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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

뉴징검다리 2010. 2. 10. 07:49

제 135 편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은 기원전 7년 3월 25일에, 그 전 해 6월에 가브리엘엘리자벳에게 한 약속에 따라서 태어났다. 다섯 달 동안 엘리자벳가브리엘이 찾아온 것을 비밀로 지켰다. 엘리자벳이 이야기했을 때, 남편 사가리아는 크게 불안해하였고, 요한이 태어나기 약 6주 전에 특별한 꿈을 꾸고 난 뒤에야 아내의 이야기를 충분히 믿었다. 가브리엘엘리자벳을 방문한 것과 사가리아의 꿈을 제쳐 놓고, 세례자 요한의 출생에 연결되어 아무런 특별하거나 초자연적인 일이 없었다.

여드렛날에 유대인의 풍습에 따라서 요한은 할례를 받았다. 예루살렘에서 6.4킬로미터쯤 서쪽에, 그 시절에 유다 시로 알려진 작은 마을에서, 날마다, 해마다, 보통 아이로서 자랐다.

요한의 어린 시절 초기에 있었던 가장 중대한 일은, 부모를 동반해서, 예수나사렛 가족을 찾아본 것이었다. 이 방문은 기원전 1년 6월에 일어났고, 이 때 여섯 살이 조금 넘었다.

나사렛에서 돌아온 뒤에, 요한의 부모는 소년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시작했다. 이 작은 마을에는 아무런 회당 학교가 없었다. 그러나 사가리아는 사제였기 때문에 교육을 썩 잘 받았고, 엘리자벳은 보통 유대 여인보다 훨씬 낫게 교육을 받았다. “아론의 딸들”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그 여자 또한 사제 집안이었다. 요한이 외아들이어서, 그들은 정신 및 영적 훈련에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사가리아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잠깐만 근무했고, 그래서 아들을 가르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다.

사가리아엘리자벳은 작은 농장이 있었고, 거기서 양을 길렀다. 이 토지에서 도저히 생계를 이을 수 없었지만, 사가리아는 사제에 바쳐진 성전 기금(基金)으로부터 정기 수당을 받았다.

1. 요한이 나지르인이 되다

요한은 열 네 살에 졸업하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지만, 부모는 이 해가 정식으로 나지르인의 서약을 하기에 적당한 해라고 정했다. 따라서 사가리아엘리자벳은 아들을 아래로, 사해(死海) 가장자리에 엥게디로 데려갔다. 여기는 나지르인 단체의 남쪽 본부였고, 거기서 그 아이는 일생토록 이 계급으로, 공식으로 엄숙하게 가입하였다. 이 예식이 있고 나서, 또 모든 취하는 음료를 삼가고, 머리를 기르고, 죽은 자 만지기를 삼가겠다는 서약이 있은 뒤에, 그 가족은 예루살렘으로 진행했고, 거기서 성전 앞에서 요한나지르인 서약을 하는 자들에게 요구되는 헌물 바치는 일을 마쳤다.

요한은 눈부신 선구자들, 삼손과 선지자 사무엘에게 행해졌던, 바로 그 일생의 서약을 하였다. 종신(終身) 나지르인은 성스럽게 바치고 거룩한 인물이라고 간주되었다. 유대인들은 대사제와 거의 가깝게 존경심과 숭배를 가지고 나지르인을 보았

으며, 이것은 이상하지 않았는데, 일생토록 몸을 바친 나지르인들이, 대사제들을 제외하고, 성전에서 지성소(至聖所)에 들어가도록 유일하게 허락받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요한예루살렘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의 양을 쳤고, 자라서 고귀한 인격을 가진 강한 사람이 되었다.

열 여섯 살이 되었을 때, 엘리야에 관하여 글을 읽은 결과로, 요한갈멜 산의 선지자에게 크게 감명(感銘)을 받았고, 그 옷 스타일을 채택하기로 결심하였다. 그 날부터 요한은 언제나 가죽 허리띠를 띠고 털 있는 옷을 입었다. 열 여섯에 키가 1.8미터 넘었고 거의 완전히 자랐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과 특이한 옷 모습 때문에, 정말로 그림 같은 소년이었다. 그 부모는 이 외아들, 약속의 아이이자 일생의 나지르인한테서 큰 일을 기대했다.

2. 사가리아의 죽음

몇 달 동안 앓고 난 뒤에, 사가리아는 서기(西紀) 12년 6월에 죽었고, 이 때 요한은 열 여덟이 갓 넘었다. 나지르인 서약이 자신의 집안에서도 죽은 자와 접촉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크게 난처한 때였다. 비록 죽은 자 때문에 몸을 더럽히는 것에 관하여 서약(誓約)했던 제한을 따르려고 애쓰기는 했어도, 요한나지르인 계급의 요구 사항에 전적으로 복종했는가 의심이 들었다. 따라서, 아버지가 묻힌 뒤에, 예루살렘으로 가서, 거기서 여인들 마당의 나지르인 구석에서 정화(淨化)에 요구된 희생물을 바쳤다.

이 해 9월에 엘리자벳요한마리아예수를 찾아보려고 나사렛으로 여행하였다. 요한은 일생의 일을 시작하려고 거의 작정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예수의 말뿐 아니라 모범 때문에, 요한은 집으로 돌아가서 어머니를 돌보고, “아버지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도록 훈계를 받았다. 이 즐거운 방문이 끝났을 때, 예수마리아에게 작별을 알린 뒤, 요단 강에서 예수에게 세례 주는 사건이 있기까지, 요한예수를 다시 보지 못했다.

요한엘리자벳은 집으로 돌아가서 앞날을 위하여 비로소 계획을 세웠다. 성전 기금으로부터 받을 사제의 수당(手當)을 요한이 받기를 거절했으니까, 2년이 지날 무렵에, 집을 거의 잃다시피 했다. 그래서 양 떼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작정하였다. 따라서, 요한은 스무 살이 되던 해 여름에, 헤브론으로 옮겨 갔다. 이른바 “유대의 황무지”에서, 엥게디에서 사해(死海)로 들어가는 큰 물줄기의 가지에, 어느 시냇물을 따라서, 요한은 양을 쳤다. 엥게디 촌은 종신(終身) 및 시한부로 헌신하는 나지르인뿐 아니라, 수많은 금욕하는 다른 목축자들을 포함했는데, 이들은 이 지역에서 가축 떼와 함께 모여서 나지르인 단체와 사귀었다. 그들은 양을 길러서, 또 부유한 유대인들이 그 계급에게 준 선물로, 먹고 살았다.

시간이 지나자, 요한헤브론으로 돌아가는 일이 뜸해졌고, 한편 엥게디로 빈번하게 찾아갔다. 그는 대다수의 나지르인과 너무 온통 달랐기 때문에, 그 단체와 완전히 사귀기가 어려움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엥게디 촌이 인정하는 지도자요 우두머리인 아브너를 무척 좋아했다.

3. 목자의 생활

이 작은 시냇물의 골짜기를 따라서 요한은 돌 오두막과 밤을 위한 울타리를 열

둘 이상 지었고, 이것은 쌓아 놓은 돌로 이루어졌다. 그 안에서 양과 염소 떼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었다. 목동으로 지내는 요한의 생활은 생각할 시간을 상당히 주었다. 그는 베스주르의 고아(孤兒) 소년 에즈다와 많이 이야기했다. 어떤 면에서 이 아이를 양자(養子)로 삼았고, 안식일 예배를 위하여 엥게디로 내려갔을 때 뿐 아니라, 어머니를 만나고 양을 팔려고 헤브론으로 여행 갔을 때, 에즈다는 양 떼를 돌보았다. 요한과 그 소년은 무척 검소하게 살았고, 양고기, 염소 젖, 야생 꿀, 그 지역의 먹는 메뚜기 따위를 먹고 살았다. 이 정규 식사는 때때로 헤브론엥게디에서 가져온 식량으로 보충되었다.

엘리자벳요한에게 팔레스타인과 세상일에 대하여 소식을 알려 주었으며, 옛 체제가 막을 내리는 때가 급히 다가오고 있다, 그가 새 시대, “하늘나라”가 가까이 다가옴을 알리는 사자가 되리라는 확신은 자꾸 더 깊어졌다. 이 거친 목자는 다니엘 선지(先知)가 쓴 글을 무척 좋아했다. 다니엘이 큰 우상을 묘사한 것을 1천 번 읽었는데, 사가리아는 이것이 바빌론으로부터 시작하여, 페르시아, 그리스, 마침내 로마까지, 세계의 열강들의 역사를 대표한다고 일러 주었다. 로마가 다국어를 쓰는 그런 민족과 종족들로 구성되어서, 요한로마가 결코 강하게 결속되고 굳게 단결된 제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다.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로마시리아, 에집트, 팔레스타인, 기타 여러 지방으로 나누어졌다고 믿었다. 그는 더 읽었다: “이 왕들이 있는 시절에 하늘의 하나님이 결코 멸망하지 아니할 나라를 세우리라. 이 나라는 다른 민족에게 맡겨지지 않겠으나, 이 모든 나라를 산산조각 부수고 삼켜 버릴지며, 그 나라는 영원토록 서리라,” “그에게 영토와 영화(榮華)와 나라를 주어서, 모든 민족과 나라와 언어가 그를 섬길지니라. 그의 영토는 영원한 영토요, 사라지지 아니하며 그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아니하리라.” “나라와 영토, 온 하늘 밑에 있는 나라의 위세를 최고자의 성자(聖者)들의 민족에게 주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모든 영토가 섬기고 복종할지니라.”

요한예수에 관하여 부모한테서 들은 것과 성서(聖書)에서 읽은 이 구절들이 일으킨 혼란에서 결코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다니엘에서 읽었다: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으니, 보라, 사람의 아들과 같은 자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왔고, 그에게 통치권과 영화와 나라가 주어졌느니라.” 그러나 선지자의 이 말씀은 부모가 가르쳐 준 것과 조화되지 않았다. 열여덟 살에 방문했을 때, 예수와 나눈 이야기도 성서의 이 말씀과 맞지 않았다. 이런 혼란이 있었는데도, 온갖 혼란을 통해서 내내, 먼 사촌 나사렛 예수가 참 메시아라는 것, 다윗의 왕좌에 앉으려고 왔다는 것, 자기(요한)는 그가 미리 보낸 사자(使者)요 으뜸가는 지지자가 되리라고 어머니는 확신을 주었다.

로마의 악덕 및 사악함, 제국의 방탕과 도덕적 빈곤에 대하여 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헤롯 안티파스유대 총독(總督)들의 악행에 관하여 아는 것으로부터, 요한은 시대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을 생각이 있었다. 거칠고 고귀한 이 자연의 아이에게는, 사람의 시대(時代)가 끝나고 새롭고 신성한 시대―하늘나라―가 밝아오는 것을 위하여 세상이 무르익은 듯하였다. 자기가 옛 선지자들의 마지막이요, 새 선지자들의 처음이 되리라는 느낌이 요한의 가슴 속에서 자랐다. 박차고 나가서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은, 끓어오르는 충동으로 무척 마음이 설렜다. “회개하라! 하나님께 바르게 행하라! 종말을 위하여 준비하라. 세상일의 새롭고 영원한 질서, 하늘나라의 도래를 위하여 너희 스스로 준비하라.”

4. 엘리자벳의 죽음

서기 22년 8월 17일, 요한이 스물 여덟이었을 때,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엘리자벳의 친구들은, 자기 가족 안에서도 죽은 사람과 접촉하는 것에 관한 나지르인의 제한을 알고서, 요한을 부르기 전에 엘리자벳의 장례를 위하여 모든 주선을 하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에즈다에게 양 떼를 엥게디로 몰라 지시하고 헤브론을 향하였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지내고 엥게디로 돌아와서, 양 떼를 그 단체에게 내어주고, 굶고 기도하는 동안에, 바깥 세계로부터 한동안 떨어져 있었다. 요한은 신성에 접근하는 옛 방법들만 알았다. 오직 엘리야·사무엘·다니엘과 같은 기록들만 알고 있었다. 엘리야는 선지자의 이상(理想)이었다. 엘리야는 선지자로 여겨지게 된 이스라엘 선생들 중에 처음이었고, 요한은 자기가 길고도 눈부신 하늘 사자들의 이 계열에서 마지막이 되리라고 참으로 믿었다.

2년 반 동안 요한엥게디에서 살았다. “시대의 끝이 가까웠다,” “하늘나라가 바야흐로 나타나려 한다”고 단체의 대부분을 설득하였다. 그의 초기 가르침은 모두, 메시아유대 나라를 이방(異邦) 통치자들의 지배로부터 구원하도록 약속된 자라는 당대의 유대인 관념과 개념에 바탕을 두었다.

이 기간 내내, 요한나지르인들의 엥게디 집에서 발견한 신성한 기록들을 많이 읽었다. 특히 이사야, 그 시대에 이르기까지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 이사야의 마지막 5장을 읽고 또 읽었고, 이 예언들을 믿었다. 다음에 말라기를 읽곤 하였다: “보아라, 주의 크고 무서운 날이 오기 전에, 너희에게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리라. 내가 와서 저주로 땅을 칠까 하여,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이들에게 돌이키게 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저희 아버지에게 돌이키게 하리라.” 엘리야가 돌아오리라는 이 말라기의 약속이 겨우, 요한이 나가서 하늘나라가 다가오는 것에 대하여 전도하고 동료 유대인들에게 다가올 진노를 피하라고 훈계하는 것을 막았다. 요한은 다가오는 하늘나라의 메시지를 선포하기에 준비가 되고도 남았지만, 엘리야가 오리라는 이 기대(企待)는 2년이 넘도록 그를 붙들어 두었다. 자기가 엘리야가 아님을 알았다. 말라기가 무엇을 뜻하였는가? 그 예언(豫言)이 글자 그대로인가, 아니면 상징인가? 어떻게 진실을 알 수가 있을까? 마침내, 첫 선지자가 엘리야라는 이름이었으니까, 마지막도 궁극에는 똑같은 이름으로 알려져야 한다고 감히 생각했다. 그런데도 의심이 들었고, 이 의심은 언제라도 자신을 엘리야라고 부르는 것을 막기에 충분했다.

엘리야의 영향력은 요한으로 하여금 같은 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죄와 악덕을 직접 퉁명스럽게 공격하는 방법을 채택하게 만들었다. 엘리야처럼 옷을 입고 엘리야처럼 말하려고 애썼다.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옛 선지자(先知者)와 꼭 같았다. 바로 그렇게 튼튼하고 그림 같은 자연의 사람이요, 바로 그러한 겁 없고 담대한, 정의(正義)의 설교자였다. 요한은 글을 모르지 않았고, 유대인의 성스러운 기록들을 익히 알았지만, 교양이 있다고 하기는 어렵다. 맑게 생각하는 사람이요, 힘차게 외치는 연설가요, 불 같이 비난하는 자였다. 도저히 그 시대에 본보기라 할 수 없었지만, 거침없이 꾸짖는 채찍이었다.

마침내 새 시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메시아의 사자가 되리라고 작정했다. 서기 25년 3월 어느 날, 모든 의심을 떨쳐 버리고 엥게디를 떠나서, 대중 전도자(傳道者)로서 짧기는 했지만 눈부신 생애를 시작했다.

5. 하나님의 나라

요한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활동 무대에 나타났던 당시에 유대 민족의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거의 1백 년 동안, 온 이스라엘은 곤경에 빠져 있었다. 이방의 군주들에게 그들이 줄곧 예속된 것을 설명하기가 난처했다. 모세는 의로움이 언제나 번영과 권력으로 보상을 받는다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 아니었는가? 어째서 다윗의 왕좌(王座)가 황폐하고 비어 있는가? 모세의 신조와 선지자들의 훈계에 비추어서, 유대인들은 나라의 황폐가 오래 계속되는 것을 설명하기 어려움을 발견했다.

예수요한의 시절보다 1백 년쯤 앞서, 팔레스타인에서 새로운 학파의 종교 선생, 종말론자(終末論者)들이 일어났다. 이 새 선생들은 유대인들이 민족의 죄 때문에 벌을 받고 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이 당하는 고통과 치욕을 설명하는 한 신앙 체계를 개발했다. 그들은 예전에 바빌로니아와 기타 포로 생활을 설명하는 데 쓰여진 잘 알려진 여러 가지 이유에 의존했다. 하지만 종말론자들은 이렇게 가르쳤다: 이스라엘은 기운을 내야 한다, 고통받는 날이 거의 끝났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의 단련이 거의 끝났다, 하나님은 이방인(異邦人)에 대하여 참을성이 거의 없어졌다. 로마 통치의 끝은 그 시대의 끝,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의 종말과 비슷한 말이었다. 이 새 선생들은 다니엘의 예언에 무척 의존하였고, 창조는 마지막 단계에 막 들어가려 한다, 이 세상의 나라들은 바야흐로 하나님의 나라가 되려 한다고 한결같이 가르쳤다. 그 시절에 유대인의 머리에는, 이것이 요한예수의 가르침에 두루 이어지는 구절―하늘나라―의 뜻이었다. 팔레스타인유대인들에게, “하늘나라”라는 구절은 오직 한 가지 의미(意味)가 있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다스리는 것처럼―“주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하나님이 (메시아가) 완전한 권력을 가지고 땅의 나라들을 다스리는, 절대로 올바른 상태를 의미했다.

요한의 시절에 모든 유대인이 기대하며 물었다, “얼마나 빨리 그 나라가 올 것인가?” 이방 국가들의 통치의 종말이 가까웠다는 느낌이 일반이었다. 온 유대인 사회에서 오랜 시대에 걸쳐 품었던 소망의 성취가 그 세대가 살아 있는 동안에 일어나리라는 팔팔한 희망과 강렬한 기대가 있었다.

다가오는 나라의 본질(本質)을 짐작하는 데는 크게 의견이 달랐어도, 유대인들은 그 사건이 가까이, 아니 문 앞에까지도 다가왔다는 믿음을 똑같이 가졌다. 구약을 읽는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눈으로, 팔레스타인에서 새 임금을, 적들의 손에서 구원받고 다윗 왕의 후계자인 메시아가 주관하는, 다시 태어난 유대 국가를 글자 그대로 기대하고 있었고, 메시아는 온 세계의 마땅하고 올바른 통치자로서 빨리 인정될 것이었다. 그보다 작지만 또 다른 집단의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엄청나게 다른 견해를 가졌다. 다가오는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세상은 확실한 종말(終末)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님 나라가 서는 것을 안내하리라, 이 나라는 영원한 주권이 되리라, 죄는 그치게 되리라, 새 나라의 시민들은 이 끝없는 행복을 누리며 불멸하게 되리라고 가르쳤다.

깨끗이 하거나 정화(淨化)하는 어떤 철저한 훈련이 땅에서 새 나라의 확립을 반드시 앞서리라고 모두가 의견을 모았다. 글자대로 풀이하는 자들은 세계적인 전쟁이 따를 것이요, 모든 불신자(不信者)를 죽이고, 한편 충실한 자들은 보편적이고

영원한 승리로 몰고 가리라고 가르쳤다. 영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큰 심판이 그 나라를 안내하리라, 이것은 불의한 자들을 벌주고 최종으로 소멸하는 마땅한 심판(審判)으로 넘길 것이라, 동시에 선택된 백성 가운데 믿는 성자(聖者)들을 사람의 아들과 함께 높은 영예와 권한의 자리로 높일 것이요, 이 사람의 아들은 회복한 나라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다스릴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 후자 집단은 많은 경건한 이방인이 새 나라의 친교에 들어오도록 허락되리라 믿기까지 하였다.

유대인들 가운데 더러는 하나님이 어쩌면 직접 신의 간섭으로 이 새 나라를 세울지 모른다는 의견을 지녔지만, 대다수는 하나님이 어떤 대표하는 중재자, 메시아를 사이에 두리라고 믿었다. 이것이 예수요한의 세대에 살던 유대인들의 머리 속에 메시아라는 낱말이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하게 가능한 의미였다. 메시아는 도저히, 그저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거나 올바른 삶의 필요성을 외치는 자를 언급할 수 없었다. 그러한 모든 거룩한 사람에게 유대인들은 선지자라는 칭호를 주었다. 메시아는 선지자보다 더 위대해야 했다. 메시아는 새 나라, 하나님의 나라의 확립을 가져올 것이었다. 이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전통적 유대인 의미에서 메시아일 수 없었다.

누가 이 메시아일까? 또 다시 유대의 선생들은 의견이 달랐다. 옛 선생들은 다윗의 아들이라는 신조(信條)에 집착했다. 새 선생들은, 새 나라가 하늘나라이니까, 새 통치자는 또한 신다운 인물, 하늘에서 하나님의 바른 편에서 오래 앉아 있던 분일까 싶다고 가르쳤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새 나라의 통치자를 이렇게 상상한 자들은, 그는 인간다운 메시아가 아니라,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하나님의 아들―로서 새롭게 된 땅의 통치를 이렇게 맡으려고 오랫동안 기다린, 하늘의 왕자로 보았다. “뉘우치라, 하늘나라가 가까웠음이라!”하고 요한이 외치면서 떠나갔을 때, 유대인 세계의 종교적 배경이 이러했다.

그러니까 다가오는 나라를 요한이 선포한 것은 정열적인 설교에 귀를 기울인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적어도 여섯 가지 다른 뜻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요한이 사용한 구절에 그들이 어떤 의미(意味)를 부여했든지 상관 없이, 이 유대 왕국을 기다리는 여러 집단은 각자, 성실하고, 열심이 있고, 올바름과 뉘우침을 부르짖는 이 투박한 설교자의 외침에 흥미를 느꼈고, 그는 청중에게 “다가올 진노로부터 달아나라”하고 매우 엄숙하게 훈계하였다.

6. 요한이 설교를 시작하다

서기 25년 3월에 일찍, 요한은 사해(死海)의 서쪽 해안을 둘러 가며, 요단 강을 거슬러 예리고의 맞은 편으로 여행했는데, 요수아이스라엘의 자손이 약속된 땅으로 처음 들어갔을 때 이 고대의 여울을 건너갔다. 강 저편으로 건너서, 여울의 입구 가까이에 자리잡고, 강을 건너 오가는 길에 있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요단 강을 건너는 모든 길목 가운데 가장 흔히 다니는 곳이었다.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에게, 요한은 설교자보다 더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유대의 황야로부터 올라온 이 낯선 사람에게 귀를 기울인 사람들의 대다수(大多數)는 선지자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믿으며 떠나갔다. 지치고 고대하던 이 유대인들의 혼이 그런 현상에 깊이 마음이 흔들린 것은 당연하다. 온 유대 역사에서 아브라함

경건한 자손들이 “이스라엘이 위로받기”를 그렇게 고대(苦待)하거나 더 열심히 “나라가 회복되기”를 기대한 적이 없었다. 유대인 역사 전체에서 “하늘나라가 가까웠다”는 요한의 메시지가 요단 강의 이 남쪽 길목의 둑에서 그렇게 신비롭게 나타난 바로 그 때처럼, 그렇게 깊고 널리 호소한 적도 없었다.

그는 아모스처럼 가축을 기르는 사람의 출신이었다. 옛날의 엘리야처럼 옷차림을 했고, “엘리야의 영과 권능”을 입고 우렁차게 훈계하고, 경고(警告)를 퍼부었다. 여행자들이 요단 강 가를 따라서 그가 전도한다는 소식을 널리 퍼뜨리자, 온 팔레스타인에 두루, 이 이상한 전도자가 힘차게 소동을 일으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지르인 설교자가 하는 일에는 아직도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이 있었다. 요단 강에서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신자들에게 모조리 세례를 주었다. 비록 세례가 유대인 사이에 새로운 예식은 아니었어도, 그들은 지금 요한이 사용하는 것처럼 세례가 쓰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성전 바깥 마당에서 친교하도록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이렇게 세례(洗禮) 주는 것이 오랫동안 관례였지만, 유대인 자신들은 회개의 세례를 받으라고 요구된 적이 없었다. 요한이 전도하고 세례를 주기 시작한 때부터 헤롯 안티파스의 선동을 받아서 체포되고 갇힐 때까지 겨우 열 다섯 달이 끼었지만, 이 짧은 기간에 10만이 훨씬 넘는 회개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

요단 강을 거슬러 북쪽으로 떠나기 전에, 요한베다니 여울에서 넉 달 동안 전도했다. 수만 명의 청중, 더러는 호기심이 있었지만 열심이 있고 심각한 많은 사람이, 유대·페레아·사마리아의 모든 지방으로부터 말씀을 들으려고 왔다. 몇 사람이 갈릴리에서 오기도 했다.

이 해 5월에, 아직도 베다니 여울에 남아 있을 때, 사제와 레위인들은 그가 메시아임을 주장하는가, 누구의 권한으로 설교하는가 요한에게 물으려고 대표단을 보냈다. 요한은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가서 너희 주인들에게 ‘황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들었다고 이르라. 선지자가 이렇게 말씀한 바와 같으니라: ‘주의 길을 예비하라, 우리 하나님을 위하여 큰길을 곧게 하라. 골짜기마다 채워지겠고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리라. 반반하지 않은 땅이 평지가 되고, 거친 곳이 매끄러운 골이 되리라.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

용감하기는 했어도 요한은 재치 없는 설교자였다. 어느 날 요단 강 서쪽 둑에서 설교하며 세례를 주고 있을 때, 바리새인 한 무리와 사두개인 여럿이 앞으로 나와 세례를 받으려고 나섰다. 물 속으로 이끌기 전에, 요한은 그 무리에게 일렀다: “불 앞에 독사들처럼, 누가 너희에게 다가올 진노를 피하라고 경고하더냐? 나는 너희에게 세례를 주겠거니와, 너희 죄를 용서받고 싶으면 진지한 회개에 마땅한 열매를 맺으라 경고하노라. 아브라함이 너희 선조라 내게 이르지 말라. 내가 선언하노니, 하나님은 여기 너희 앞에 있는 돌 열두 개를 아브라함에게 합당한 아이들로 세울 수 있느니라. 지금도 도끼가 나무의 바로 그 뿌리에 놓여 있느니라.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베이고 불에 던져지도록 정해졌느니라.” (언급된 돌 열두 개는 “열두 부족”이 약속된 땅에 처음 들어갔을 때, 바로 이 자리에서 건너간 것을 기념하려고 요수아가 세운 이름난 기념비였다.)

요한은 제자들을 위하여 학급(學級)을 인도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생활의 세부를 가르치고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썼다. 율법의 글자 뿐 아니라 정신(精神)을 가르치라고 선생들에게 충고하였다. 부유한 자에게 가난한 자를 먹이라고 가르쳤고, 세금 걷는 자들에게 일렀다: “너희에게 배당된 것보다 더 빼앗지 말라.” 군인들에

게 일렀다: “폭력을 쓰지 말고 그릇되게 아무 것도 빼앗지 말라―봉급에 만족하라.” 한편 모든 사람에게 충고하였다: “시대의 끝을 위하여 준비하라―하늘나라가 가까웠느니라.”

7. 요한이 북으로 가다

요한은 다가오는 나라와 그 임금에 대하여 아직도 뒤범벅이 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오래 전도할수록 더욱 헛갈렸지만, 다가오는 나라의 성질에 관한 이 지적(知的) 불확실성은 그 나라가 즉시 분명히 나타나리라는 확신(確信)을 조금도 줄이지 않았다. 머리 속에서 요한은 그랬을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결코 헛갈리지 않았다. 다가오는 나라에 관하여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예수가 그 나라의 통치자가 될 것인가 아닌가, 도저히 확신이 없었다. 요한다윗의 왕좌가 회복되리라는 관념에 매달리는 한, 다윗의 도시에서 태어난 예수가 오래 기대하던 구원자라는 부모의 가르침은 일관성(一貫性) 있는 듯하였다. 그러나 영적 국가, 땅에서 현세의 시대가 끝난다는 교리 쪽으로 마음이 더 기울었을 때, 그러한 사건에서 예수가 무슨 역할을 할 것인가 못 견디게 의심이 들었다. 어떤 때는 모든 것을 의심했으나 오래 가지는 않았다.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사촌(四寸)과 이야기할까 정말로 바랐지만, 그들이 표현한 협정에 어긋났다.

북으로 여행하면서 요한예수에 대하여 많이 생각했다. 요단 강을 거슬러 여행하면서 멈춘 데는 열두 곳이 넘었다. 아담에서, 제자들이 “당신이 메시아니이까?” 다짜고짜 물은 데 답하여, “내 뒤에 오실 다른 분”이라고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는 덧붙여 말했다: “나보다 더 큰 분이 내 뒤에 오시리라,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 끈을 풀 만한 자격이 없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리라. 도리깨질하는 마당을 샅샅이 깨끗이 하려고, 그의 손에 삽이 있느니라. 그는 곡창으로 밀을 모으겠으나 쭉정이는 심판(審判)의 불에 태우리라.”

제자들의 물음에 답하여 요한은 가르침을 계속 확대하였고, “뉘우치고 세례를 받으라”는 수수께끼 같은 초기 메시지와 비교해서 유익하고 위로하는 말씀을 나날이 더하였다. 이 때가 되어서는, 갈릴리데카폴리스로부터 군중이 도착하고 있었다. 열심 있는 신자들 몇십 명이 날마다, 찬미받는 선생과 함께 남아 있었다.

8. 예수와 요한이 만나다

서기 25년 12월이 되어서, 요단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펠라 근처에 이르렀을 때, 요한의 이름은 온 팔레스타인에 두루 퍼졌고, 그의 일은 갈릴리 호수 둘레의 모든 마을에서 대화에 주요한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예수요한의 메시지에 대하여 좋게 말했고, 이것은 가버나움으로부터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세례 받는 요한의 종파에 합세하게 만들었다. 세베대의 아들, 어부 야고보요한은, 요한펠라 가까이 전도할 자리를 잡은 뒤에 곧, 12월에 내려갔고, 세례를 받으러 나섰다. 한 주에 한 번 요한을 보러 가서, 그 복음 전도자(傳道者)가 하는 일에 관하여 새롭고 직접 얻은 보고를 예수에게 가지고 돌아왔다.

예수의 동생, 야고보유다는 세례를 받으러 요한에게 내려가는 것에 대하여 논의했다. 유다가 안식일 예배를 보려고 가버나움에 건너 왔기 때문에, 그와 야고

는 회당에서 예수의 강론을 들은 뒤에, 그 계획에 대하여 함께 의논하기로 작정하였다. 때는 서기 26년 1월 12일, 토요일 밤이었는데, 예수는 이튿날까지 토론을 미룰 것을 요청했고, 그 때 그들에게 대답을 줄 것이었다. 그 날 밤에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가까이 교통하고 있었다. 동생들과 한낮에 점심을 먹고 요한에게 세례 받는 것에 관하여 조언하도록 주선하였다. 그 일요일 아침에 예수는 여느 때처럼 배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야고보유다는 점심을 가지고 도착했는데, 아직 정오의 쉬는 시간이 되지 않았고, 예수가 그런 일에 무척 규칙적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목재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정오에 쉬기 바로 전에, 예수는 연장을 내려놓고, 작업용 앞치마를 벗고, 함께 방에 있던 세 일꾼에게 그저 발표했다, “내 때가 왔도다.” 나가서 동생 야고보유다에게 되풀이해서 말했다. “내 때가 왔도다―요한한테로 가자.” 바로 펠라를 항해서 떠났고, 여행하면서 점심을 먹었다. 때는 1월 13일, 일요일이었다. 요단 강 유역에서 밤을 지냈고, 다음 날 한낮 무렵에 요한이 세례(洗禮)를 주는 장면에 다다랐다.

요한은 그 날 후보자들에게 막 세례를 주기 시작했다. 회개자 몇십 명이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때 예수와 두 동생이 열심 있는 남녀들의 줄에서 자리를 잡았고, 이들은 다가오는 나라에 관한 요한의 설교를 믿게 된 사람들이었다. 요한세베대의 아들들에게 예수의 소식을 묻고 있었다. 자기의 가르침에 대하여 예수가 논평한 것을 들었고, 요한은 날마다 그가 그 장면에 도착하는 것을 보기를 기대했지만, 예수가 세례 받는 후보자들의 줄에서 인사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큰 무리의 전향자들에게 빨리 세례를 주는 세부(細部)에 열중해서, 요한은 바로 앞에 사람의 아들이 설 때까지 예수를 올려다보지 못했다. 요한예수를 알아보았을 때, 예식(禮式)은 잠시 중지되었고, 그 동안에 육체의 사촌에게 인사하며 물었다. “어째서 당신은 내게 인사하려고 물 속으로 내려오시나이까?” 예수는 대답했다. “너에게 세례를 받기 위함이라.” 요한이 응답했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나이다. 어째서 당신이 내게 오시니이까?” 예수요한에게 속삭였다. “이제 참고 내 말을 들으라. 나와 함께 여기 서 있는 동생들에게 이 모범을 보이는 것이 어울리고, 사람들이 내 때가 왔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예수의 목소리에는 단호하고 권위 있는 빛이 서려 있었다. 서기 26년 1월 14일, 월요일 한낮에, 요단 강에서 나사렛 예수에게 세례를 주려고 준비하면서 요한은 감동으로 부르르 떨었다. 이처럼 요한예수와 두 동생, 야고보유다에게 세례를 주었다. 세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나서, 요한은 다른 사람들을 그 날 해산하고 다음 날 정오에 다시 세례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사람들이 떠나는 동안, 네 사람은 아직도 물 속에 서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는데, 당장에 예수의 머리 바로 위에 한 순간 환영(幻影)이 나타났고, 한 목소리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는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이요, 내가 아주 기뻐하는 자라.” 큰 변화가 예수의 얼굴에 왔고, 물 속에서 나오자, 그는 말없이 떠나서, 동쪽으로 산을 향하여 갔다. 아무도 예수를 40일 동안 다시 보지 못했다.

요한은 어머니의 입으로부터 여러 번 들은 바와 같이, 둘 중에 어느 쪽도 태어나기 전에, 가브리엘예수의 어머니를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일러 주려고 멀찌감치 떨어져 따라갔다. “이제 나는 당신이 구원자임을 확실히 아나이다” 하고 말한 뒤에, 예수가 길을 계속 가게 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9. 사십일 동안의 전도

요한이 제자들한테로 돌아갔을 때 (이제 함께 항상 거하는 사람이 스물 다섯이나 서른 명 정도 있었다), 예수의 세례와 연관하여 무슨 일이 막 일어났는가 토론하면서, 그들이 열심히 의논하는 것을 발견했다. 예수가 태어나기 전에 가브리엘마리아를 방문했다는 이야기, 또한 그가 이 사실을 일러 준 뒤에도 예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요한이 이제 알려 주었을 때, 그들은 더군다나 놀라워했다. 그 날 저녁에 아무 비가 내리지 않았고, 30명 남짓한 이 무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 늦게까지 이야기하였다. 예수가 어디로 갔는가, 언제 그를 다시 볼 것인가 궁금해하였다.

이 날의 체험이 있은 뒤로 요한의 설교는 다가오는 나라와 기대된 메시아에 관하여 선포하는, 새롭고 확실한 말투가 되었다. 예수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머무르던 이 40일 동안은 긴장된 때였다. 그러나 요한은 큰 힘을 가지고 계속 전도했고, 제자들은 요단 강에서 요한의 주위에 모인 넘쳐흐르는 군중에게 이 무렵에 전도하기 시작했다.

이 40일 동안 기다리는 과정에, 많은 소문이 시골에, 티베리아스예루살렘까지도 퍼졌다. 수천 명이 요한의 야영지에서 새 구경거리, 소문난 메시아를 보려고 왔지만, 예수는 눈에 띄지 않게 되어 있었다. 요한의 제자들이 그 이상한, 하나님의 사람이 산으로 가 버렸다고 주장했을 때, 많은 사람이 그 이야기 전체를 의심했다.

예수가 떠난 지 3주쯤 되었을 때, 예루살렘에서 사제(司祭)와 바리새인들로부터 새 대표단이 펠라에, 그 장면에 도착했다. 요한에게 다짜고짜 그가 엘리야인가, 아니면 모세가 약속한 선지자인가 물었다. 요한이 “나는 아니라”하고 말했을 때, 그들은 감히 물었다 “네가 메시아이냐?” 요한은 “나는 아니라” 대답했다. 그러자 예루살렘에서 온 이 사람들은 말했다. “네가 엘리야가 아니요, 선지자도 메시아도 아니라면, 어찌하여 너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이 모든 소란을 피우느냐?” 요한은 대답하였다: “내 말을 듣고 나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 내가 누구인가 말해야 할 것이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돌아와서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줄 사람이 우리 가운데 있었느니라.”

이 40일은 요한과 그 제자들에게 어려운 기간이었다. 요한예수의 관계는 무엇이 될까? 토론할 사항이 1백 가지나 생겼다. 정치와 이기적 우선권이 비로소 모습을 나타냈다. 메시아에 관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개념(槪念)에 대하여 맹렬한 토론이 벌어졌다. 그는 군사 지도자와 다윗 같은 왕이 될 것인가? 요수아가나안 사람들을 친 것 같이, 로마 군대를 칠 것인가? 아니면 영적인 나라를 세우러 올 것인가? 하늘나라를 세우는 이 사명(使命)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갈 것인가, 비록 머리 속에서 아주 뚜렷하지 않았어도, 요한은 차라리 소수파와 함께, 예수가 하늘나라를 세우러 왔다고 결정했다.

이 때는 요한의 경험에서 어려운 시절이었고, 예수가 돌아오기를 기도했다. 요한의 어떤 제자들은 예수를 찾으러 가려고 수색대(搜索隊)를 조직했지만, 요한은 막으며 말했다: “우리의 때는 하늘의 하나님 손에 있으니, 그가 택한 아들을 인도하시리라.”

2월 23일, 토요일 아침 일찍, 요한의 일행이 아침 식사를 들며 북쪽을 향하여 올려보다가 예수가 오는 것을 보았다. 가까이 오자, 요한은 큰 바위 위에 올라서

서, 우렁차게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하나님의 아들, 세상의 구원자를 보라!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말하였으되, ‘내 뒤에 나보다 더 나은 자가 오리니, 그가 나보다 먼저 있었음이라.’ 이 때문에, 내가 광야에서 나와서 회개(悔改)를 외치고 물로 세례를 주었고, 하늘나라가 가까웠다고 선포하였노라. 이제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 줄 이가 오느니라. 이 사람 위에 신의 영(靈)이 내려옴을 내가 보았고, ‘이 사람은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이요 내가 아주 기뻐하는 자라’하고 하나님의 목소리가 외침을 내가 들었노라.”

예수는 그들에게 식사를 계속하라고 말하고, 한편 동생 야고보유다가버나움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요한과 함께 먹으려고 앉았다.

이튿날 아침 일찍 요한과 그 제자들을 떠나서 갈릴리로 돌아갔다. 언제 다시 그를 볼 것인가 아무 말도 일러 주지 않았다. 자신의 전도(傳道)와 사명에 대하여 요한이 묻자, 예수는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내 아버지가 지난날에 하신 것 같이, 이제와 앞날에도 너를 안내하시리라.” 위대한 이 두 사람은 그 날 아침, 요단 강 둑에서 헤어졌고, 육체를 입고 다시는 서로 인사하지 못하게 되었다.

10. 요한이 남쪽으로 가다

예수가 북쪽으로 갈릴리로 갔으므로, 요한은 왔던 길로 남쪽으로 되돌아가도록 마음이 이끌렸다. 따라서, 3월 3일, 일요일 아침에, 요한과 남은 제자들은 남쪽으로 여행 길을 떠났다. 요한의 가까운 추종자들 가운데 4분의 1쯤이 그 동안에 예수를 찾아서 갈릴리를 향하여 떠났다. 요한에게는 혼란에 빠진 슬픈 빛이 보였다. 결코 예수에게 세례 주기 전에 했던 것처럼, 다시 전도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다가오는 나라에 대한 책임이 자기 어깨에 더 지워지지 않았다고 느꼈다. 할 일이 거의 끝났다고 느꼈다. 쓸쓸하고 외로웠다. 그러나 전도하고, 세례를 주고, 남쪽으로 계속 여행하였다.

아담이라는 마을 가까이, 요한은 몇 주 동안 머물렀고, 여기서 헤롯 안티파스가 다른 남자의 아내를 불법으로 빼앗은 것 때문에, 기억에 남을 공격을 그에게 퍼부었다. 이 해 (서기 26년) 6월이 되어서, 요한요단 강의 베다니 여울로 돌아갔고, 거기서 1년도 더 전에, 다가오는 나라에 대하여 전도(傳道)를 시작했다. 예수가 세례 받은 뒤에 몇 주 동안, 요한의 설교의 특징은 차츰 서민들에게 자비를 선포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한편 되살아난 열정으로 썩은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들을 비난하였다.

요한헤롯 안티파스의 영토에서 전도하고 있었는데, 안티파스요한과 그 제자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놀라게 되었다. 헤롯은 또한 요한이 자기 집안 일을 드러내 놓고 비난하는 것을 분개하였다. 이 모든 것에 비추어, 헤롯요한을 잡아 가두기로 작정하였다. 따라서, 6월 12일 아침 아주 일찍, 군중이 설교를 듣고 세례 주는 것을 구경하러 도착하기 전에, 헤롯의 대리자들이 요한을 체포했다. 몇 주가 지나도 석방되지 않자, 제자들은 온 팔레스타인에 흩어졌고, 그 중에 많은 사람이 예수의 추종자들과 합세하려고 갈릴리로 갔다.

11. 요한이 갇히다

요한은 감옥에서 외롭고 얼마큼 쓰라린 체험을 가졌다. 추종자들 가운데 거의 아무도 그를 면회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예수를 보고 싶어했지만, 추종자들

가운데 사람의 아들을 믿게 된 자들을 통해서 그가 하는 일의 소식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가끔 예수와 그의 신성한 사명을 의심할 유혹(誘惑)을 받았다. 예수메시아라면, 어째서 참을 수 없는 이 감옥 생활에서 그를 구원하려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가? 1년 반이 넘도록 우락부락하고 광야에서 살던 이 하나님의 사람은 경멸할 감옥에서 시들었다. 이 체험은 그가 예수를 믿고 그에게 충성하는가 크게 시험하였다. 여러 번 그는 자신의 사명과 체험이 진정했는가 의심할 유혹까지 받았다.

몇 달 동안 감옥에 갇힌 뒤에, 제자들의 한 무리가 그에게 와서, 예수의 대중 활동에 관하여 보고한 뒤에 말했다: “선생이여, 이런즉 요단 강 상류에서 당신과 함께 있던 자는 번영하고 그에게 오는 자를 모두 받나이다. 세리와 죄인들과 잔치까지 하나이다. 당신은 그를 용감하게 증언했는데, 그래도 그는 당신을 구원하려고 아무 일도 하지 않나이다.” 그러나 요한은 친구들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가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나는 메시아가 아니라, 그러나 그를 위하여 길을 예비하려고 앞에 파송된 자라’ 내가 말한 것을 너희가 기억하느니라. 그리고 그 일을 내가 하였노라. 신부(新婦)를 가진 자는 신랑이지만, 가까이 서서 그의 목소리를 듣는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 때문에 크게 기뻐하느니라. 그러므로 나의 이 기쁨이 이루어졌도다. 그는 번창해야 하지만 나는 쇠퇴해야 하느니라. 나는 이 땅에서 왔고 내 메시지를 선포하였노라. 나사렛 예수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고, 우리 모두 위에 계시느니라. 사람의 아들하나님으로부터 내려왔고,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외치리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분량을 재지 않고 영을 주기 때문이라. 아버지는 그 아들을 사랑하사, 당장에 이 아들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기시리라. 그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지느니라. 내가 말하는 이 말씀은 참이요 지속하느니라.”

이 제자들은 요한의 선언에 놀랐고, 너무 놀라서 말없이 떠났다. 요한도 또한 마음이 많이 착잡해졌는데, 예언을 입밖에 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시는 예수의 사명과 신성에 대하여 송두리째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가 그에게 아무 말도 전하지 않은 것, 자기를 보러 오지 않은 것, 자기를 감옥에서 구원하려고 큰 권능을 하나도 쓰지 않은 것이, 요한에게는 마음 아프게 실망이 되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것을 모두 알았다. 요한을 크게 사랑했지만, 자기의 신다운 성품을 이제 깨달았고, 요한이 이 세상을 떠날 때 그를 위하여 큰 일이 준비되어 있음을 충분히 알고, 또한 땅에서 요한의 일이 끝났음을 알기 때문에, 위대한 전도자이자 선지자의 생애가 자연스럽게 풀려나가는 데 간섭하지 않으려고 자제하였다.

감옥에서 오랫동안 겪은 이 불안감은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었다. 죽기 겨우 며칠 전에 요한은 신뢰하는 사자들을 다시 예수에게 보내어 물었다: “나의 일이 끝났나이까? 어째서 나는 감옥에서 시드나이까? 당신은 참으로 메시아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리이까?” 이 두 제자가 이 메시지를 예수에게 주었을 때, 사람의 아들은 대답했다: “요한에게 돌아가서, 내가 잊지 않았으나, 내게 또한 이것을 용납하라고 이를지니, 우리가 올바름을 전부 성취하는 것이 어울림이라.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전하라―가난한 자들이 좋은 소식을 듣느니라―그리고 마지막으로, 땅에서 내 사명을 전한 사랑하는 사자에게, 의심하고 나 때문에 넘어지지 않으면, 다가올 시대에 넘치게 복을 받으리라 전하라.” 이것이 예수로부터 요한이 받은 마지막 말씀이었다. 이 메시지는 그를 크게 위로하고 믿음을 안정시켰고, 육체를 입은 생애의 비극적인 끝을 준비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으며, 그 죽음은 기억할 만한 이 사건의 끝에 금방 다가왔다.

12. 세례자 요한의 죽음

붙잡혔을 때 남부 페레아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은 즉시 마캐루스 요새의 감옥으로 끌려갔고, 거기서 집행될 때까지 갇혀 있었다. 헤롯갈릴리 뿐 아니라 페레아도 다스렸고, 이 때 페레아줄리아스마캐루스, 두 곳에서 거주를 유지했다. 갈릴리에서 관저는 세포리스로부터 티베리아스에 새 서울로 이전에 옮겼다.

헤롯요한이 반란을 일으킬까 저어하여 그를 석방하기를 두려워했다. 수천 명의 페레아 사람들이 요한이 거룩한 사람, 선지자라고 믿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군중이 폭동을 일으킬까 저어하여 헤롯은 그를 죽이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헤롯나지르 전도자를 감옥에 가두었고, 달리 어떻게 할 줄 몰랐다. 몇 번 요한헤롯 앞에 섰지만, 풀려난다면, 헤롯의 영토를 떠나거나 모든 대중 활동을 삼가겠다고 결코 동의하려 하지 않았다.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이 새 소동이 꾸준히 커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헤롯에게 요한을 석방할 때가 아니라고 훈계하였다. 게다가 요한헤롯이 불법으로 가진 아내 헤로디아스를 맹렬하고 극심하게 미워했다.

여러 차례 헤롯은 하늘나라에 대하여 요한과 이야기했고, 때때로 그의 메시지에 심각하게 감명을 받기는 했어도, 요한을 감옥에서 석방하기가 두려웠다.

티베리아스에서 많은 건축 공사가 아직도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헤롯페레아 저택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고, 마캐루스 요새를 무척 좋아했다. 티베리아스에 있는 모든 공공 건물과 관저가 완성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

생일(生日)을 축하하느라고 헤롯마캐루스 궁정에서, 갈릴리페레아의 정부 의회에서 주요 관리들과 기타 고위층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다. 헤로디아스헤롯에게 직접 호소하여 요한을 죽게 만드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이제 교활한 계획으로 요한을 죽이는 일에 착수했다.

그 날 저녁에 잔치하고 접대하는 과정에서, 헤로디아스는 딸을 잔치의 손님들 앞에 춤을 추도록 내놓았다. 헤롯은 계집아이의 연기를 매우 기뻐하였고, 딸을 앞으로 부르면서 말했다. “너는 매력이 있구나. 썩 마음에 드는구나. 내 생일에 무엇을 바라든지 요구하렴. 그러면 그것을, 아니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겠노라.” 헤롯은 포도주를 많이 마신 기운에 이 모든 일을 저질렀다. 소녀는 옆으로 가서 어머니에게 자기가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물었다. 헤로디아스는 말했다. “헤롯한테 가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렴.” 소녀는, 잔치의 식탁으로 돌아오면서, 헤롯에게 말했다. “당장에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 위에 담아 주시기를 요청하나이다.”

헤롯은 두려움과 슬픔에 휩싸였지만, 그 서약(誓約)과 같이 회식하던 모든 사람 때문에, 요구를 물리치려 하지 않았다. 헤롯 안티파스는 군병(軍兵) 하나를 보내서,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했다. 이렇게 요한은 그 날 밤에 감옥에서 목이 잘렸고, 그 군인은 선지자의 머리를 쟁반 위에 가지고 와서, 연회실의 뒷줄에 있는 그 소녀에게 내밀었다. 계집아이는 쟁반을 어머니에게 올렸다. 요한의 제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서, 요한의 시체를 얻으려고 감옥으로 갔고, 무덤에 시체를 묻은 뒤에 예수에게 가서 소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