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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살 되던해

뉴징검다리 2010. 2. 10. 08:45

제 126 편

결정적인 두 해

예수가 땅에서 산 일생의 모든 체험 가운데, 열네 살 때와 열다섯 살 때가 가장 결정적인 해였다. 신성과 운명을 비로소 자각한 뒤에, 그에게 깃드는 조절자와 상당히 교통을 가지기 전에, 이 두 해는 유란시아에서 파란 많았던 일생에서 가장 시련이 많은 해였다. 큰 시험, 참 유혹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은 이 2년의 기간이었다. 어떤 젊은 인간도 초기의 혼란과 청년기의 적응하는 문제들을 거치면서,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에 이르는 과도기에 예수가 겪은 것보다 더 결정적 시험을 겪지는 않았다.

예수가 새파랗게 젊은 성장기에서 중요한 이 기간은 예루살렘 방문을 마치고 그가 나사렛으로 돌아옴과 함께 시작되었다. 처음에 마리아는 아들을 다시 찾아왔다는 것, 예수가 의무를 지키는 아들로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언제라도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그의 미래 생활을 위하여 세운 계획에 그가 이제부터 더 반응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행복했다. 그러나 물질적 망상과 남이 알아주지 않는 이 가족의 긍지(矜持)의 햇빛 속에서 오래 즐기도록 예정되지는 않았다. 금방 그 여자는 더 철저하게 미몽에서 깨어나야 했다. 소년은 점점 더 아버지와 동행하였고, 문제를 가지고 어머니에게 오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으며, 한편 이 세상 일, 그와 아버지 일의 관계에 대한 숙고, 이 두 가지 사이에 그가 자주 오락가락하는 것을 부모는 갈수록 더 이해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서, 그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참으로 사랑했다.

나이가 들면서 유대 민족에 대하여 예수의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사랑이 깊어져 갔지만, 해가 지남에 따라서, 아버지의 성전에 정치적으로 임명된 사제들이 있다는 것에 머리 속에서 차츰 의분(義憤)이 커졌다. 예수는 진지한 바리새인과 정직한 서기관들을 크게 존경했지만, 위선적인 바리새인과 정직하지 않은 신학자들을 크게 경멸하였다. 성실하지 않은 모든 종교 지도자를 경시하였다. 이스라엘의 지도층을 훑어보았을 때, 그는 유대인이 기대하는 메시아가 되는 가능성을 좋게 보려는 유혹을 가끔 받았지만, 그러한 유혹에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

예루살렘에서 성전의 현자(賢者)들 사이에서 그가 공훈을 세운 이야기는 온 나사렛, 특히 회당 학교에서 예전에 그를 가르치던 선생들에게 흐뭇한 일이었다. 한동안, 사람마다 그를 칭찬하는 말이 입에서 그치지 않았다. 온 마을이 그가 어릴 때 보인 지혜(知慧)와 칭찬할 만한 행동을 되돌아보았고, 이스라엘에서 그가 큰 지도자가 될 운명을 가졌다, 마침내 갈릴리나사렛에서 정말로 위대한 선생이 나오

게 되었다고 예언했다. 그리고 그가 열다섯 살이 되어, 안식일에 회당에서 성서를 정규적으로 읽도록 허락될 때를 모두가 기대했다.

1. 열네 살 되던 해 (서기 8년)

이 해는 달력으로 열네 번째 생일을 맞는 해이다. 그는 멍에를 잘 만드는 사람이 되었고, 캔바스와 가죽을 가지고 일을 잘 했다. 급속히 또한 솜씨 있는 목수이자 가구공(家口工)이 되고 있었다. 이 해 여름에 그는 기도하고 명상하려고 나사렛 북서쪽에, 언덕 꼭대기까지 자주 다녔다. 그는 땅에서 자신을 수여하는 일의 성질을 차츰 더욱 자각하게 되었다.

이 언덕은, 1백 년 남짓 앞서, “바알의 산당”이었고, 이제는 이스라엘의 이름난 성자 시므온의 무덤 자리였다. 이 시므온의 언덕 꼭대기로부터 예수나사렛과 둘러싼 시골을 내려다보았다. 메기도를 바라보고, 에집트 군대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큰 승리를 거두었고, 나중에 어떻게 또 다른 그런 군대가 유다요시아를 물리쳤는가 하는 이야기를 회상하곤 했다. 멀지 않은 곳에, 타나크를 바라볼 수 있었으며, 거기서 드보라바락시세라를 물리쳤다. 멀리 도탄 산을 볼 수 있었는데, 거기서 요셉의 형제들이 그를 에집트인의 노예로 팔았다고 배웠다. 그리고 나서 그는 에발게리짐으로 눈을 돌리고 아브라함·야곱·아비멜렉의 전통을 스스로 되풀이하곤 했다. 이처럼, 머리 속에서 아버지 요셉의 민족의 역사와 전통에 있는 사건들을 돌이켜보고 곰곰이 뒤집어 보았다.

그는 회당 선생들 밑에서 상급 독서 과정을 줄곧 해 나갔고, 또한 남동생과 여동생들이 적당한 나이에 이르자 그들의 가정 교육을 계속했다.

다음 해 8월에 열다섯이 될 때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오랜 공부 과정의 비용을 물려고, 이 해 일찍부터 요셉나사렛가버나움에 있는 재산으로부터 나오는 소득을 따로 떼어 놓도록 주선하였다.

이 해가 시작되자, 요셉마리아는 맏아들의 운명에 관하여 자주 의심을 품었다. 그는 정말로 빛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지만, 몹시 이해하기 힘들고 헤아리기 어려웠고, 게다가 특별하거나 기적(奇蹟) 같은 아무 일도 일어난 적이 없었다. 자랑스러운 어머니는 수십 번 숨을 죽이고 기대하며 서서, 아들이 어떤 초인간적이거나 기적 같은 연기(演技)를 하는 것을 보려고 기대했지만, 언제나 어머니의 희망은 차가운 실망 속에 동댕이쳐졌다. 이 모두가 어머니를 낙심케 하고, 아니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이었다. 선지자와 약속의 사람들은 언제나 그들이 부름받았음을 전시하고, 기적(奇蹟)을 연출하고 놀라운 일을 하여 신으로부터 받은 권한을 확립한다고 그 시절의 경건한 사람들은 참으로 믿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런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의 앞날을 깊이 생각할 때 부모의 혼란은 꾸준히 늘어났다.

나사렛 가족의 나아진 경제 사정은 집 근처에서 여러 면으로, 특히 반반한 흰 판자들의 수가 늘어난 데서 나타났는데, 이 판자들은 글쓰는 판자로 쓰였고 목탄으로 글을 썼다. 예수는 또한 음악(音樂) 수업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허락되었고, 그는 하프 켜기를 몹시 좋아했다.

이 해 내내, 예수는 “사람과 하나님에게서 은혜를 입었다”고 참으로 말할 수 있다. 가족의 전망은 좋아 보였고, 앞날은 밝았다.

2. 요셉의 죽음

9월 25일, 운명의 날 화요일까지 만사가 참 순조로웠다. 이 날 세포리스에서 달려 온 사람이, 요셉이 총독(總督)의 저택에서 일하다가, 데릭 기중기가 떨어져 몹시 다쳤다는 비극의 소식을 이 나사렛 가정으로 가져왔다. 세포리스에서 온 사자는 요셉의 집으로 가던 길에 작업장에 들려서 예수에게 아버지의 사고를 알렸고, 그들은 함께 집으로 가서 슬픈 소식을 마리아에게 알렸다. 예수는 즉시 아버지한테 가고 싶었지만, 마리아는 자기가 남편 곁에 서둘러 가야 한다는 것밖에 아무 말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때 열 살인 야고보세포리스까지 자기를 따라가고, 한편 예수에게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어린아이들과 함께 집에 남으라고 지시했는데, 왜냐하면 요셉이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셉마리아가 도착하기 전에, 부상(負傷) 때문에 죽었다. 그들은 요셉나사렛으로 모셔 왔고, 다음 날 그는 선조들과 함께 묻혔다.

전망이 좋고 앞날이 밝게 보였던 바로 그 때, 겉보기에는 모진 손이 나사렛 가족의 머리를 내려쳤고, 이 집의 일은 발칵 뒤집혔으며, 예수와 장래 교육을 위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이 소년 목수는, 이제 막 열네 살이 되었고, 땅에서 육체를 입고 신다운 성품을 드러내라는, 하늘 아버지의 명령을 수행해야 할 뿐 아니라, 과부가 된 어머니와 일곱 동생―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 또 하나―를 보살필 책임을 젊은 인간 성품이 또한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나사렛 젊은이는 이제, 이렇게 갑자기 아버지를 여읜 가족의 유일한 기둥이자 위로가 되었다. 한 인간 가족의 머리가 되고, 동생들에게 가장(家長)이 되고, 어머니를 부양하고 보호하며, 아버지의 집, 즉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그가 알게 된 유일한 집의 보호자로서 활동하는 데 따르는 책임은 무겁지만, 상당히 교육이 되고 훈련이 된다. 이렇게 이 책임을 아주 일찍 맡도록 이 운명의 젊은이를 강요할, 자연스러운 순서의 사건들이 유란시아에서 일어나는 것이 허락되었다.

예수는 아주 갑자기 밀어닥친 책임을 즐겁게 받아들였고, 끝까지 충실히 해 나갔다. 적어도, 일생에서 한 가지 큰 문제이며 예상했던 어려움이 비극(悲劇)으로 해결되었다―이제는 가족이 그가 랍비들 밑에서 공부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가 “누구의 제자도 되지 않았다”하는 것은 언제나 참말이었다. 어린아이들 가운데 가장 겸손한 자한테서도 언제나 기꺼이 배우려 했지만, 그는 결코 인간 근원으로부터 진리를 가르칠 권한을 얻지 않았다.

아직까지, 태어나기 전에 가브리엘이 어머니를 방문한 것에 대하여 그는 아무 것도 몰랐다. 대중에게 봉사하는 일이 시작될 때, 세례 받은 날에, 그는 이 말을 요한으로부터 겨우 들었다.

해가 지남에 따라서, 나사렛의 이 젊은 목수는 갈수록 모든 사회 제도와 모든 종교 관습을 이 변치 않는 시험으로 재게 되었다: 그것이 인간의 혼을 위하여 무엇을 하는가? 하나님을 사람에게 가까이 오시게 하는가? 사람을 하나님한테로 데려오는가? 이 젊은이가 인생에서 오락 및 사회적 면을 통째로 소홀히 하지는 않았어도, 가족을 보살피는 것과 아버지의 천국의 뜻을 땅에서 행하려고 준비하는 것, 꼭 이 두 가지 목적에 그는 점점 더 시간과 에너지를 바쳤다.

이 해에는 겨울 저녁에 예수가 하프 켜는 것을 듣고, (소년이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었으니까) 이야기를 듣고, 그리스 성서 읽는 것을 들으려고 이웃 사람들이 들리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죽을 때에 요셉이 어지간히 큰 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정의 경제(經濟) 사정은 계속해서 썩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예수는 일찍부터 날카로운 사업 판단과 재무의 지혜를 가졌음을 보였다. 아낌없이 주었지만 검소했고, 저축하고 있었지만 관대했다. 그는 아버지의 재산을 현명하고 유능하게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예수나사렛 이웃들이 집을 즐겁게 만들려고 힘 자라는 대로 무엇이든지 했는데도, 마리아와 아이들까지, 슬픔의 그림자로 덮여 있었다. 요셉이 없어진 것이다. 요셉은 특별한 남편이요 아버지였고, 모두 그가 사라져 서운해하였다. 그에게 말하거나, 이별하면서 축복의 말씀도 들을 수 있기 전에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더군다나 비극인 듯하였다.

3. 열 다섯 살 되던 해 (서기 9년)

열다섯 살 되던 이 해 중반이 되어서―유대인의 해가 아니라, 20세기 달력에 따라 시간을 계산하건대―예수는 가족의 관리를 단단히 장악했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저축(貯蓄)은 거의 사라졌고, 요셉과 이웃 야곱이 공동으로 소유했던 나사렛 집들 가운데 하나를 처분해야 할 필요에 부딪쳤다.

서기 9년, 4월 17일 수요일 저녁에, 그 집안의 아기 이 태어났고, 예수는 힘이 자라는 데까지, 벅차고 각별히 슬픈 이 시련의 기간에 어머니를 위로하고 돌보면서 아버지를 대신하려고 애썼다. 거의 20년 동안 (대중 봉사를 시작할 때까지) 예수가 어린 을 돌보았던 것보다, 어떤 아버지도 자기 딸을 더 귀하고 충실하게 사랑하고 길렀을 수가 없다. 가족의 모든 다른 사람에게 그는 똑같이 훌륭한 아버지가 되었다.

이 해에, 예수는 나중에 사도들에게 가르친 기도문(祈禱文)을 처음으로 지었는데, 이것은 “주의 기도”로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어느 면에서, 이것은 가족 제단이 진화된 것이었고, 그들은 여러 형태의 찬송과 몇 가지 공식 기도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자기가 아주 즐겨 하는 것처럼―예수는 기도할 때 큰 아이들에게 자신을 개별로 표현하는 것을 가르치려고 애썼지만, 그들은 그 생각을 헤아릴 수 없었고, 변함없이 그들이 외운 기도 형태로 돌아가곤 했다. 나이 든 동생들에게 개별로 기도하라고 자극하려는 노력으로, 암시하는 구절을 가지고 예수는 인도하려고 애쓰곤 했다. 당장에, 뜻하지는 않았는데, 예수가 가르친 이 암시하는 구절로부터 대체로 만들어진 형태의 기도를 그들이 모두 쓰는 일이 생겼다.

마침내, 예수는 가족의 각 식구(食口)가 즉흥으로 기도하게 하려는 생각을 버렸다. 10월 어느 날 저녁에, 낮은 돌 식탁 위에 있는 작고 낮은 등불 옆에 앉아서, 가로 세로가 45 센티미터 되는 한 조각의 부드러운 백향목(柏香木) 판자 위에, 목탄 조각으로 기도문을 적었고, 그 때부터 계속 이것은 표준 가족 기도가 되었다.

이 해에 예수는 혼란한 생각으로 마음이 많이 산란하였다. 가족에 대한 책임은 “아버지의 일을 돌보라”고 지시하는,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방문에 응답하는 무슨 계획이라도 곧 실행할 생각을 모두 아주 실질적으로 없애 버렸다. 땅에서 아버지의

가족을 지키는 것이 모든 의무에 앞서야 한다,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 첫째 의무가 되어야 한다고 예수는 올바르게 추리하였다.

이 해가 지나가는 동안에 예수는 이른바 “에녹서”에서 한 구절을 찾아냈는데, 이것은 유란시아 수여 사명을 위하여 “사람의 아들”이라는 용어를 호칭으로서 나중에 채택하도록 영향을 미쳤다. 그는 유대메시아 아이디어를 철저히 생각해 보았고, 그런 메시아가 되지 않으리라 굳게 확신했다. 아버지의 민족을 몹시 돕고 싶었지만, 외국의 팔레스타인 지배를 타도하는 일에 유대인의 군대(軍隊)를 이끌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결코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왕좌에 앉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사명이 유대 민족에게만 영적 구원자나 도덕적 선생이 되는 것이라 믿지도 않았다. 따라서 어떤 뜻에서도, 일생의 사명은, 히브리 성서의 강렬한 소망, 그리고 메시아의 예언이라 생각된 것을 성취하는 것일 수 없었다. 적어도 유대인들이 이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해하는 바와 같지는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는 결코 선지자 다니엘이 묘사한 사람의 아들로서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것이 그에게 확실했다.

그러나 세계의 선생으로서 나설 때가 되었을 때, 자기를 무엇이라고 부를 것인가? 그의 사명에 대하여 무어라고 주장해야 할까? 그의 가르침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를 무슨 이름으로 부를 것인가?

이 모든 문제를 머리 속에서 이모저모 살피는 동안, 그는 나사렛의 회당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던 여러 외경(外經) 사이에서 “에녹서”라고 부르는 이 문서를 찾아냈다. 옛날의 에녹이 그 책을 쓰지 않았음을 확실히 알았지만, 그 책은 그에게 매우 흥미를 자아냄이 판명되었고, 그는 여러 번 다시 읽었다. 특별히 감명을 준 한 구절이 있었으니, “사람의 아들”이라는 이 용어가 나타난 구절이다. 이른바 이 에녹서의 저자(著者)는 이 사람의 아들에 대하여 계속 이야기하고, 그가 땅에서 할 일을 적었는데, 인류에게 구원을 주려고 땅에 내려오기 전에, 이 사람의 아들은 그의 아버지, 만물의 아버지와 함께 하늘의 영광이 어린 궁정을 거닐었다, 빈곤한 사람들에게 구원을 선포하러 땅으로 내려오려고, 그가 이 모든 웅장함과 영광을 등지었다고 설명했다. 이 구절들을 읽는 동안에 (이 가르침과 섞이게 된 동부 신비주의 가운데 많은 것이 그릇됨을 잘 알았다), 그는 가슴 속에서 응답했고, 머리 속에서, 히브리 성서의 모든 메시아 예언 가운데, 유대인 구원자에 대한 모든 이론 가운데 아무 것도, 겨우 부분적으로 인정된 이 에녹서에 감춰진 바로 이 이야기처럼 진리에 그토록 가깝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 때 그 자리에서, 시작 칭호로서 “사람의 아들”을 채택하기로 결심했다. 나중에 대중 사업을 시작했을 때, 그는 그대로 했다. 예수는 진리를 알아보는 어김없는 능력을 가졌고, 무슨 근원에서 쏟아져 나오는 듯하든지, 조금도 서슴지 않고 진리를 품에 안았다.

이 때가 되어서, 앞으로 세계를 위하여 할 일에 관하여 많은 것을 샅샅이 해결해 버렸지만, 그는 이 문제들에 관해서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가 유대메시아가 된다는 생각에 아직도 질기게 달라붙었다.

예수의 젊은 날에서 큰 혼란이 이제 생겼다. 땅에서 이룰 사명, “아버지의 일을 돌보는 것”―온 인류에게 아버지의 사랑하는 성품을 보여 주는 것―에 대하여 무엇인가 해결했으니까, 그는 민족의 구원자, 즉 유대인 선생이나 임금이 오는 것을 언급하는, 성서(聖書)의 여러 구절을 다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이 예언들이 무슨 사건을 언급했는가? 그는 유대인이 아닌가? 혹은 유대인인가? 다윗의 집 출신인가, 또는 그렇지 않은가? 어머니는 그렇다고 단언했고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고 판결했

다. 그는 자기가 그렇지 않다고 작정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메시아의 성질과 사명을 혼동했는가?

결국은, 어머니가 옳을 수도 있을까? 대부분의 문제에서, 과거에 의견 차이가 생겼을 때, 어머니가 옳았다. 그가 새로운 선생이고 메시아아니라면, 땅에서 사명을 수행하는 동안 예루살렘에 그러한 사람이 나타날 경우에 어떻게 그가 메시아를 알아볼 것인가? 더 나아가서, 이 유대메시아와 그는 무슨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 일생의 사명에 손을 댄 뒤에, 그는 가족과 무슨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 유대인 연방 및 종교와 가지는 관계는? 로마 제국에 대한 관계는? 이방인들과 그 종교에 대해서는? 목수의 벤치에서 계속 일하며, 자신, 어머니, 배고픈 다른 여덟 입에 풀칠하기 위하여 열심히 생활을 꾸려 나가면서, 이 중대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이 젊은 갈릴리 사람은 머리 속에서 이리저리 살피고 심각하게 생각하였다.

이 해가 저물기 전에, 마리아는 가족의 기금(基金)이 줄어드는 것을 깨달았다. 그 여자는 비둘기 장사를 야고보에게 넘겼다. 곧 그들은 둘째 송아지를 샀고, 미리암의 도움을 입어 나사렛 이웃들에게 우유를 팔기 시작했다.

예수가 깊이 생각에 잠긴 기간, 기도하려고 언덕 꼭대기까지 자주 나들이하는 것, 때때로 예수가 떠올린 여러 가지 이상한 아이디어는 어머니를 깜짝 놀라게 했다. 어떤 때 어머니는 소년이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결국은 그가 약속의 아이요, 어떤 면에서 다른 소년들과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두려움을 가라앉히려 했다.

그러나 예수는 생각을 모두 말하지 않는 것, 모든 아이디어를 세상에, 아니 어머니에게조차, 내놓지 않는 것을 배웠다. 이 해부터 계속, 머리 속에서 무엇이 돌아가는가 예수가 밝히는 일이 꾸준히 줄어들었다. 다시 말해서, 보통 사람이 파악할 수 없는 일, 그로 하여금 보통 사람들과 판이하거나 다르게 보이게 만들 것에 관하여 말하는 일이 적었다. 모든 겉모습으로 보아서, 그는 보통이요 전통적인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누군가가 그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기를 몹시 바랐다. 믿을 수 있고 비밀(秘密)을 지키는 친구를 몹시 바랐지만, 그의 문제들은 인간 친구들이 알아듣기에 너무 까다로웠다. 그 특별한 상황의 독특성은 그로 하여금 짐을 혼자 지도록 강요하였다.

4. 회당에서 한 첫 설교

열다섯째 생일이 다가오자, 예수는 안식일에 회당 설교단에 공식으로 설 수 있었다. 연설자들이 없을 때, 성서(聖書)를 읽어 달라고 여러 번 요청을 받았지만, 이제 율법에 따라서 예배를 진행할 수 있는 날이 왔다. 따라서, 열다섯째 생일이 지난 뒤 첫째 안식일에, 하잔은 회당의 아침 예배를 예수가 이끌도록 마련하였다. 나사렛에 있는 모든 충실한 사람이 모였을 때, 이미 성서의 구절을 골랐으므로, 이 젊은이는 일어서서 읽기 시작했다:

“주 하나님의 영(靈)이 내게 다가오시니, 주가 내게 기름을 부으셨음이라. 그는 온유한 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싸매고, 포로가 된 자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영적으로 갇힌 자를 풀어 놓으라고 나를 보내셨도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해와 우리 하나님이 응보하는 날을 선포하고, 통곡하는 자를 모두 위로하고, 저희에게 재 대신에 아름다움을, 통곡하는 자리에 기쁨의 기름을, 슬픔의 정신 대신에 찬양의 노래를 주어서, 저희가 올바름의 나무라, 그로서 주가 영광을 받도록 주가 심으신 것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살수 있도록 너희는 악이 아니라 선을 구하라, 주, 만군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할지며, 성문(城門)에서 판결을 정할지라. 어쩌면 주 하나님요셉의 자투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너희 스스로 씻고, 너희 스스로 깨끗하게 할지니라. 내 눈앞에서 너희가 행하던 악을 던져 버리고, 악행을 그치고 선행하기를 배우라. 정의(正義)를 구하고 억압받는 자를 놓아 주라. 아비 없는 자를 보호하고, 과부를 위해 간구하라.

“무엇을 가지고 내가 주 앞에 나아와서, 온 땅의 주 앞에 경배하리요? 태운 제물을 가지고, 한 살 된 송아지들을 가지고 내가 그 앞에 나아가리요? 산양 수천 마리나 양 1만 마리나 강처럼 많은 기름으로 주가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첫아들을, 내 혼의 죄 때문에 내 몸에서 난 열매를 드리리요? 아니라, 주가 우리에게 보이셨음이라. 아 사람들아, 무엇이 좋은가. 오직 공평하게 대하고 자비를 사랑하며 겸손히 너희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밖에, 주가 너희에게 무엇을 요구하더냐?

“그러면 지구의 둥근 천장에 앉으시는 하나님을 너희가 누구와 견주겠느냐? 너희의 눈을 들고 이 모든 세상을 누가 창조했는가, 누가 그 무리들을 수로 부르며, 그 이름으로 저희를 모두 부르는가 보라. 위대한 힘으로 그는 이 모든 것을 행하시며, 힘이 강한즉, 하나도 실패하지 않느니라. 그는 약한 자에게 힘을 주고, 지친 자에게 힘을 더하시니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음이로다. 절망하지 말지니, 내가 너희의 하나님인 까닭이라. 나는 너희에게 힘을 주겠고, 너희를 도우리라. 옳도다, 내 정의(正義)의 바른 손으로 내가 너희를 들어올리리니, 내가 주 너희의 하나님인 까닭이라. 나는 너희의 바른 손을 들고 너희에게 이르리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를 도울 것임이라.

“그리고 주가 말씀하시되,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내가 택한 나의 종이라, 모두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영원자임을 알게 하려 함이라. 나, 내가 주이니, 내 앞에 아무 구원자가 없느니라.”

이렇게 읽고 나서, 그는 앉았다. 그렇게 품위 있게 읽어 준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가 그렇게 당당하게 엄숙한 것을 마을 사람들이 본 적이 없었다. 그토록 열심(熱心)이고 그렇게 진지한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남자답고 결의가 굳고, 그토록 권위 있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없었다.

이 안식일 오후에, 예수야고보와 함께 나사렛 언덕으로 올라갔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두 개의 반반한 판자에 목탄으로 십계명(十誡命)을 그리스어로 썼다. 나중에 마르다는 이 판자들을 물감 칠하고 꾸몄고, 오랫동안 야고보의 작은 작업 벤치 위, 벽에 걸려 있었다.

5. 재정적 어려움

차츰차츰 예수와 가족은 몇 년 전의 소박한 생활로 돌아왔다. 옷과 먹을 것조차 더욱 간소해졌다. 젖과 버터와 치즈는 풍부하게 있었다. 철마다 밭의 소산을 즐겼지만, 달이 지날 때마다 더욱 검소한 관습이 필요하게 되었다. 아침 식사는 아주 평범했고, 제일 좋은 음식을 저녁 식사를 위해서 남겨 두었다. 하지만 이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재산의 부족(不足)이 사회적으로 열등함을 의미하지 않았다.

이미 이 소년은 그 시절에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거의 통달했다. 집, 들, 작업장에서 얼마나 삶을 잘 이해했는가는 나중에 그의 가르침에서 나타나며, 그 가르침은 모든 국면의 인간 체험을 피부로 겪었음을 아주 넉넉히 드러낸다.

나사렛 하잔은 예수가 위대한 선생,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이름난 가말리엘의 후계자가 되리라는 믿음을 계속 지녔다.

겉보기에, 예수의 일생을 위한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된 듯하였다. 문제들이 지금 펼쳐진 바와 같이, 앞날은 밝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비틀거리지 않았고, 낙심하지 않았다. 현재의 임무를 잘 해냈고, 생애의 정거장에서 급한 책임들을 충실하게 처리하면서, 하루하루 계속 살았다. 예수의 일생은 실망한 모든 이상주의자에게 영구한 위로가 된다.

날품팔이하는 보통 목수의 임금은 천천히 줄어들었다. 이 해의 마지막이 되어서, 예수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해서 하루에 약 25센트에 해당하는 돈을 벌었다. 다음 해가 되어서, 회당의 부과금과 반 세겔의 성전 세금은커녕, 국민 세금을 물기에도 벅찼다. 이 해에, 세리(稅吏)는 예수한테서 여분의 소득을 짜내려고 애썼고, 하프까지도 가져가겠다고 을러댔다.

그리스어 성서의 사본이 발견되어 세리에게 빼앗길까 두려워서, 예수는 열 다섯 살 되는 생일에, 주께 바치는 성년(成年) 헌금으로서 성서를 나사렛 회당 도서관에 바쳤다.

사고로 죽었을 때 요셉이 받을 금액에 관한 쟁의(爭議)가 있어, 헤롯에 대하여 취해진 상고(上告)에서 판결을 받으려고 세포리스로 갔을 때, 예수는 열다섯 살 되던 해 최고의 충격을 받았다. 세포리스에서 회계가 하찮은 금액을 제안했을 때, 예수마리아는 상당히 큰 돈을 받으리라 전에 희망했다. 요셉의 형제들은 헤롯 본인에게 상소(上訴)했고, 이제 예수는 궁전에서 서서, 아버지는 돌아가셨을 때 아무 것도 받을 것이 없었다고 헤롯이 선포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한 부당한 판결 때문에, 예수는 결코 다시는 헤롯 안티파스를 신뢰하지 않았다. 한때 “그 여우”라고 헤롯을 넌지시 가리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해와 그 뒤 몇 년 동안에 목수의 벤치 가까이에서 일한 것은 예수가 카라반 여객들과 섞이는 기회를 빼앗았다. 가족의 소모품 상점은 이미 삼촌에게 넘어갔고, 예수는 전적으로 집의 작업장에서 일했으며, 거기서 가족과 함께 있는 마리아를 도우려고 가까이 있었다. 이 무렵에, 야고보를 낙타 휴식소에 보내서 세계 사정에 관한 정보를 모았고, 이렇게 그 날의 소식과 접촉하려고 애썼다.

어른이 되어가자, 그는 그 전과 그 후 시대에 보통 젊은이들이 겪었던 모든 갈등과 혼동을 겪었다. 가족을 부양하는 벅찬 체험은 게으른 명상이나 신비주의 경향에 빠질 만큼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없게 하는 확실한 조치였다.

이 해에 예수는 집 바로 북쪽에, 상당한 땅 조각을 빌려서 가족의 채소밭으로 분배하였다. 나이 많은 아이들은 저마다 개인의 밭이 있었고, 농사 짓는 노력으로 열심히 경쟁했다. 맏형은 채소를 가꾸는 철 동안, 밭에서 날마다 함께 얼마큼 시간을 보냈다. 밭에서 동생들과 같이 일하는 동안, 번거롭지 않게 사는 자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는 시골에서, 모두가 농장(農場)에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예수는 여러 번 품었다. 하지만 그들은 시골에서 자라고 있지 않았다. 이상주의자일 뿐 아니라 철저히 실용적인 소년이었기 때문에, 발견한 바로 그대로 문제를 영리하고 힘차게 처리해 나갔고, 닥친 형편의 현실에 자신과 가족을 조정하며, 개별 및 집단의 소망을 가능한 최대로 만족시키도록 조건을 적응하려고 힘자라는 데까지 모든 일을 했다.

헤롯의 궁전에서 한 일로 아버지가 받을 상당한 돈을 받을 수 있다면, 작은 농장 하나를 구입하는 사업을 보장하기에 넉넉한 밑천을 모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한

예수는 어렴풋이 희망했다. 가족을 시골로 옮기는 이 계획을 정말로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헤롯요셉이 받을 돈을 조금도 내주지 않으려 했을 때, 시골에서 집을 소유하는 꿈을 버렸다. 그 형편대로, 농장 생활의 체험을 많이 즐기려고 그럭저럭 애썼고, 이제 비둘기 외에도, 송아지 세 마리, 양 네 마리, 닭 한 떼, 당나귀 한 마리, 개 한 마리가 있었다. 작은 꼬마들까지 잘 통제된 관리 계획 속에 수행해야 될 정규 임무가 있었고, 이것이 이 나사렛 가정의 집안 생활의 특징이었다.

이 열 다섯째 해가 저물 때, 예수는 인간 존재에서 위험하고 어려운 그 기간을 거치기를 마쳤는데, 이 때는 소년기의 양순한 시절과 다가오는 성년기를 의식하는 사이의 과도기였다. 성년기는 고귀한 인품을 기르는 상급 체험을 얻도록 늘어난 책임과 기회를 준다. 머리와 몸이 자라는 기간은 끝났고, 이제 이 나사렛 젊은이의 진짜 생애가 시작되었다.