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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으로 하나됨

뉴징검다리 2010. 2. 10. 06:57

5. 영적으로 하나 됨

아마투스에서 모든 저녁 회의에서 가장 중대한 회의는 영적 통일(統一)의 토론과 관계되었다. 야고보 세베대가 물었다, “주여, 어떻게 우리가 사물을 똑같이 보기를 배우고, 그렇게 하여 우리들끼리 더 조화가 되겠나이까?” 예수는 이 질문을 듣고, 정신이 아주 동요되었고, 너무 그래서 대답했다. “야고보야, 야고보야, 너희가 모두 사물을 똑같이 보아야 한다고 언제 너희에게 가르치더냐? 필사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독창성 있고 자유로운 개별 일생을 살 수 있게 할 목적으로, 영적 해방을 선포하려고 내가 세상으로 왔노라. 자유로운 성격과 영적 독창성을 희생해서 사회의 조화(調和)와 형제의 평화를 사들이기를 내가 바라지 않노라. 너희, 내 사도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영적으로 하나 되는 것이라―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진심으로 행하려고 너희가 뭉쳐 헌신하는 기쁨 속에서 너희가 그것을 체험할 수 있느니라. 영적으로 같기 위해서 사물을 똑같이 보거나, 같이 느낄 필요가 없고, 같이 생각할 필요도 없느니라. 영적 통일은 너희 각자가 하늘 아버지의 영 선물의 깃드심을 받고, 그에 점점 더 지배된다는 의식으로부터 얻느니라. 너희 사도들의 조화는 각자가 가진 영적 희망의 기원·성품·운명이 동일(同一)하다는 사실로부터 생겨나야 하느니라.

“이 방법으로 완전히 하나된 영의 목적과 이해를 너희가 체험할까 하나니, 그것은 너희에게 깃드는 파라다이스 영들 각자의 신분을 서로 의식함으로부터 생겨나느니라. 지적 사고(思考), 기질적 느낌, 사회 행동을 나타내는 개별적 태도가 최대한으로 다양한 마당에, 너희가 이 심오한 영적 통일을 전부 누릴까 싶으니라. 너희의 성격은 신선하게 다채롭고 뚜렷이 다를지 모르지만, 한편 신을 예배하고 형제끼리 사랑하는 영적 성품과 열매가 아주 통일되어서, 너희의 생애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이 이 영(靈) 신분과 혼(魂)의 통일성을 분명히 인식하리라. 너희가 나와 함께 있었고, 이로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어떻게 적절히 행하는가 배웠다는 것을 저희가 인식하리라. 너희 자신의 독창적 지성·육체·혼 자질의 기법에 따라서 그런

봉사를 베푸는 동안에도, 너희는 하나님께 봉사하는 데 하나됨을 이룩할 수 있느니라.

“너희의 영이 하나 됨은 두 가지를 암시하고, 개별 신자의 생활에서 두 가지가 조화됨이 언제나 발견되리라. 첫째로, 너희는 일생의 봉사를 위하여 공통된 동기를 가지느니라. 무엇보다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 행하기를 너희 모두가 바라느니라. 둘째로, 모두 공통된 존재 목표를 가지느니라. 너희는 모두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찾으려 하고, 그로서 너희가 그와 같이 되었음을 우주에게 증명하느니라.”

예수는 열둘을 훈련하는 동안 여러 번 이 주제로 돌아갔다. 심지어 착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종교적 해석에 따라서 그를 믿는 사람들이 독단적이 되고 표준화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거듭하여 말했다. 하늘나라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안내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그는 신조(信條)를 작성하고 전통 세우는 것을 막으려고 사도들에게 여러 번 경고하였다.

6. 아마투스에서 마지막 주

아마투스에서 마지막 주말이 가까워 오자 열심당원 시몬예수에게 어느 테헤르마라는 사람을 데려왔는데, 그는 다마스커스에서 사업하는 페르시아인이었다. 테헤르마예수의 소문을 들은 적이 있고 만나려고 가버나움으로 왔는데, 거기서 예수가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요단 강으로 가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를 찾으러 나섰다. 안드레테헤르마시몬에게 교육을 받도록 보냈다. 불은 눈에 보이는 바 순전한 성자의 유일한 상징이라고 테헤르마가 힘들여 설명했지만, 시몬은 그 페르시아인을 “배화자(拜火者)”로 보았다. 예수와 이야기한 뒤에, 페르시아인은 가르침을 듣고 설교를 들으려고 며칠 남아 있겠다는 뜻을 표시했다.

열심당원 시몬예수만 따로 있을 때, 시몬은 주에게 물었다: “어째서 나는 그를 설득할 수 없었나이까? 어째서 그는 나에게 그토록 저항하고 당신의 말씀은 그토록 쉽게 들었나이까?” 예수는 대답했다: “시몬아, 시몬아, 구원을 찾는 자들의 마음에서 무엇을 제거(除去)하려는 모든 노력을 삼가라고, 몇 번이나 가르쳤느냐? 다만 배고픈 이 혼들 속으로 무언가 주입(注入)하려고 수고하라, 얼마나 자주 일렀느냐?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라. 그러면 하늘나라의 큰 생생한 진리가 금방 모든 심각한 잘못을 몰아내리라. 너희가 필사 인간에게 하나님아버지라는 좋은 소식을 제시했을 때, 그가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더욱 쉽게 납득시킬 수 있느니라. 그렇게 하고 나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자에게 너희는 구원의 빛을 가져왔느니라. 시몬아, 사람의 아들이 처음에 너희에게 왔을 때, 모세와 선지자들을 비난(非難)하고 새롭고 더 좋은 생명의 길을 선포하더냐? 아니라. 너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요, 너희 조상이 겨우 일부만 본 것의 완전하게 된 모습을 보여 주려고 내가 왔노라. 그러니 시몬아, 가서 하늘나라를 가르치고 전도하여라. 네가 하늘나라 안에 한 사람을 안전하고 확실하게 들여보냈을 때, 그런 사람이 질문을 가지고 오면, 그 때가 신성한 하늘나라 안에서 그 혼의 점진적 발전과 상관 있는 가르침을 나누어 줄 때이니라.”

이 말씀에 깜짝 놀랐지만, 시몬예수가 가르친 대로 하였고, 페르시아테헤르마는 하늘나라에 들어간 자들의 무리 가운데 끼었다.

그 날 밤, 예수는 하늘나라의 새 생활에 관하여 사도들에게 강론하였다. 그 일부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너희는 다시 태어나느니라. 오직 육체로부터 난 자들에게 영의 깊은 일을 가르칠 수 없느니라. 영의 높은 길을 사람

들에게 가르치려고 애쓰기 전에, 먼저 저희가 영에게서 태어났는가 보라. 너희가 먼저 성전으로 사람들을 데려가기까지, 성전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일에 손대지 말라.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이 아들이라는 교리를 너희가 강론하기에 앞서, 사람들을 하나님께, 그리고 하나님아들로서 소개하라. 사람들과 다투지 말라―언제나 참으라. 그것은 너희의 나라가 아니요, 너희는 대사일 뿐이라. 다만 가서 외치라: 이것이 하늘나라이니―하나님은 너희 아버지요, 너희는 그의 아들이라, 너희가 이것을 진심으로 믿으면, 이 좋은 소식이 너희의 영원한 구원이라.”

사도들은 아마투스에서 머무르는 동안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요한의 제자들을 다루는 것에 대하여 예수가 아무 제안도 하려 하지 않아서 무척 실망했다. 중요한 세례 문제에서도 예수는 겨우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요한은 정말로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하늘나라로 들어갈 때 너희는 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7. 요단 강 건너 베다니에서

2월 26일에, 예수와 사도들, 그리고 따르는 큰 무리가 페레아 지방에서 베다니에 가까운 여울까지 요단 강으로 내려왔는데, 여기는 요한이 처음으로 다가오는 하늘나라를 선포한 장소이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4주 동안, 예수는 사도들과 함께 여기에 남아서 가르치고 전도하였다.

요단 강 건너, 베다니에서 머무르던 둘째 주에, 예수는 사흘 동안 쉬려고 베드로야고보요한을 강 건너 산에, 또 예리고 남쪽으로 데리고 갔다. 주는 하늘나라에 대하여 많은 새로운 상급 진리를 이 세 사람에게 가르쳤다. 여기에 기록할 목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이 가르침을 다시 정리하고 분류하겠다:

제자들이 하늘나라의 좋은 영 실체들을 맛보았은즉, 사람들이 그들의 생애를 봄으로써, 하늘나라를 의식하게 되고, 따라서 신자들에게 하늘나라의 길에 관하여 물을 생각이 나도록 그들이 세상에서 살기를 바란다는 것을 예수는 분명히 밝히려고 애썼다. 진리를 진지하게 찾는 모든 그러한 사람은, 믿음 선물이 담긴 기쁜 소식을 언제나 반갑게 들으며, 그 선물은 영원하고 신성한 영 실체들이 있는 하늘나라로 들어가기를 보장한다.

하늘나라 복음을 가르치는 모든 선생의 유일한 일거리는 개별 인간에게 하나님아버지임을 드러내는 것―이 개별 인간이 아들임을 의식하도록 인도하는 것, 다음에 바로 그 사람을 하나님께 믿음의 아들로서 내놓는 것임을 인식시키려고 애썼다. 이 두 가지 필수 계시(啓示)는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정말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었다. 예수의 종교는 땅에서 자신 수여 생명을 사는 데 전적으로 바탕을 두었다. 예수는 이 세상을 떠났을 때, 개인의 종교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아무런 책이나 율법이나, 기타 형태의 인간 조직을 남겨놓지 않았다.

예수는 그가 사람들과 개인적이고 영원한 관계를 세우려고 왔고, 이것이 언제까지나 모든 기타 인간 관계에 우선해야 한다고 분명히 설명했다. 가까운 이 영적 친교는 모든 민족 사이에서, 노소(老少)와 사회 조건을 불문(不問)하고,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들에게 약속한 유일한 상은, 이 세상에서―영적 기쁨과 신(神)과 가지는 교통이요, 다음 세상에서―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신성한 영 실체들의 진보 속에서 얻는 영생(永生)이었다.

하늘나라를 가르치는 데 제일 중요한 두 가지 진리라 부른 것을 크게 강조했는데, 믿음으로,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요, 아울러 진리를 진지하게 인식함으로 인간의 해방을 얻는다, “너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

라” 하는 혁신적 가르침이었다. 예수는 육체를 입고 나타난 그 진리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돌아간 뒤에 자녀들 모두의 가슴 속에 진리의 영을 보내리라 약속했다.

주는 땅에서 한 시대 전체를 위하여 진리의 본질을 이 사도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그들은 가르침을 귀담아들었지만, 흔히 그 말씀은 실제로 다른 세계들에 영감을 주고 교화시키려고 의도(意圖)한 것이었다. 그는 인생을 사는 새롭고 독창적인 계획을 본보기로 보였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정말로 유대인이었지만, 이 땅의 한 필사자로서 모든 세계를 위하여 일생을 살았다.

하늘나라의 계획이 펼쳐질 때 아버지가 인식되는 것을 보장하려고 예수는 “지상의 위대한 사람들”을 일부러 무시(無視)했다고 설명했다. 가난한 자들과 함께 일을 시작했고, 이들은 이전 시대에 대부분의 진화 종교가 아주 소홀히 했던 바로 그 계급이었다. 그는 아무도 업신여기지 않았다. 그의 계획은 세계적이었고, 아니 우주 규모이기까지 했다. 이런 선언에서 아주 대담하고 힘들여 말했기 때문에, 베드로야고보요한조차 예수가 아마도 제 정신이 아니라 생각할 유혹을 받았다.

땅에 있는 몇 사람을 위하여 모범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우주 전체에 두루, 모든 세계에, 모든 민족을 위하여 인생의 표준을 세우고 보이려고 이 수여 사명을 띠고 왔다는 진실을 이 사도들에게 가볍게 전하려 하였다. 이 표준은 가장 높은 완전에, 아니 우주의 아버지의 최종 선(善)에 이르기까지 접근하였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의 말씀의 뜻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그는 선생, 곧 영적 진리를 물질 지성에게 제시하려고 하늘에서 파송된 선생으로 활동하려고 왔다고 선언했다. 엄밀히 말해서, 그렇게 했다. 그는 선생(先生)이요, 설교자가 아니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베드로예수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설교자였다. 예수의 설교는 마음을 끄는 웅변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성격 때문에 무척 힘이 있었다. 예수는 사람의 혼에게 직접 말씀하였다. 사람의 영을 가르치는 선생이었지만, 지성을 통해서 그러했다. 그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다.

이 기회에 예수베드로야고보요한에게 땅에서 그가 하는 일은 어떤 면에서 “하늘에 있는 동료”가 부과한 명령에 제한을 받는다고 털어놓았는데, 이것은 자신 수여에 앞서 파라다이스이마누엘이 준 지침을 언급한다. 아버지의 뜻, 오직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고 왔다고 일러 주었다. 진심으로 한 가지 목적에 이렇게 자극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악이 그를 언짢게 만들지 않았다.

사도들은 예수의 꾸밈없는 친절을 비로소 깨닫고 있었다. 비록 가까이하기 쉬운 분이었어도, 주는 언제나 모든 인간 존재에 기대지 않고, 인간 존재를 초월하여 살았다. 한 순간이라도 결코 어떤 순전히 인간적 영향에 지배를 받거나, 허약한 인간 판단에 지배되지 않았다. 대중의 의견(意見)을 거들떠보지 않았고 칭찬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멈추어서 오해를 밝히거나 왜곡을 분개하는 일이 드물었다. 결코 아무에게도 조언을 요구하지 않았고, 기도를 부탁하지도 않았다.

예수가 시작부터 끝을 보는 듯한 것에 야고보는 놀랐다. 주는 놀란 듯이 보이는 적이 드물었다. 결코 흥분하거나 답답해하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결코 아무에게도 사과하지 않았다. 때때로 슬퍼했지만, 결코 낙심하지 않았다.

모든 신다운 자질을 가졌는데도, 결국은 그가 사람이라는 것을 요한은 더욱 뚜렷이 인식했다. 예수는 사람들 사이에 한 사람으로서 살았고,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다룰 줄 알았다. 사생활에서 아주 인간다웠고, 그래도 아무 잘못이 없었다. 언제나 이기심이 없었다.

베드로야고보요한은 비록 예수가 이 기회에 하신 말씀을 별로 많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품위 있는 말씀은 가슴 속에 남아 있었고, 십자가 처형과 부활이 있은 뒤에 솟아 나와서, 후일에 베푼 봉사를 부유하고 기쁘게 하였다. 이 사도들이 주의 말씀을 완전히 알아듣지 못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니, 그가 새 시대의 계획을 그들에게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8. 예리고에서 일하다

요단 강 건너 베다니에서 4주 머무르는 동안 계속, 주마다 몇 번 안드레는 사도 쌍들이 하루나 이틀 동안 예리고로 올라가라고 배치하곤 하였다. 요한예리고에 많은 신자를 거느리고 있었고, 그 대다수가 예수와 사도들의 더 진보된 가르침을 환영하였다. 이번 예리고 방문에서, 사도들은 아픈 자들을 보살피라는 예수의 지시를 비로소 더 구체적으로 따랐다. 그 도시에서 집집마다 찾아보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모두 위로하려고 애썼다.

사도들은 예리고에서 대중을 상대로 얼마큼 일했지만, 노력은 주로 좀더 조용하고 개인적인 성질의 것이었다. 하늘나라의 좋은 소식은 아픈 사람들에게 매우 위로가 된다, 메시지가 고통받는 자들에게 치유(治癒)하는 힘을 지녔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리고에서 열두 사도에게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고 고통받는 자들을 보살피라는 예수의 명령이 처음으로 충만하게 수행되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예리고에서 멈추었고, 예수와 회담하려고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온 대표단이 그들을 따라잡았다. 사도들은 여기서 하루만 보내려고 계획했지만, 동부에서 진리를 찾는 이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예수는 그들과 함께 사흘을 보냈고, 그들은 하늘나라의 새 진리를 알고서, 흐뭇한 마음으로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서 사방에 집으로 돌아갔다.

9.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나다

3월의 마지막 날, 월요일에, 예수와 사도들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파른 여행 길에 올랐다. 베다니나사로예수를 만나려고 요단 강에 두 번 내려온 적이 있었고, 예루살렘에서 머무르기를 바라는 한, 나사로와 그 누이들과 함께, 베다니에서 주와 사도들이 본부를 차리도록 만사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요단 강 건너 베다니에 남아서 군중을 가르치고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예수나사로의 집에 다다랐을 때 오직 열두 사도가 그를 동반하였다. 여기서 예수와 사도들은 닷새 동안 머물렀고, 유월절을 지내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 전에 쉬고 원기를 회복했다. 마르다마리아의 생애에서, 주와 사도들을 나사로의 집에 모시는 것은 큰 사건이었고, 두 여인은 이들의 시중을 들 수 있었다.

4월 6일, 일요일 아침에, 예수와 사도들은 예루살렘으로 내려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주와 열두 사도 모두가 함께 거기에 있었다.

제 142 편

예루살렘에서 유월절을 보내다

4월에 예수와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일했고, 저녁마다 도시 바깥으로 나가서 베다니에서 밤을 지냈다. 예수 자신은 예루살렘플라비우스의 집에서 주마다 하루나 이틀 밤을 보냈는데, 그는 그리스 식을 따르는 유대인이었고, 그 집으로 많은 탁월한 유대인이 몰래 예수와 회견하러 왔다.

예루살렘에서 첫째 날에 예수는 옛날 그의 친구 안나스를 찾아보았는데, 그는 한때 대사제였고, 세베대의 부인 살로메의 친척이었다. 안나스예수와 그의 가르침에 대하여 소문을 듣던 터였고, 예수가 대사제의 집을 찾았을 때 안나스는 크게 거리끼며 접대했다. 안나스가 냉담함을 알아차렸을 때, 예수는 즉시 떠났고, 가면서 말했다: “두려움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것 중에 으뜸이요, 자만은 사람의 큰 약점이라. 당신은 기쁨과 자유를 깨뜨리는 이 두 가지에 매여서 자신을 배반하려는가?” 그러나 안나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안나스가 사위와 함께 사람의 아들을 재판하는 자리에 앉을 때까지, 주는 다시 그를 만나지 않았다.

1. 성전에서 가르치다

이 달 내내 예수나 사도들 가운데 하나가 성전(聖殿)에서 날마다 가르쳤다. 유월절 군중이 너무 많아서 성전에서 행해지는 교육에 들어갈 수 없을 때, 사도들은 신성한 구역 바깥에서 가르치는 여러 집단을 운영했다. 전한 메시지의 요점은 이와 같았다:

1.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2. 하나님이 아버지임을 믿음으로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도 좋으며,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3. 하늘나라 안에서는 사랑이 생활 규칙이다―하나님께 더할 나위 없이 헌신하고, 한편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4.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는 것, 사람의 사생활에서 영의 열매를 맺는 것이 하늘나라 율법이다.

유월절을 축하하려고 온 군중은 예수의 이 가르침을 들었고, 수백 명이 좋은 소식을 듣고 기뻐하였다. 대사제와 유대인 통치자들은 예수와 사도들에 대하여 많이 염려하고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자기들끼리 의논했다.

성전 안과 그 근처에서 가르치는 것 외에, 사도와 기타 신자들은 유월절 군중 사이에서 개인적으로 많은 일을 하는 데 바빴다. 관심을 가진 이 남녀들은 이 유월절 경축 행사(行事)로부터 예수가 준 메시지의 소식을 로마 제국의 가장 먼 곳까지, 또한 동부까지 가지고 갔다. 이 때부터 하늘나라의 복음이 바깥 세계에 비로소 퍼졌다. 예수의 일은 이제 더 팔레스타인에 국한될 것이 아니었다.

2. 하나님의 진노

예루살렘에는 유월절 축제에 어떤 야곱이라는 사람이 와 있었는데, 크레테에서 온 부유한 유대인 상인이었고, 안드레한테 가서 예수를 사사롭게 만나기를 요청했다. 안드레는 이튿날 저녁에 플라비우스의 집에서 예수와 이 비밀 회담을 마련했다. 이 사람은 주의 가르침을 알아들을 수 없었고, 그가 온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더욱 자세히 묻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야곱예수에게 말했다: “그러나 랍비여, 모세와 옛 선지자들은 야웨가 질투하는 하나님, 크게 노여워하고 불 같이 성내는 하나님이라고 우리에게 이르나이다. 선지자들은 야웨가 행악자들을 미워하고 그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게 복수한다고 말씀하나이다. 당신과 제자들은 하나님이 친절하고 동정심 있는 아버지요, 모든 사람을 무척 사랑하사, 아주 가까이 왔다고 당신이 선포하는 이 새 하늘나라로 저희를 반가이 맞이하리라 우리에게 가르치나이다.”

야곱이 말을 마쳤을 때, 예수는 대답했다: “야곱아, 너는 옛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잘도 진술하였도다. 저희는 그 시절의 빛에 따라서 저희 세대의 아이들을 가르쳤느니라. 파라다이스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변함이 없느니라. 그러나 그의 성품에 대한 개념은 모세의 시절부터 아모스의 시절을 거쳐, 선지자 이사야의 세대에 이르기까지도, 확대되고 성장하였느니라. 이제, 새 영광 속에서 아버지를 드러내고, 그의 사랑과 자비를 모든 세계에, 만민에게 보이려고 내가 육체를 입고 왔노라. 이 하늘나라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활기와 선의(善意)를 주는 메시지와 함께 세상에 퍼짐에 따라서, 모든 국가 집단 사이에 개선되고 개량된 관계가 생기리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아버지와 아이들은 더욱 서로 사랑하고, 이처럼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땅에서 사는 자녀들을 사랑하심을 더욱 낫게 이해하게 되리라. 야곱아, 착하고 참된 아버지는 집안 전체를―한 가족으로서―사랑할 뿐 아니라, 또한 각 개별 구성원을 참으로 사랑하고 애정으로 보살피시느니라.”

하늘 아버지의 성품에 대하여 상당히 토론이 있은 뒤에, 예수는 멈추어 말했다: “야곱아, 너는 여러 아이의 아버지인즉, 내 말이 진실함을 잘 아느니라.” 야곱이 말했다: “하지만, 주여, 내가 여섯 아이의 아버지라고 누가 당신께 일렀나이까? 나에 관하여 이것을 어찌 아셨나이까?” 주는 대답했다. “아버지아들은 만사를 안다 하면 충분하니, 정말로 저희가 만물을 보는 까닭이라. 땅에서 아버지로서 네 아이들을 사랑하므로, 하늘 아버지너를 사랑함을―아브라함의 모든 자손 뿐 아니라, 너를, 너 개인의 혼을 사랑하심을 이제 너는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느니라.”

예수는 말씀을 이었다: “네 아이들이 아주 어리고 미숙할 때, 아이들을 꾸짖어야 할 때, 아이들은 아버지가 성이 나 있고 격노(激怒)하고 있다고 돌이켜볼지 모르느니라. 아이들이 미숙하여, 멀리 내다보고 바로잡는 아버지의 사랑을 헤아리도록 그 벌을 넘어서 앞을 볼 수 없으나, 바로 이 아이들이 성장한 남녀가 될 때, 아버지에 대하여 옛날에 가졌던 그릇된 개념에 집착하는 것이 어리석지 않겠느냐? 어른으로서 저희는 옛날에 받은 이 모든 징계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이제 헤아려야 하지 않느냐? 여러 세기가 지남에 따라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참된 성품과 사랑하는 성품을 인류가 더 낫게 이해해야 하지 않느냐? 너희가 모세와 선지자들이 본 대로 하나님을 보기를 고집한다면, 영적으로 깨우치는 연속된 세대들로부터 너희가 무슨 이득을 얻느냐? 너에게 이르노니, 야곱아, 너는 이 시간의 밝은 빛 아래서, 앞에 간 자들이 본 것과 전혀 다르게 아버지를 보아야 하며, 이렇게 아버지를 보는

즉, 그러한 자비로운 아버지가 다스리는 하늘나라로 들어감을 기뻐하고, 아버지 사랑의 뜻이 이제부터 너의 일생을 지배하기를 구해야 하느니라.”

야곱은 대답했다: “랍비여, 내가 믿나이다. 나를 아버지의 나라로 인도하시기를 바라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