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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개념

뉴징검다리 2010. 2. 10. 06:54

3. 하나님에 대한 개념

사도들의 대부분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이 논의를 귀담아 들었는데, 열두 사도는 그 날 밤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하여 예수에게 많이 물었다. 이 여러 가지 물음에 대한 주의 대답은 현대의 말투로 하면, 다음의 요약으로 최선으로 제시할 수 있다:

예수는 열둘을 가볍게 꾸짖었고, 그 말씀의 내용은 이렇다: 야웨 아이디어의 성장에 관계되는 이스라엘의 전통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 이론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을 모르는가? 다음에 주는 더 나아가서, 유대 민족의 발전 과정에 걸쳐서 개념의 진화에 관하여 사도들에게 가르쳤다. 하나님 아이디어가 성장한 다음 단계에 주의를 불러일으켰다:

1. 야웨시나이 씨족의 신. 원시 개념의 이었고, 모세가 더 높이,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수준으로 올려 놓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개념이 아무리 투박하든지, 또는 무슨 이름으로 그 신다운 성품을 상징하든지 상관 없이, 땅에 있는 아이들의 진정한 예배를 반드시 받아들인다.

2. 최고자.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이 개념을 멜기세덱아브라함에게 선포했고, 커지고 확대된 이 관념을 나중에 믿은 사람들이 이것을 살렘으로부터 멀리 옮겼다. 태양 숭배가 확고해졌기 때문에, 아브라함과 그 동생은 우르를 떠났으며, 멜기세덱이 가르친 엘 엘리욘최고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다. 이들이 가진 것은 복합된 하나님 개념이었고, 옛 메소포타미아 관념들과 최고자 교리의 혼합으로 이루어졌다.

3. 엘 샤다이. 이 초기 시절에 많은 히브리인이 엘 샤다이를 숭배했다. 에집트인이 가졌던 하늘의 하나님 개념이며, 나일 강의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에 이것을 배웠다. 멜기세덱의 시절이 오래 지난 뒤에, 이 세 가지 하나님 개념은 모두 한데 합쳐서 창조자인 , 즉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 교리를 형성했다.

4. 엘로힘. 아담의 시절부터 파라다이스 삼위 일체에 대한 가르침이 지속되었다. “태초에 하나님들이 하늘과 땅을 지으시니라” 주장함으로 성서가 어떻게 시작하는가 생각나지 않느냐? 이는 그 기록이 만들어졌을 때 한 분 속에 계신 세 하나님이라는 삼위 일체 개념이 우리 선조의 종교에 투입되었음을 가리킨다.

5. 최고의 야웨. 이사야의 때가 되어서 하나님에 대한 이 관념들은, 전능하고 동시에 온통 자비로운 우주의 아버지 개념으로 확대되었다. 진화하고 확대되는 이 하나님 개념은 우리 선조의 종교에서 모든 이전의 아이디어를 거의 갈아치웠다.

6.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임을 안다. 우리의 가르침이 마련해 주는 종교 안에서, 믿는 사람은 하나님아들이다. 이것이 하늘나라 복음(福音)의 좋은 소식이다. 아들아버지와 함께 공존하며,

파라다이스 신들의 성품과 봉사의 계시(啓示)는 하나님의 올라가는 아들들이 영원히 영적으로 진보하는 끝없는 시대를 통해서, 줄곧 확대되고 밝아질 것이다. 항상, 어느 시대에도, 어떤 인간이 참된 예배를 드리더라도―개인의 영적 진보에 관계되는 대로―그에 깃드는 영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드리는 경배로서 인식된다.

사도들은 이전 세대의 유대인 지성에서 하나님의 개념(槪念)의 성장을 이렇게 짚어 보는 말씀을 듣고서 받은 것보다 더 충격을 받은 적이 없었다. 너무 어리둥절해서 말문도 열 수 없었다. 예수 앞에서 말없이 앉아 있는 동안, 주는 말씀을 이었다: “너희가 성서를 읽었다면 이 진리를 알았으리라. ‘그리고 주의 노여움이 이스라엘에 대적하여 불이 붙었고, 너무 심해서, 가서 이스라엘유다의 인구(人口)를 세라 이르면서, 다윗이 저희를 대적하도록 움직였더라’ 하고 기록된 것을 사무엘에서 너희는 읽지 아니하였느냐? 이것은 이상하지 않았으니, 사무엘의 시절에 아브라함의 자손은 야웨가 선과 악을 모두 지어냈다고 정말로 믿었음이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유대인 개념이 확대된 뒤에, 후일에 어느 기록자가 이 사건들을 이야기했을 때 감히 악을 야웨의 탓으로 돌리지 못하였고, 그러므로 ‘그리고 사탄이스라엘에 대적하여 일어나서 다윗을 움직여 이스라엘의 인구를 세게 하였더라’하고 말하였느니라. 너희는 성서(聖書)에 그러한 기록들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개념이 어떻게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계속 성장했는가 뚜렷이 보임을 헤아릴 수 없느냐?

“이 확대되는 신성(神性) 개념들과 완전히 발걸음을 맞추어 신의 율법에 대한 이해가 성장한 것을 또 헤아렸어야 하느니라. 확대된 야웨의 계시가 있기 전 시절에 이스라엘의 자손이 에집트에서 나왔을 때, 십계명을 가졌고, 이것은 바로 시나이 산 앞에서 야영하던 시절 바로 전까지 저희의 율법으로 쓰였느니라. 이 십계명은 다음과 같았는지라:

“1. 주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니, 너희는 아무런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2. 녹여 부은 신들을 만들지 말라.

“3. 효소 없는 빵의 축제 지키기를 소홀히 하지 말라.

“4. 사람이나 가축의 모든 수컷 가운데 처음 난 것은 내 것이라, 주가 말씀하시니라.

“5. 엿새 동안 일해도 좋으나, 이렛날에 쉴지니라.

“6. 첫 열매의 축제와 연말에 거두는 축제 지키기를 거르지 말라.

“7. 효소 넣은 빵과 함께 어떤 희생물의 피라도 드리지 말라.

“8. 유월절 축제에 바친 희생물을 아침까지 남겨놓지 말라.

“9. 땅에서 첫 열매의 처음을 주 너희 하나님의 집으로 가져올지니라.

“10. 새끼를 어미의 젖 속에 삶지 말라.

“그리고 나서 시나이 산의 천둥과 번개 사이에서, 모세는 저희에게 새 십계명을 주었고, 너희는 모두 이것이, 확대되는 야웨라는 개념에 어울리게 더 가치 있는 말씀이라 인정하리라. 너희는 이 계명(誡命)들이 성서에 두 번 기록된 것을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아니하였느냐? 처음 경우에는 에집트로부터 구원받은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까닭이라고 지정되었고, 한편 나중의 기록에서 우리 선조의 진보하는 종교 관념은 창조의 사실이 안식일을 지키는 이유라 인정하는 것이라고 이것을 시정하기를 요구하였느니라.

“그리고 나서―이사야의 시절에 더 큰 영적 깨우침을 받아―이 부정적 십계명이 크고 긍정적인 사랑의 율법으로, 하나님을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

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으로 바뀌었음을 너희가 다시 한 번 기억하리라. 나도 또한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이 최상의 율법이 사람의 총 의무이니라.”

말씀을 마쳤을 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저마다 잠자러 갔다.

4. 플라비우스와 그리스 문화

플라비우스그리스 유대인이요,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이 개종된 자였고, 할례도 세례도 받지 않았다. 미술과 조각에서 아름다운 것을 크게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머무를 때, 그가 차지한 집은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이 집은 세계 여행할 때 여기저기 수집한 귀중한 보물(寶物)로 절묘하게 꾸며져 있었다. 처음에 예수를 집으로 초대하려고 생각했을 때, 이른바 이 우상들을 보고 주가 언짢아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예수가 집에 들어섰을 때, 집 여기저기에 우상(偶像)이라고 생각되는 물건들을 흩어놓은 것 때문에 꾸짖는 대신에, 예수는 수집 전체에 크게 흥미를 나타냈고, 플라비우스가 이 방 저 방 예수를 안내하고, 가장 좋아하는 조각들을 모두 보여 드리는 동안, 예수가 각 물건에 대하여 식견이 있는 질문을 많이 던져서 놀랍고 기뻤다.

주는 호감(好感)을 가지고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주인이 어리둥절한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므로 수집 전부를 둘러보기를 마치고 나서, 예수는 말했다: “내 아버지가 지으신 것과 사람의 예술적인 손으로 빚은 것의 아름다움을 네가 이해한다고 해서, 어찌하여 너는 훈계받기를 기대하느냐? 모세가 한때 우상과 거짓 신 섬기는 것을 퇴치하려고 애썼다고 해서, 어찌하여 품위 있고 아름다운 작품에 모두 눈살을 찌푸려야 하느냐? 너 플라비우스에게 이르노니, 모세의 자손들은 그를 오해하였고, 이제는 하늘과 땅에 있는 것들의 우상과 모양에 대한 그 금지조차 저희가 거짓 신으로 섬기느니라. 그러나 그 시절 어두운 지성들에게 모세가 그러한 제한을 가르쳤다 하더라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만물 위에 우주의 영 통치자로서 드러나는 오늘날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플라비우스야, 내가 선언하노니, 다가오는 하늘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이를 섬기지 말라, 저를 섬기지 말라’ 더 이상 가르치지 아니하리라. 이것을 삼가고 저것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명령에, 사람들이 이제 더 관심을 쏟지 못하리라. 그보다 모두가 한 가지 최고의 임무에 마음을 쓰리라. 사람의 이 임무는 두 가지 큰 특권에 나타나 있으니, 무한한 창조자, 파라다이스 아버지를 진지하게 섬기는 것과 동료 인간들에게 사랑으로 봉사를 베푸는 것이라. 네 몸을 사랑하는 것 같이 네가 이웃을 사랑하면, 너는 정말로 네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아느니라.

“내 아버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던 시대에, 모세가 우상을 물리치려 했던 시도는 정당화되었거니와 다가오는 시대에 아버지아들의 생애에서 드러나리라. 하나님의 이 새로운 계시는 영원히 창조자 아버지를 돌로 만든 우상이나 금은으로 만든 형상(形象)과 언제까지나 혼동할 필요가 없게 하리라. 이제부터, 총명한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그렇게 물질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파라다이스에 계신 아버지, 곧 만물과 모든 존재의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을 혼동하지 않고서 소중한 예술품을 즐겨도 좋으니라.”

플라비우스예수가 가르친 것을 다 믿었다. 이튿날 요단 강 건너에 베다니로 가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렇게 한 것은 예수의 사도들이 믿는 사람들에게 아직 세례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플라비우스예수를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고, 친구 60명을 불렀다. 이 손님들 가운데

다수가 다가오는 하늘나라의 메시지를 믿는 사람이 되었다.

5. 확신에 대한 강연

이 유월절 주간에 성전에서 예수가 하신 큰 설교 중의 하나는 말씀을 듣던 사람, 다마스커스에서 온 한 남자의 물음에 대답한 것이다. 이 사람은 예수에게 물었다: “하지만 랍비여, 하나님이 당신을 보냈는지,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이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외치는데 거기로 우리가 참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확실히 알리이까?” 그리고 예수는 대답했다:

“내 메시지와 내 제자들의 가르침에 관하여 말하면, 너희는 그 열매로 판단해야 하느니라. 우리가 영의 진리를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 영은 가슴 속에서 우리의 메시지가 진정함을 증언하리라. 하늘나라, 그리고 하늘의 아버지가 받아들임을 어떻게 네가 확신하는가에 관하여 말하면, 내가 묻건대, 너희 가운데 훌륭하고 마음이 친절한 어떤 아버지가, 집안에서 아들의 지위에 관하여, 또는 아버지의 마음 속에 안전히 사랑받는 위치에 있는가 아들이 걱정하게 만들거나 불안(不安)하게 두겠느냐? 땅에서 아버지인 너희가, 인간의 마음 속에서 자식들이 변치 않는 사랑을 받는 자리에 있는가 불안하도록 아이들 괴롭히기를 즐거워하느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믿는 아이, 영의 아이들이 하늘나라에서 저희의 위치를 의심하는 불안 속에 버려 두지 않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아버지로 받아들이면, 정말로 또 진실로,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가 아들일지언정, 영원하고 신다운 아들 신분에 관계되는 모든 일에 너희의 위치와 신분이 안전하니라. 너희가 내 말을 믿으면, 그로서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요, 이렇게 아버지를 믿음으로 하늘 시민 지위를 확실하게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면, 신의 나라에서 진보(進步)하는 영생을 얻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아니하리라.

최상의 영은 너희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손임을 너희 영에게 증언하리라.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하나님의 영한테서 태어났느니라. 영한테서 태어난 자는 누구나 몸 안에 모든 의심을 이길 힘을 가졌고, 이것이 모든 불확실성, 아니 너희의 믿음조차 이기는 승리이라.

“선지자 이사야가 이 시절을 이렇게 언급하였더라: ‘영이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쏟아질 때, 올바른 일이 언제까지나 평화와 고요와 확신이 되리라. 이 복음을 참으로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 아버지 나라의 영원한 자비와 영생으로 저희를 받아들인다고 내가 보증하리라. 그러면 이 메시지를 듣고 이 하늘나라 복음을 믿는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영생을 가졌느니라. 너희가 영에게서 태어났음을 온 세계에 증명하는 것은 너희가 성실하게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

듣고 있던 군중은 오랜 시간 예수와 함께 남아 있었고, 말씀을 묻고 위로를 주는 대답을 주의 깊게 들었다. 예수의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사도들도 용감해져서 더 큰 힘과 확신을 가지고 하늘나라 복음을 전파하였다. 예루살렘에서 이 체험은 열두 사도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이번에 그렇게 엄청난 군중과 처음 접촉했고 많은 귀중한 교훈을 배웠으며, 이것이 후일에 일하는 데 크게 도움되었음이 드러났다.

6. 니고데모와 이야기하다

플라비우스의 집에서 어느 날 저녁,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예수를 만나러 왔는데, 그는 유대산헤드린의 회원(會員), 부유하고 나이가 지긋한 회원이었다.

갈릴리 사람의 가르침에 관하여 많은 소문을 들었고, 그래서 어느 날 오후 예수가 성전 마당에서 가르치는 동안 말씀을 들으러 갔다. 예수가 가르치는 것을 들으러 자주 갔겠지만, 가르침에 참석한 사람들의 눈에 뜨일까 두려워했는데, 유대인 통치자들이 예수와 너무나 사이가 틀어져 있어서, 어떤 산헤드린 회원도 공개적으로 한편이 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니고데모는 바로 이 날 저녁에 은밀하게, 밤이 된 뒤에 예수와 만나려고 안드레와 주선하였다. 회견이 시작되었을 때, 베드로야고보요한플라비우스의 집 뜰에 있었지만, 나중에 모두 집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담화가 계속되었다.

니고데모를 접대하면서 예수는 아무런 특별한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 함께 이야기하면서, 아무런 타협이나 지나친 설득이 없었다. 남몰래 찾아온 사람을 내쫓으려 하지 않았고 빈정거리지도 않았다. 탁월한 방문자를 다루는 모든 일에 예수는 차분하고 진지하고 위엄이 있었다. 니고데모산헤드린의 공식(公式) 대표단이 아니었다. 예수를 만나려고 온 것은 전적으로 주의 가르침에 개인적으로 진지하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플라비우스가 인사를 시키고 나자, 니고데모는 말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생인 줄을 우리가 아오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어떤 보통 사람도 그렇게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니이다. 나는 다가오는 나라에 관하여 당신의 가르침을 더욱 알고 싶나이다.”

예수니고데모에게 대답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이르노니, 니고데모야, 사람이 하늘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러자 니고데모가 대답했다: “그러나 사람이 늙으면 어찌 다시 날 수 있나이까? 사람은 태어나려고 다시 어머니 자궁 속으로 들어갈 수 없나이다.”

예수는 말했다: “그런데도 내가 선언하노니, 사람이 영에게서 태어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체에게서 태어난 것은 육체요, 영에게서 태어난 것은 영이라. 그러나 네가 하늘로부터 나야 한다고 내가 말한 것에 놀라지 않아야 하느니라. 바람이 불 때,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지만―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바람을 보지 못하며, 영에게서 태어난 자마다 또한 그러하니라. 육체의 눈으로 사람은 영의 표현을 볼 수 있어도 그 영을 실제로 헤아려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이해하지 못하나이다―어찌 그럴 수 있나이까?” 예수가 말했다: “네가 이스라엘에서 선생이면서도 이 모든 것을 모르다니 그럴 수 있느냐? 그러면 오직 물질 세계의 명시(明示)를 알아보는 자들에게 이를 드러내는 것이 영의 실체들을 아는 자들의 의무가 되니라. 그러나 우리가 하늘의 진리를 너에게 이르면 네가 우리를 믿겠느냐? 니고데모야, 하늘로부터 내려온 자를, 아니 사람의 아들까지도, 네가 믿을 용기가 있느냐?”

니고데모는 말했다: “그러나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준비로서 나를 다시 만들 영을 어떻게 내가 미처 붙잡을 수 있나이까?” 예수가 대답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이 이미 네 안에 깃드시니라. 네가 위로부터 온 이 영의 인도하심을 받고자 하면, 오래지 않아 너는 영의 눈으로 보기 시작하겠고, 다음에 네가 사는 유일한 목적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리니, 영의 안내를 받은 진지한 선택으로 말미암아 네가 영에게서 태어나리라. 네 몸이 영에게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행복하게 태어났음을 그렇게 발견하고 나서, 일상 생활에서 너는 영의 풍부한 열매를 비로소 맺으리라.”

니고데모는 속속들이 진지했다. 깊이 감명을 받았지만 어리둥절해서 가 버렸다. 니고데모는 자아의 개발과 자제에서, 높은 도덕 성품 면에서도 완숙했다. 세련되었고, 자기 본위요, 이타심이 있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지혜롭고 사랑이 많은, 세상의 아버지의 안내와 인도함에 기꺼이 복종하는 것 같이, 어떻게 그의 뜻을 신성

아버지의 뜻에 복종시키는가, 그로서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 영원한 나라의 진보하는 상속자가 되는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하늘나라를 붙잡기에 충분한 믿음을 불러일으켰다. 산헤드린 동료들이 심문하지도 않고 예수를 정죄하려 했을 때 그는 미약하게 항의(抗議)했고, 나중에 대부분의 제자들이 주가 마지막으로 고통받고 죽는 장면으로부터 무서워 달아났을 때에도,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신앙을 용감하게 인정하고 예수의 시체를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