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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자유와 주권

뉴징검다리 2010. 2. 10. 07:55

6. 법과 자유와 주권

한 사람이 자유―해방―을 몹시 바라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자유를 동경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유를 사랑하는 그러한 사람들의 집단은, 각 사람에게 같은 정도의 자유를 주며, 한편 동시에 모든 동료 필사자를 위하여 똑같은 정도의 자유를 보호할 그러한 법·규칙·규제에 복종하지 않고서는 평화 속에서 함께 살 수 없다. 한 사람이 절대로 자유롭게 되려면, 또 한 사람이 절대로 노예가 되어야 한다. 자유의 상대적 성질은 사회·경제·정치적으로 참되다. 자유는 의 집행이 가능하게 만드는, 문명의 선물이다.

종교는 사람의 형제 정신의 실현을 영적으로 가능하게 하지만, 인류 정부(政府)로 하여금 그러한 목표, 인간의 행복 및 효율성이라는 목표와 연결된 사회·경제·정치 문제를 규제하기를 요구할 것이다.

세계의 정치적 주권을 한 집단의 민족 국가들이 나누고 부당하게 차지하는 한, 전쟁이 있고, 전쟁의 소문이 있을 것이다―나라와 나라가 대항하여 일어날 것이다. 잉글랜드·스콧트랜드·웨일즈는 각자의 주권을 버리고, 연합 왕국에 둘 때까지, 언제나 서로 싸우고 있었다.

또 하나의 세계 전쟁은 이른바 주권 국가들에게 어떤 종류의 연방을 형성하고, 이처럼 작은 전쟁, 작은 나라들 사이에 전쟁을 막는 장치를 창조하는 것을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정부가 창조되기까지 세계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세계적 주권이 세계 전쟁을 막을 것이다―그 외에 아무 것도 그렇게 할 수 없다.

아메리카의 48주는 평화 속에서 함께 산다. 유럽의 늘 전쟁하는 나라들에서 사는 여러 국민과 종족 모두가 이 48주의 시민들 사이에 끼어 있다. 이 미국(美國) 사람들은 거의 모든 종교와 교파, 넓은 전 세계의 종파(宗派)들을 대표하며, 그래도 여기 북 아메리카에서 평화 속에서 함께 산다. 이 48주가 주권을 포기하고 자결하는 권리라고 생각된 모든 개념을 버렸기 때문에 이 모두가 가능하게 되었다.

무장이나 비무장(非武裝)의 문제가 아니다. 징병 또는 자원 군대 복무를 채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이 문제와 상관이 없다. 모든 형태의 현대의 기계적 무기(武器)와 모든 종류의 폭발물을 강한 나라들로부터 빼앗는다면, 국가의 주권을 신(神)이 준 권리라는 망상에 달라붙는 한, 주먹과 돌과 곤봉을 가지고 싸울 것이다.

전쟁은 사람의 크고 끔직한 병이 아니다. 전쟁은 증상이요 결과이다. 진짜 병은 국가의 주권이라는 바이러스이다.

유란시아 나라들은 진정한 주권을 소유한 적이 없다. 결코 세계 전쟁의 참화와 황폐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주권(主權)을 가진 적이 없다. 세계적인 인류 정부를 창조하면서, 국가들은 주권을 버린다고 하기보다, 진짜이고, 진정하고, 오래 가는 세계 주권을 실제로 창조하는 것이며, 그 때부터 그들을 모든 전쟁으로부터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 지역 사무는 지역 정부가, 나라의 사무는 국가(國家) 정부가, 국제 사무는 세계 정부가 관리할 수 있다.

세계의 평화는 조약(條約), 외교, 대외 정책, 연합군, 힘의 균형을 이용하여, 또는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주권들을 어떤 다른 종류의 임시 편법으로 손재주를 피움으로 유지될 수 없다. 세계 법이 생기고, 그것을 세계 정부가―온 인류의 주권이―집행해야 한다.

세계 정부 밑에서 개인은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누릴 것이다. 오늘날 강대국의 시민들은 거의 강제로 세금(稅金)을 물고, 규제를 받고, 통제된다. 국제 사무에 관한 주권을 세계 정부의 손에 기꺼이 넘길 때, 개인의 자유에 대한 현재의 많은 이러한 간섭이 사라질 것이다.

세계 정부 밑에서 국가 집단들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개인적 자유를 실현하고 누릴 진정한 기회를 얻을 것이다. 자결(自決)의 허위는 그칠 것이다. 돈과 무역을 세계적으로 규제함과 더불어, 새로운 세계적 평화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곧 세계적 언어가 진화될지 모르고, 적어도 세계적 종교를―아니면 세계적 관점을 가진 종교들을―언젠가 가질 희망이 얼마큼 생길 것이다.

집단의 안전은 그 집단성이 온 인류를 포함할 때까지, 결코 평화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대표하는 인류 정부(政府)의 정치적 주권은 땅에서 오래 가는 평화를 가져 오고, 사람의 영적 형제 정신은 언제까지나 모든 사람 사이에 선의를 보장할 것이다. 땅에서 평화와 사람들 사이에 선의가 실현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하나도 없다.

***

심보이톤이 죽은 뒤에, 그 아들들은 평화로운 교사진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에 부딪쳤다. 우르미아 교사진에 들어간 후일의 그리스도교 선생들이 좀더 지혜를 보이고 더 관대했더라면, 예수의 가르침의 반향은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심보이톤의 맏아들은 필라델피아에 있던 아브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브너가 선택한 선생들은 무척 운이 나빴는데, 완고하고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이 선생들은 그들의 종교를 다른 신앙을 지배하게 만들려고 애썼다. 자주 입에 오르내리던, 카라반 안내자의 강의(講義)를 예수 자신이 했다는 것을 결코 추측하지 못했다.

교사진에서 혼란이 커지자, 세 형제는 재정 지원을 그만두었고, 5년 뒤에 학교는 문을 닫았다. 나중에 그 학교는 미트라 신전(神殿)으로서 다시 열렸고, 결국에

는 그들의 질탕한 잔치의 하나와 연관하여 불에 타 버렸다.

7. 서른하나 되던 해 (서기 25년)

카스피 바다로 가는 여행으로부터 돌아왔을 때, 예수는 세계 여행이 거의 끝났음을 알았다. 팔레스타인 바깥으로 겨우 한 번 더 여행했는데, 시리아 여행이었다. 가버나움에 잠깐 들린 뒤에 나사렛으로 가서, 며칠 동안 방문하려고 멈추었다. 4월 중순에 나사렛을 떠나서 티레를 향하였다. 거기서부터 계속 북쪽으로 여행하고 며칠 동안 시돈에서 묵었지만, 목적지는 안티옥이었다.

이 해는 예수팔레스타인시리아를 통하여 혼자서 헤매 다니던 해였다. 여행하던 이 해 내내, 나라의 다른 구석에서, 나사렛 목수, 가버나움의 배 건축자, 다마스커스 서기관, 알렉산드리아의 선생, 이렇게 여러 이름으로 알려졌다.

안티옥에서 사람의 아들은 일하고, 관찰하고, 공부하고, 방문하고, 봉사하면서 두 달이 넘도록 살았고, 그 동안 계속,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며, 인간 존재의 환경에 반응하는가를 배웠다. 이 기간에서 3주 동안, 그는 텐트 만드는 사람으로서 일했다. 이 여행에서 방문한 어느 다른 곳보다, 안티옥에서 더 오래 남아 있었다. 10년 뒤에, 사도 바울안티옥에서 전도하면서, 추종자들이 다마스커스 서기관의 신조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생도들이 바로 주의 목소리를 듣고 그 가르침을 귀담아들었음을 조금도 몰랐다.

안티옥에서부터 예수는 남쪽으로 바닷가를 따라서 케자리아로 갔고, 거기서 몇 주 동안 묵었으며, 계속해서 바닷가를 따라 요파로 내려갔다. 요파로부터 내륙으로 잠니아·아쉬돗·가자까지 여행하였다. 가자로부터 내륙의 길을 타고, 비엘세바까지 가서, 거기서 한 주 동안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서 개인으로서, 예수는 마지막 여행을 떠났고, 팔레스타인의 심장부를 거쳐서, 남쪽에 비엘세바로부터 북쪽으로 까지 갔다. 북쪽으로 가는 이 여행에서 헤브론·베들레헴 (여기서 그가 태어난 곳을 보았다), 예루살렘 (베다니에 들리지 않았다), 비어롯·레보나·시카·세켐·사마리아·게바·엔가님·엔도르·마돈에서 멈추었다. 막달라가버나움을 거쳐서, 북쪽으로 줄곧 여행했다. 메롬의 물 동쪽을 지나서, 가라타의 길로 , 곧 케자리아 빌립비로 갔다.

깃드는 생각 조절자는 이제 사람들의 거처를 버리고, 인간 지성을 통달하는 일을 끝내고, 땅에서 남은 사명에 충만히 헌신하는 과제를 마치도록 헤르몬 산으로 가라고 이끌었다.

이 때는 유란시아에서 주가 땅에서 지낸 일생에서 드물고 특별한 기간이었다. 또 다른 아주 비슷한 기간은 세례를 받고 난 바로 뒤에, 펠라 가까이 작은 산에서 혼자 있을 때 거친 체험이었다. 헤르몬 산에서 혼자 있던 이 기간은 순전히 인간적 생애가 마치는 것, 다시 말해서, 사람으로 자신을 수여하는 것이 절차상으로 종결됨을 표시하며, 한편 후일에 혼자 지낸 것은 자신 수여의 더욱 신다운 단계가 시작됨을 표시했다. 예수헤르몬 산의 비탈에서 여섯 주 동안 하나님과 함께 혼자서 살았다.

8. 헤르몬 산에서 머무름

케자리아 빌립비 근처에서 얼마 동안 보낸 뒤에, 예수는 식량을 준비하였고, 짐 나르는 짐승과 티글라스라는 이름의 소년을 확보하고 나서, 다마스커스 길을 따라

서, 헤르몬 산기슭의 언덕에, 언젠가 베이트젠이라고 알려진 마을로 나아갔다. 여기서, 그는 서기 25년 8월 중순 가까이, 본부를 정했고, 식량을 티글라스에게 맡기고 나서, 외로운 산비탈을 올라갔다. 티글라스는 산을 향하여, 이 첫날에 해수면 위로 1800미터쯤에 지정된 곳까지 예수를 따라서 올라갔는데, 거기서 그들은 돌로 된 상자를 지었고, 그 속에 티글라스는 한 주에 두 번, 먹을 것을 집어넣어야 했다.

티글라스를 떠난 뒤에, 첫째 날에 예수는 산을 조금만 올라갔고, 기도하려고 멈추었다. 다른 일 가운데 아버지에게 수호 세라핌을 “티글라스와 함께 있도록” 돌려보내기를 요청하였다. 인간 존재로 있는 현실과 싸우는 마지막 투쟁까지 그가 혼자 진행하도록 허락해 주기를 청하였다. 이 요청은 허락되었다. 그를 안내하고 지탱할 깃드는 조절자만 함께 하고, 그는 큰 시험에 들어갔다.

예수는 산에 있는 동안 아껴서 먹었다. 한 번에 하루나 이틀 동안만 먹을 것을 전혀 들지 않았다. 이 산에서 그와 부딪친 초인간 존재들, 정신적으로 씨름하고 능력으로 물리친 자들은 실재했다. 그들은 사타니아 체계에서 큰 적이었다. 현실과 병든 지성의 환상(幻想)을 구별할 수 없고, 허약해지고 굶주린 필사자의 지적 변덕으로부터 생겨난, 상상의 착각이 아니었다.

예수는 8월의 마지막 3주와 9월의 처음 3주를 헤르몬 산에서 보냈다. 이 몇 주 동안, 지성을 이해하고 성격을 통제하는 여러 수준에서 필사자의 과제를 마쳤다. 하늘 아버지와 교통하는 이 기간 내내, 깃드는 조절자도 또한 배치받은 근무를 마쳤다. 이 지상(地上) 피조물의 인간 목표는 거기서 도달되었다. 오로지 지성과 조절자가 조율하는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는 일이 남았다.

5주가 넘도록 파라다이스 아버지와 끊임없이 친교가 있은 뒤에, 예수는 그의 성품을, 그리고 성격이 시공에서 나타나는 물질 수준을 확실히 극복했다는 것을, 절대로 확신하게 되었다. 신다운 성품이 인간 성품을 지배하는 것을 충분히 믿고, 서슴지 않고 주장하였다.

산에서 체류가 끝날 때가 가까이 되어, 예수사람의 아들로서, 요수아 벤 요셉으로서, 사타니아에 있는 적들과 회담을 가지도록 허락될 것인가 아버지께 물었다. 이 요구는 허락되었다. 헤르몬 산에서 마지막 주에, 큰 유혹, 우주의 재판이 일어났다. (루시퍼를 대표하는) 사탄과 반역한 혹성 영주, 칼리가스티아예수와 함께 자리에 있었고, 그의 눈에 완전히 보이게 나타났다. 이 “유혹,” 모반한 성격자들의 곡해를 직면하여 인간적 충성심을 재는 이 마지막 시련은, 먹을 것이나 성전 뾰족탑이나, 주제넘은 행위(行爲)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세상의 나라들이 아니라, 막강하고 영화로운 우주의 통치권과 상관이 있다. 너희 기록에 나타나는 상징은 세상이 유치한 생각을 가졌던, 뒤떨어진 시대를 위하여 의도한 것이었다. 후일의 세대들은 헤르몬 산에서 그 중대한 날에 사람의 아들이 얼마나 큰 투쟁을 겪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루시퍼의 밀사들이 내민 여러 제안과 반대(反對) 제안에 대하여, 예수는 이렇게만 대답하였다: “나의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너, 반역한 아들아,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이 너를 신답게 재판하기를! 나는 너의 창조자인 아

버지이라. 나는 너를 도저히 공정하게 판단할 수 없고, 너는 내 자비를 이미 걷어찼느니라. 나는 너를 더 큰 우주의 재판관들의 판결에 맡기노라.”

루시퍼가 제시한 모든 절충안과 임시 편법에 대하여, 육신화로 자신을 수여함에 관하여 내놓은 모든 그러한 허울 좋은 제안에 대하여, 예수는 오직 이렇게 대답했다, “파라다이스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벅찬 시련이 끝났을 때, 떨어져 있던 수호 세라핌이 예수의 옆으로 돌아와서 그를 보살폈다.

늦은 여름 어느 날 오후, 나무들 사이에서, 자연이 고요한 가운데, 네바돈미가엘은 그의 우주를 다스리는, 도전받지 않은 통치권을 얻었다. 그 날에 시공의 진화 세계에서 필사 육체의 모습을 입고 육신화된 생명을 한껏 살라고 아들 창조자들을 위하여 마련된 과제를 마쳤다. 몇 달 뒤에 세례를 받는 날까지, 이 중대한 성취에 관하여 우주 발표(發表)가 있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 날 산에서 정말로 일어났다. 헤르몬 산에서 머무르다가 내려왔을 때, 사타니아에서 루시퍼 반란과 유란시아에서 칼리가스티아 탈퇴는 실질적으로 해결되었다. 그의 우주 통치권을 얻는 데 요구되는 마지막 값을 예수는 치렀고, 그 통치권은 그 자체로서 모든 반역자의 지위를 규제하고, 앞날의 모든 그러한 봉기가 (언제라도 일어난다면) 단숨에 효과적으로 처리되어도 좋다고 확정한다. 따라서, 이른바 예수의 “큰 시험”은 세례 받기 얼마 전에 일어났고, 그 사건 바로 뒤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산에서 이 체류가 끝나고, 산을 내려가는 동안에 예수는 먹을 것을 가지고 만날 장소로 올라오는 티글라스와 마주쳤다. 그를 돌려보내며 예수는 다만 이렇게 말했다: “쉬는 시간이 지났느니라. 나는 아버지의 일로 돌아가야 하노라.” 으로 돌아가는 동안 말이 없었고, 그는 많이 변화된 사람이었다. 에서 예수는 소년을 보내고, 당나귀를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가 온 똑같은 길로, 남쪽으로, 가버나움까지 나아갔다.

9. 기다리는 시간

이제 여름의 끝이 가까웠고, 속죄의 날과 초막(草幕) 축제가 있을 무렵이었다. 예수가버나움에서 안식일 동안에 가족 회의를 열었고, 다음 날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났고, 호수의 동쪽으로 가며, 게라사를 지나서, 요단 강 유역으로 내려갔다. 가는 길에 동반자와 얼마큼 이야기하는 동안, 요한예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을 눈치챘다.

예수요한베다니에서 나사로와 그 자매들과 함께 그 날 밤에 묵었고, 이튿날 아침 일찍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 도시 안과 주위에서 거의 3주를 보냈다, 적어도 요한은 그랬다. 여러 날 동안 요한예루살렘으로 혼자 갔고, 한편 예수는 근처에 있는 언덕 위를 걸어다니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영적으로 친교하는 시간을 여러 번 가졌다.

두 사람은 속죄의 날의 엄숙한 예배에 참석했는데, 요한유대인의 종교 의식에서 모든 날 가운데 이 날의 의식(意識)에 크게 감명을 받았지만, 예수는 생각에 잠겼고 말이 없는 구경꾼이었다. 사람의 아들에게 이 연출은 불쌍하고 보기에 딱했다. 모두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성품과 속성을 잘못 나타낸다고 보았다. 이 날의 행사는 신이 응보하는 사실과 무한한 자비(慈悲)의 진리를 엉터리로 시늉한 것으로 보았다. 우주에서 아버지의 사랑하는 성품과 자비로운 행위에 관하여, 진정한 진리의 선언을 입밖에 내고 싶어 속이 탔지만, 충실한 감시자는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타일렀다. 그러나 그 날 밤, 베다니에서, 예수는 수많은 논평을 하였고, 이것은

요한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었다. 요한은 그 날 저녁에 그들이 듣는 데서 예수가 하신 말씀의 참 중요성을 결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요한과 함께 초막 축제가 있던 주간 내내 남아 있으려고 계획하였다. 이 축제는 온 팔레스타인에서 해마다 있는 휴일이었고, 유대인의 휴가철이었다. 비록 예수는 그 절기(節氣)의 떠들썩함에 끼지 않았어도, 젊은이와 늙은이들이 태평하고 기쁘게 마음껏 노는 것을 구경하는 동안, 기뻐하고 만족해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축하하는 주간 한가운데, 축제 행사(行事)가 끝나기 전에, 예수파라다이스 아버지와 교통하기에 더 좋을 듯한 산으로 가서 쉬고 싶다고 말하고 요한을 떠났다. 요한은 함께 갔을 터이지만, 예수는 그가 축제 행사 끝까지 남아 있기를 고집하며 말했다: “네가 사람의 아들의 짐을 지는 것이 요구되지 않느니라. 도시가 평화롭게 자는 동안 파수꾼만 밤새 지켜야 하느니라.” 예수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베다니 가까이, 산에서 거의 한 주 동안 혼자 지낸 뒤에, 가버나움을 향하여 떠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 길보아의 비탈에서 하루 낮과 밤을 혼자 보냈고, 거기는 사울 왕이 목숨을 끊은 곳에서 가까웠다. 가버나움에 도착했을 때는 예루살렘에서 요한을 떠났을 때보다 더욱 명랑한 듯하였다.

다음 날 아침 예수는 소지품이 들어 있는 상자(箱子)가 있는 곳으로 갔고, 이것은 세베대의 작업장에 남아 있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일하러 나서면서 말했다.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바쁘게 일하는 것이 내게 마땅하니라.” 이듬해 1월까지, 배 작업장에서, 아우 야고보 옆에서, 여러 달 동안 일했다. 예수와 함께 일하는 이 기간이 지난 뒤에, 사람의 아들이 일생의 과업에 대하여 이해하기 힘들게 만드는 무슨 의심이 떠오르든지 상관 없이, 야고보예수의 사명에 대한 믿음을 다시는 정말로, 그리고 송두리째 버리지는 않았다.

배 작업장에서 일하던 이 마지막 기간에, 예수는 몇몇 큰 배의 내부 끝손질을 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칭찬할 만한 작품을 마쳤을 때 인간다운 성취에 만족감을 느끼는 듯하였다. 비록 하찮은 일에는 거의 시간을 버리지 않았어도, 어떤 주어진 과업에 필수인 것들이 닥칠 경우에, 깔끔하게 일하는 노동자였다.

시간이 지나자, 요단 강에서 회개하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면서 설교하는 어떤 요한이라는 사람의 소문이 가버나움에 도착했는데, 요한은 이렇게 설교하였다: “하늘나라가 가까웠도다. 뉘우치고 세례를 받으라.” 예루살렘에서 가장 가까운, 강의 여울에서 요한요단 강 유역을 거슬러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예수는 이 여러 보고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다음 해, 서기 26년 1월에 펠라에 가까운 점까지 요한이 강을 거슬러 올라올 때까지, 예수는 배 만드는 일을 계속하였고, 이 때 연장을 내려놓고 외쳤다, “때가 왔도다.” 당장에 그는 세례를 받으려고 요한 앞에 나섰다.

그러나 예수에게는 큰 변화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 땅에서 이리저리 다니는 동안 그의 방문과 보살핌을 누렸던 사람들 중에 거의 아무도, 후일에 대중을 가르치는 그 선생이 예전에 한 사사로운 개인으로서 알고 사랑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일찍이 덕을 입은 자들이 그가 나중에 대중을 가르치는 권위 있는 선생 역할로 나타난 그를 이렇게 알아보지 못한 데는 까닭이 있었다. 오랫동안, 이 정신과 영(靈)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고, 그것은 헤르몬 산에서 그 중대한 체류 동안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