희 문제를 푸는 데 조언하리라. 그러나 너희가 종교 문제에서 갈라진 인간적 해석을 조정하고 종교를 사회화(社會化)하는 일에 들어갈 때, 너희는 자신의 결정에 따라서 모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운명이 정해졌느니라. 그래도 나는 늘 공감하고 언제나 관심을 가지며, 너희가 다 찬성한다면, 비영적 중요성을 가진 이 문제들을 다루는 결론에 이를 때, 완전히 승인하고 한껏 협동할 것을 미리 내가 서약하노라. 그리고 이제, 너희의 심의에 방
해가 되지 않도록, 나는 2주 동안 떠나리라. 내 걱정을 하지 말지니, 내가 돌아올 것임이라. 아버지의 일을 돌보고 있으리니, 우리가 여기 외에 다른 나라들을 가지고 있음이라.”
이렇게 말한 뒤에, 예수는 산허리로 내려갔고, 그들은 꼭 2주 동안 더 보지 못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이 동안에 무엇을 했는지 결코 알지 못했다. 스물네 사람이 그들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면서 결론을 내릴 수 있기까지 얼마큼 시간이 지났고, 주가 자리에 계시지 않아서 아주 씁쓸했다. 그러나 한 주 안에 다시 토론의 핵심(核心)에 들어갔고, 도움을 청하러 예수에게 갈 수 없었다.
그 집단이 찬성한 첫째 항목은 예수가 아주 최근에 가르친 기도를 채택한 것이다. 두 집단의 사도가 신자들에게 가르칠 기도로서 이 기도를 받아들이기로 만장 일치로 투표(投票)하였다.
다음에, 요한이 살아 있는 한, 감옥에 있든 바깥에 있든, 두 집단의 사도들이 할 일을 계속할 것, 때때로 합의(合意)할 장소에서 석 달마다 한 주 동안 합동 회의를 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모든 어려움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은 세례 문제였다. 예수가 그 주제에 대하여 아무 발언도 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어려움은 더군다나 악화되었다. 요한이 살아 있는 한, 아니면 이 결정을 합동으로 수정할 때까지, 오직 요한의 사도들이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고, 오직 예수의 사도들이 마지막으로 새 제자들을 가르치기로 마침내 찬성했다. 따라서 그 때부터 요한이 죽기까지, 요한의 두 사도가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려고 예수와 그의 사도들을 따라다녔는데, 이는 세례가 하늘나라 일과 외관상으로 동맹하는 데 첫 걸음이 되기로 합동 회의가 만장(滿場) 일치로 가결했기 때문이다.
다음에, 요한이 죽을 경우에, 요한의 사도들은 예수 앞에 나타나서 지시에 복종하고, 예수나 그의 사도들이 인가하지 않는 한, 더 세례를 주지 않기로 합의를 보았다.
다음에 요한이 죽을 경우에, 예수의 사도들은 신성한 영이 세례를 주는 상징으로, 비로소 물로 세례를 주기로 가결했다. 세례를 외치는 데 회개가 붙어야 하는가 아닌가는 선택이 되도록 두었고, 집단을 제한하는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요한의 사도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하고 전도했고, 예수의 사도들은 “믿고 세례를 받으라”하고 외쳤다.
이것이 예수의 추종자들이 다양한 노력을 조정하고, 의견 차이를 조절하고, 집단의 사업을 체계화하고, 외관상 관습을 정하고, 개인의 종교적 관행을 사회화하려고 처음으로 시도한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른 사소한 문제들이 많이 고려되었고 그 해결은 만장 일치로 합의를 보았다. 예수가 없이, 문제들에 부딪치고 어려움을 타개(打開)하도록 강요되었을 때, 이 스물네 사람은 이 2주 동안 참으로 놀라운 체험을 가졌다. 그들은 의견을 달리하고, 토론하고, 다투고, 기도하고, 타협하기를 배웠고, 그 동안 내내 다른 사람의 관점에 동정하며, 적어도 정직한 의견에 어느 정도 관용을 지키기를 배웠다.
재정 문제를 마지막으로 토론하던 날 오후에 예수가 돌아왔고, 심의한 결과를 듣고 결정에 귀를 기울이고 나서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너희가 결정하였구나. 합동 결정의 정신을 각자 수행하도록 내가 너희를 도우리라.”
이 때부터 2달 반이 지나서 요한은 처형되었고, 이 기간 내내 요한의 사도들은 예수와 열두 사도와 함께 남아 있었다. 데카폴리스의 여러 도시에서 수고하는 이 기간에, 다 함께 일하고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길보아 야영은 서기 27년 11월 2일에 걷어치웠다.
7. 데카폴리스의 여러 도시에서
11월과 12월 두 달 내내, 예수와 스물네 사람은 데카폴리스의 여러 그리스인 도시에서, 주로 스키토폴리스·게라사·아빌라·가다라에서, 조용히 일했다. 이 때는 정말로 요한의 일과 조직을 이어받는 예비 기간의 끝이었다. 새로운 계시를 가르치는 사회화된 종교는 구제하려는 기존 종교의 확립된 형태 및 관습과 절충(折衷)하는 값을 반드시 치른다. 세례(洗禮)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하나의 사회화된 종교 집단으로서 세례자 요한의 추종자들을 흡수하려고 치른 값이었다. 요한의 추종자들은 예수의 추종자들과 합세하면서, 물 세례 외에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였다.
데카폴리스의 여러 도시로 가는 이 사명에서 예수는 대중에게 설교를 거의 하지 않았다. 스물네 사람을 가르치는 데 어지간히 시간을 썼고, 요한의 열두 사도와 함께 많은 특별 회의를 가졌다.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예수가 어째서 감옥에 있는 요한을 찾아보러 가지 않는가, 어째서 석방을 얻으려고 예수가 아무 노력을 하지 않는가 더욱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어째서 예수가 아무런 놀라운 일을 하지 않는가, 어째서 신성한 권한을 바깥에 나타내는 표징(標徵)을 내보이려 하지 않는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은 길보아 야영지에 오기 전에, 대체로 요한의 증언 때문에 예수를 믿었지만, 주와 그 가르침을 접촉한 결과로서 곧 믿기 시작했다.
이 두 달 동안 그 집단은 대체로 쌍으로 일했고, 예수의 사도들 가운데 하나가 요한의 사도 하나와 함께 나갔다. 요한의 사도들은 세례를 주고 예수의 사도들은 가르쳤으며, 한편 이해한 대로 모두가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파했다. 이 이방인들과 신앙을 버린 유대인들 사이에서 많은 사람을 설득했다.
요한의 사도들 중에 우두머리 아브너는 예수를 열심히 믿는 사람이 되었고, 나중에는 복음을 전파하라고 주가 임명한 70인 선생의 집단에서 우두머리로 임명되었다.
8. 펠라 가까이 캠프에서
12월 후반에 모두 펠라 가까이 요단 강 근처로 갔고, 거기서 다시 가르치고 전도하기 시작했다. 유대인과 이방인들은 복음을 들으려고 이 캠프로 왔다. 예수가 어느 날 오후 군중을 가르치고 있는 동안, 요한의 특별한 친구들 중에 몇이 세례자로부터 마지막 소식을 가져왔다.
요한은 이제 1년 반 동안 감옥에 있었고, 이 동안 대체로 예수는 아주 조용히 수고했으며, 그래서 요한이 하늘나라에 대하여 궁금히 여기게 된 것은 이상하지 않다. 요한의 친구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중단하고 말했다. “당신이 참으로 구원자인가,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찾아야 하는가―세례자 요한이 물어 보라고 우리를 보냈나이다.”
예수는 멈추고 요한의 친구들에게 말했다: “돌아가서 요한에게 그가 잊혀지지 않았다고 이르라. 너희가 보고 들은 것, 가난한 자에게 좋은 소식이 전파된다고 이르라.” 요한의 사자들에게 더 말씀하고 나서, 예수는 다시 군중을 향하여 말했다: “요한이 하늘나라의 복음을 의심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오로지 내 제자이기도 한 그의 제자들에게 확신을 주려고 묻느니라. 요한은 약자가 아니라. 내가 묻노니, 헤
롯이 감옥에 가두기 전에 요한이 설교한 것을 누가 들었느냐. 요한에게서 너희가 무엇을 보았느냐―바람에 흔들린 갈대이더냐? 기분이 변덕스럽고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이더냐? 무릇 화려하게 옷을 입고 세련되게 사는 자들은 임금의 궁정과 부자들의 저택에 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요한을 바라보았을 때 무엇을 보았더냐? 선지자냐? 옳도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훨씬 더한 이라. 요한에 관하여 기록되었으되, ‘보라, 네 얼굴 앞에 내가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네 앞에 길을 예비하리라’ 하였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이가 일어나지 않았느니라. 그래도 하늘나라에서는 작은 사람도 그보다 더 크나니, 그가 영에게서 태어났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음을 아는 까닭이라.”
그 날 예수의 말씀을 들은 많은 사람이 요한의 세례를 받으려고 나아왔고, 이로서 하늘나라로 들어간다는 것을 대중 앞에서 공언했다. 요한의 사도들은 그 날 이후로 예수에게 단단히 결속되었다. 이 일은 요한과 예수의 추종자들이 정말로 뭉쳤음을 표시했다.
사자들이 아브너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 이 모든 것을 요한에게 전하려고 마캐루스를 항하여 떠났다. 그는 크게 위로를 받았고, 그의 믿음은 예수의 말씀과 아브너가 준 메시지에 힘을 얻었다.
이 날 오후에 예수는 이렇게 말하며 계속 가르쳤다: “그러나 이 세대를 내가 무엇에 견주랴? 너희 중 많은 사람이 요한의 메시지도 내 가르침도 받아들이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장터에서 노는 어린아이들 같으니, 동무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소리쳐 울어도 슬퍼하지 않았더라.’ 너희 가운데 더러도 마찬가지이라. 요한이 와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더니, 저희는 그가 악마에 들렸다 하였더라.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니, 바로 이 사람들이 말하되 ‘보라 게걸스레 먹는 사람이요 술꾼이로다,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이라!’ 참으로 지혜의 자손이 지혜를 정당하게 만드느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지혜롭고 거만한 자로부터 이 진리 중에 더러를 감추고, 아기들에게는 드러낸 듯하리라. 그러나 아버지는 모든 일을 잘 하시니라. 아버지는 스스로 택하신 방법으로 우주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니라. 그러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는 다 오라, 그리하면 너희 혼을 위하여 휴식을 주리라. 신이 준 멍에를 너희가 지라, 그리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안을 너희가 맛보리라.”
9. 세례자 요한의 죽음
세례자 요한은 서기 28년 1월 10일 저녁에, 헤롯 안티파스의 명령에 따라 처형되었다. 이튿날 마캐루스에 갔던 요한의 제자들 몇이 그가 집행되었다는 말을 듣고, 헤롯에게 가서 시체를 요구했으며, 무덤에 두었다가, 나중에 세바스티에서, 아브너의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이튿날 1월 12일, 북쪽으로, 펠라 가까이, 요한과 예수의 사도들의 캠프로 떠났고, 예수에게 요한의 죽음에 관하여 일러 주었다. 그보고를 듣자, 예수는 군중을 해산하고, 스물네 사람을 함께 불러서 말했다: “요한이 죽었도다. 헤롯이 그의 목을 베었는지라. 오늘밤 합동 회의를 열고, 그에 따라 너희의 일을 정리하여라. 더 지체하지 말라. 하늘나라를 드러내 놓고 힘차게 선포할 때가 왔느니라. 내일 우리는 갈릴리로 떠나리라.”
따라서, 서기 28년 1월 13일 아침 일찍, 예수와 사도들은, 25명쯤 되는 제자들을 동반하여, 가버나움으로 진행했고, 그 날 밤 세베대의 집에서 묵었다.
제 145 편
사건이 많았던 나흘을 가버나움에서
예수와 사도들은 1월 13일, 화요일 저녁에 가버나움에 다다랐다. 여느 때처럼 벳세다에, 세베대의 집에서 본부를 차렸다. 세례자 요한이 처형되었으니까, 예수는 처음으로 갈릴리에서 공개적인 대중 전도 여행을 개시하려고 준비했다. 예수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도시에 두루 빨리 퍼졌고, 이튿날 일찍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서둘러서 나사렛으로 아들 요셉을 찾아보러 떠났다.
광범위한 첫 대중 전도 여행의 준비로, 예수는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을 세베대의 집에서 사도들을 가르치면서 보냈다. 또한 진지하게 묻는 많은 사람을 하나씩, 그리고 집단으로, 받아들이고 가르쳤다. 안드레를 통해서 다가오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연설하도록 주선하였다.
금요일 저녁 늦게, 예수의 막내 누이 룻이 몰래 그를 찾아왔다. 그들은 물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정박한 배 안에서, 함께 거의 한 시간을 보냈다. 요한 세베대를 제외하고, 아무도 이 방문을 알지 못했고,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부탁을 받았다. 룻은 아주 일찍 영적 의식이 든 때부터, 예수의 집안에서, 파란 많은 봉사, 죽음, 부활, 승천을 거치기까지, 땅에서 그의 사명의 신성함을 한결같이, 흔들리지 않고 믿은 유일한 사람이었고, 가장인 오라버니가 육체를 입고 가졌던 사명의 초자연적 성격을 결코 의심하지 않고 마침내 저 세상으로 갔다. 땅에 있던 그의 가족에 대하여 말하면, 그가 재판받고 버림받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벅찬 시련을 통해서 내내, 막내 룻은 예수에게 주요한 위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